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 야당 시절도 한번 뒤돌아봐야

2013. 3. 6.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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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5일 아무런 공식 일정이 없었다. 이날 매주 화요일마다 열리는 국무회의가 예정돼 있었지만 취소됐다. 6일에도 공식 일정을 잡지 않았다고 한다. 보통 새 대통령은 취임하고 한두 달은 각종 대외 일정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취임 아흐레 동안의 절반을 공식 일정 없이 청와대 안에서만 보내고 있다. 청와대 측은 "대통령이 민생 현장을 다니고 각종 정부 회의도 주재하고 싶지만 그게 안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35일째 국회에서 제자리걸음하고 있는데 무슨 다른 일을 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국회 청문보고서가 채택된 장관 후보는 7명뿐이다. 이대로 가면 박근혜 정부는 일러야 이달 말에나 빈 의자를 메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엊그제 대국민 담화에서 "(방송 업무에 관한 야당의 요구를 들어주면) 미래창조과학부는 껍데기만 남는 것"이라며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 문제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미래부가 관장할 우리나라의 정보통신기술 산업 규모 연간 370조원 가운데 방송 시장은 그 3%인 11조원 정도밖에 안 된다. 방송통신위에선 2개 과(課)가 그 일을 맡아왔다. 미래부가 그 업무를 가져오지 않으면 "미래부는 껍데기만 남게 된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미래부의 진짜 역할은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과 종합적인 정보통신 정책으로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는 일이다. 방송을 어느 부서가 관할하느냐는 미래부의 필수불가결(必須不可缺) 핵심 영역이라 하기는 어렵다.

지금의 여야 대치는 정부조직법 문제 자체가 심각한 사안이어서가 아니다. 여야의 기싸움이 감정싸움으로 번져가 실타래가 엉켜 버린 데서 비롯됐다. 대통령은 야당 대표로서 충격적 패배 이후 정신을 놓아버린 듯하던 야당을 추슬러 대여(對與) 투쟁의 선봉에 섰던 경험을 갖고 있다.

민주당 은 그때 박 대통령이 이끌던 한나라당 보다 더 깊은 상처를 입고 비상 체제로 꾸려지고 있다. 전당대회에서 정식 선출된 것도 아닌 지금의 임시 지도부가 내부를 설득할 작은 명분이라도 거머쥐지 못하고 그냥 물러서면 그대로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지도부가 양보하고 싶다 해도 현실적으로 그게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당 일부는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을 '박근혜 도우미'라고 비판하며 깎아내리고 있다. 문 위원장이 강경해진 것은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그쪽으로 떠밀린 측면이 크다. 대통령은 자신의 야당 시절을 되돌아보고 지금 야당 지도부 입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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