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쏠림 심화.. 행정부선 '만사박통' 자조

안홍욱·유신모 기자 2014. 2. 26.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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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남북대화 주도.. 이번엔 통일준비위까지"통일부, 홍보기관으로 전락"

통일부 직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는 동안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박 대통령이 '통일준비위원회' 설치를 전격 발표했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사전에 전혀 몰랐던 일이다. 통일부 내부에선 26일 "통일부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이냐"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도 당혹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기재부가 작성한 초안이 청와대에서 대폭 잘리면서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박 대통령 담화 발표 후 예정됐던 브리핑을 취소했을 정도다.

정부 부처의 정책 기능이 청와대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 박 대통령 담화는 청와대가 집권 2년차 국정운영을 총괄하겠다는 의지를 선언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의 총론과 각론을 동시에 내놓은 것이다. 박 대통령은 거의 모든 사안마다 "내가 직접 챙기겠다"고 밝히고 있다. 부처에선 '만사박통(萬事朴通·모든 일은 박 대통령으로 통함)'이라는 신조어가 나오고 있다.

통일외교안보 기능의 청와대 쏠림 현상은 완연하다. 이미 국가안보실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 신설로 외교안보 분야 컨트롤타워로 부상한 데 이어 남북대화까지 직접 틀어쥐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박 대통령이 직속 통일준비위를 신설해 '통일 한반도' 준비를 관장할 뜻을 밝혔다. 청와대 내에선 "요즘 박 대통령이 통일 문제에 꽂혀 있다"는 말이 나온다. "통일 대박론이 말 그대로 '대박'을 쳤다"(청와대 관계자)는 자평도 한몫하고 있다.

가뜩이나 박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모든 일을 직접 챙김) 리더십'으로 공무원들이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무소신이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청와대가 국정 주도권을 쥐면서 현업 부처의 소외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빵빵' 터뜨리면 부처는 뒷수습에 급급한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박 대통령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큰 그림'을 내놓으면서 추진된 것이다. 당시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와 사전에 교감이 있었던 내용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후 기재부는 50일 동안 전 직원이 달라붙어 세부 계획을 만들었다. 청와대와 부처 간 '불통'과 박 대통령 대선 공약인 책임장관제 폐기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청와대가 남북관계를 주도하면서 촉발된 통일부 소외 문제는 더 심각한 상태다. 통일부 내에선 "이제 통일부는 남북대화 실무 준비나 하고 정부의 대북정책 홍보기관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적인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정작 정책의 현실화를 위해 필수적인 대국회, 대야 소통에 대해선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회 협력이 필요하다"는 말만 할 뿐 협력을 이끌어낼 진정성 있는 접근은 전무한 상태다. 청와대 정무수석실도 박 대통령의 '선진 정치문화 정착' 요구에 따라 거의 모든 사안을 여당에 떠넘긴 채 움직이지 않고 있다.

< 안홍욱·유신모 기자 ahn@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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