[단독]국정원, 대선 투표일에도 문재인 후보 비방 글

박홍두 기자 2013. 12. 4.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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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추가수사서 투표 전날·당일 올린 글 213건 드러나
안철수·민주·진보당 등 대선일정 맞춰 대상 바꿔 비방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이 지난해 대통령 선거일인 12월19일 당일까지도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 등 야권을 비방하는 트위터 글을 올리거나 리트윗(퍼나르기)한 정황이 확인됐다.

국정원은 대선이 있던 지난해 1월부터 1년 내내 대선 관련 주요 현안들에 맞춰 비방 글을 올렸다. '시드(씨앗) 트윗'을 생산하면 자동 유포 프로그램을 이용해 동시간대에 무더기로 퍼나르기를 하는 식이었다.

3일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소장을 변경하면서 법원에 제출한 트위터 글 121만여건을 경향신문이 분석한 결과, 국정원 직원들은 지난해 1월 말부터 선거 당일인 12월19일까지 모두 64만7743건의 선거개입 글을 직접 작성하거나 리트윗한 것으로 파악됐다. 매일 2000건씩 올린 셈이다. 이는 지난 1차 공소장 변경 시 5만5600여건보다 12배 많은 양이다. 1차 변경 시에는 지난해 9월부터 대선 전까지의 내용이 취합됐고, 12월11일 국정원 여직원이 발각된 뒤에는 거의 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으나, 이번에는 1월부터 4월 국회의원 선거, 대선 당일까지 활동한 기록이 새롭게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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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2월 안철수 공략

국정원이 올린 글들은 대선 일정과 정확히 맞물려 있었다.

민주당 대선 후보가 아직 없던 지난해 1~2월은 안철수 후보에 대한 비방 글이 쏟아졌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서울대로 돌아갔던 안 후보가 계속 대선 주자로 언론 보도에 오르내리던 때다.

"이제 웬만한 국민들은 안철수가 삼성의 이재용을 흉내낸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이용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는 글 등이다. 안 후보가 자신이 운영하던 안철수연구소 BW를 저가에 사들여, 부당한 시세차익을 올렸다는 의혹에 맞춘 것이다.

■ 4월엔 민주당 비난

4월11일 총선을 앞두고서는 민주당으로 표적이 옮겨졌다. 민주당은 반대하고 새누리당은 찬성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한 국정원 트위터 계정은 "이번 총선과 대선을 이긴 쪽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한·미 FTA를 폐기하고, 국가정보원을 무력화시키면 대한민국의 안보는 끝장난다"고 올렸다. 총선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로 읽히는 부분이다.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얻고 선거가 끝나자 "선거의 여왕 부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로 보수 결집!" 등의 글을 작성했다. 국정원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예상되던 박근혜 후보를 위해 이때부터 불법 선거운동을 시작한 셈이다.

■ 5월엔 진보당 '종북몰이'

5월 통합진보당 중앙운영위원회 폭력사태가 발생하자, "종북 통진당은 해체하라" 등의 진보당에 대한 '종북몰이'를 하기 시작했다.

각 당의 후보들이 출마해 대선 선거전이 본격화된 9월 이후엔 활동이 더욱 노골화됐다.

문 후보에게는 "빨갱이 대통령" "노무현 NLL 발언 책임져라"며 공격을 퍼부었고, 안 후보에게는 "딸 미국 호화유학·이중국적 취득 의혹 있다"는 등 개인 비리 의혹을 집중 부각시켰다. 박 후보에 대해선 정반대였다. 주로 대선 일정 행보와 각종 공약 발표를 홍보하는 글이 많았다. 아예 박 후보 캠프 보도자료가 올려진 사이트를 연결시켜놓은 글도 있었다.

한 계정은 "박근혜가 꼭 대통령이 돼야 하는 이유는 풍부한 정치경험, 경륜, 약속과 신뢰를 지키는 자세, 위기에 강한 리더십… 공감이 갑니다"라고 올렸다.

■ 투표 당일에도 문재인 후보 비방

11월 문·안 후보의 단일화 이후 후보자들 간 TV토론을 놓고도 극과 극의 평가를 하는 글을 작성했다.

문 후보에겐 "존재감이 없었다", 이정희 후보에게는 "확실한 종북주의자"라고 폄훼했지만, 박 후보에게는 "대통령의 품격이 보였다"는 식이다.

대선 투표일 당일까지도 국정원은 문 후보에 대한 비방 글을 꾸준히 올리며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투표일 전날인 18일(151건)과 19일(62건) 이틀 동안 모두 213건의 글을 올린 것이 검찰의 추가 수사에서 새로 드러났다.

"문재인 캠프, 투표독려에 여성 가슴까지 등장시켜" "문 후보 지지 호소 문자메시지 공식 선거운동 기간 이후에도 발송" 등의 글들을 올렸다.

특히 당일인 19일에는 62건 중 1건만 박 후보 지지 글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문 후보와 민주당을 반대하는 글로 채워졌다.

■'봇' 사용… 조직적 유포 방증

이번 추가 수사로 국정원이 올린 글들은 대부분 '시드 트윗을 올리면 봇 계정들이 무더기로 퍼나르는 시스템'으로 운영됐다는 증거가 더 확실해졌다.

한 계정의 경우 하나의 글을 올리면 이후 적게는 30개에서 많게는 90개의 계정들이 한꺼번에 같은 글을 유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 걸린 시간은 불과 1~2초 정도였다.

"누군가의 기계적인 제어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구조"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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