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정당한 자위권의 잣대가 필요하다

신경립 국제부 차장 2014. 7. 3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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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방위'는 늘 논란의 대상이 된다. 총기 소지가 허용된 미국에서는 특히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상대를 죽이는 행위가 정당방어인가, 과잉대응인가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심심찮게 제기된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플로리다에서 발생한 소위 '지머먼 사건'이다. 편의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무고한 흑인 청년을 쏴 죽인 히스패닉계 자경단장이 정당방위법(스태드 유어 그라운드 법)에 따라 무죄 판결을 받자 미국에서는 거센 논란이 일었다.

상대방이 실제 무기를 소지하지 않고 나를 해칠 의사가 없더라도 내가 위험을 느꼈다는 자기방어를 이유로 상대를 죽이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새벽에 술 취해 자신의 집 대문을 두드린 이웃에게 총을 쏴도 불기소되는 미국 사회의 '정당방위' 개념에 때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지난해 인종 문제로까지 비화한 '지머먼 판결' 이후 미국에서도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정당방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일명 '슛 퍼스트(일단 쏴라)' 법으로까지 불리는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 법'은 그 이후로도 정당방위라는 명분 아래 수많은 살인행위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

어디까지가 정당방위인가를 둘러싼 논란은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국제사회의 분쟁에서도 자위권(right of self-defense)은 명확한 선을 그을 수 없는 모호함을 포함한 개념이다.

자위권이란 외국으로부터 불법 침해를 당한 위급한 상황에서 자국을 방어하기 위해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다. 개인들 간의 다툼에서 정당방위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제기되듯이 국제사회에서도 군사행위를 '자위권' 행사로 포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북한은 명백한 도발행위인 동해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자위권 차원'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이다. 서울의 절반을 조금 넘는 봉쇄된 땅에 무차별 폭격과 지상군 공격을 가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가자지구 거주 팔레스타인인은 1,000명이 넘는다. 병원과 학교, 아이들의 놀이터가 모두 이스라엘군의 공격 대상이 됐다. 그러나 '학살'로도 불리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당사국인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미국까지도 이스라엘의 '자위권'이라고 규정한다. 하마스의 로켓 공격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안전을 방어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민간인 인명피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이스라엘 자위권에 대한 지지 의사를 거듭 밝히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등 미국 정치인들의 입에서 선제공격을 당한 팔레스타인인의 자위권은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자위권은 분명 필요한 개념이다. 하지만 미국의 힘 있는 동맹국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자위권 개념에 얼마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특히 미국의 비호 아래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게 된 상황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자위권' 주장을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은 편치 않다. 더 이상의 참극과 분란의 불씨를 막기 위해서라도 국제사회에서 정당한 자위권 개념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할 때다.

신경립 국제부 차장 kls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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