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길에 눈이 마이 쌓였는데 우째 왔소"

2014. 2. 13.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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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연합뉴스) 강은나래 기자 = "아이구야, 시상에. 그 짝 길에 눈이 마이 쌓였는데 우째 왔소. 젊은 양반이 골병이 들어 우짜…."

13일 강원 강릉시 구정면 제비리 산간 마을에 혼자 사는 최돈자(80·여) 할머니는 마른 손으로 기자의 손을 연방 비비며 반가워 어쩔 줄 몰랐다.

지난 6일부터 엿새간 1m가 넘는 폭설로 사방이 눈 천지로 변한 강원 동해안.

쉴 새 없이 제설차가 폭설을 밀어낸 덕분에 도심지 대로와 아파트 공동주택 등은 제모습을 슬슬 되찾아 가고 있지만, 아직 외부인의 손길이 닿지 못한 산간 지역은 여전히 '고립무원'의 모습이었다.

최 할머니의 집은 강릉 도심에서 5㎞ 정도 들어가는 곳으로, 제비리에서도 칠봉산 기슭에 집 한 채만 덩그러니 있는 외딴 집이다.

마을 사람들은 "눈이 많이 쌓여서 웬만해서 못 올라갈 텐데…"하며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최 할머니의 집까지는 평소면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소나무가 울창한 산길을 따라 10분만 오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눈이 가슴 높이까지 차올라 걸음을 옮길 때마다 허리까지 푹푹 빠져 넘어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출발 1시간이 다돼서야 도착했다.

숨은 턱밑까지 차오른데다 눈발이 계속 눈앞을 가려 도착하기도 전에 몸은 녹초가 됐다.

산간 고립 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대부분 고령 노인들이다.

이 눈밭을 스스로 뚫고 나와 도움을 요청하기는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처마까지 눈이 차오른 최 할머니의 집은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로 사람 사는 곳임을 알렸다.

5평 남짓한 어두컴컴한 방에서 혼자 몸을 녹이고 있던 할머니는 눈길을 뚫고 온 기자를 오히려 걱정했다.

아랫목을 내어주고 손수 따뜻한 커피를 타서 두 손에 쥐여줬다.

최 할머니는 "사람 구경을 언제 했는지도 모르겠다"면서 "그래도 다행히 겨우내 불 땔 나무와 연탄도 미리 해두고, 먹을 것도 모아둬서 아픈데 없이 지내고 있다"며 웃었다.

최 할머니는 강릉시내에 살다가 5년 전 아는 사람에게 세를 들어 제비리로 이사 왔다.

주변에 집이 없어 적적할 때도 있지만, 조용히 기도하며 지내기에는 만족스러운 곳이다.

면사무소에서 군인들을 동원해 길을 내주겠다고 했지만, 한사코 만류한 할머니였다.

"우리 손자도 지금 군대에 가 있거든. 손자 생각이 나서 이 추운데 애들을 고생시킬 수가 있어야지."

할머니는 눈발이 잦아든 엊그제 집 앞에 '토끼굴'을 뚫었다.

성하지 않은 허리로 반나절을 작업해 연탄재를 내다버리고 산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집 둘레 군데군데에 사람 한 명이 지나다닐만한 길을 낼 수 있었다.

매일 전화해 안부를 확인하는 면사무소 직원들과 멀리 사는 자식들에게 '걱정하지 마라'고 얘기한 게 일주일째다.

이제는 눈도 그칠 만하건만 걱정하는 자식들에게 미안하게 전날부터 또 30㎝가 넘는 눈이 쌓여 야속하기만 하다.

그래도 할머니는 부엌 아궁이 옆에 층층이 쌓아 모아둔 연탄과 장작더미를 보여주며 "필요한 게 다 있어서 괜찮다"라며 웃어 보였다.

언 몸을 녹이고 가라며 손을 잡아끌던 최 할머니는 "내가 시골 사람이라 눈도 잘 치우고 불편한 걸 모른다"면서 "나무로 지은 집이 튼튼해서 눈이 내려도 끄떡없고, 이렇게 편안히 앉아서 눈 구경을 실컷 한다"며 하산하는 기자를 오히려 안심시켰다.

최 할머니가 사는 강릉시 구정면 제비리를 비롯해 이번 폭설로 고립된 곳은 강릉과 삼척 등 2개 시·군 8개 마을 65가구다. 대부분 고령의 어르신들로 눈이 그치기만을 기다리며 여전히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r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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