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벨상 배출하는 사회 풍토

입력 2012. 10. 10. 17:13 수정 2012. 10. 11.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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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마나카 신야 박사가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의료와 신약 개발에 큰 지평을 연 발견을 인정해 2008년 물리학상 3명과 화학상 1명, 2010년 물리학상 2명에 이어 2년 만에 일본인 노벨상 수상이다. 이로써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19명이며 문학상과 평화상을 제외한 16명이 이공계다.

필자는 외무성 국제과학협력실장 시절 수상자와 많은 연구자들에게서 과학 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과학은 진리의 탐구로 복잡 무수한 사상(事象)에서 본질만을 추출해 속임수 없이 핵심 문제를 직시하는 진지한 자세가 요구된다. 철저하게 자유로운 연구 풍토도 필요하다. 은사도 선배도 학벌도 없이 가차 없는 토론과 비판을 통한 보편적 진리를 향한 지칠 줄 모르는 도전이다. 진리를 위해 권위와 싸운 갈릴레오나 다윈처럼 말이다.

야마나카 박사는 최근 업적을 평가받았지만, 30~50년 전 성과를 평가받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 명예나 기업ㆍ국가적 손익 계산을 초월한 인류를 위한 헌신적인 기초 연구다.

2009년까지 필자는 베이징에서 근무했다. 칭화대와 베이징대를 비롯한 중국 학생들이 맹렬하게 공부하는 자세는 일본과 한국 이상으로 미국 일류대 이공계 대학원에 중국 학생이 많은 것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중국 대학에 우수한 비즈니스맨은 넘쳐나지만 참 연구자는 없다. 낡은 보스(boss) 지배가 활개치고 있다'는 통렬한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런 자기비판이 있다는 것 자체는 건전하지만, 그때그때 유행인 연구 테마에 달려들어 쉬운 대로 데이터를 짜깁기해서는 과학 기반이 강하다고 할 수 없다. 본인이 깊고 꾸준하게 연구하고 능력을 갖추었기에 받는 노벨상이지만, 한국에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것은 일본 연구계의 넓은 저변과 다양성이다. 이공계 수상자 16명 중 도쿄대가 4명, 교토대가 6명. 2002년 이후는 홋카이도대, 도호쿠대, 나고야대, 고베대 등 전통 있는 지방대에서 수상자가 속속 나오고 있다. 수도권 이외 대학 기반이 아주 강한 것이 일본의 특징이다.

2002년 화학상 수상자인 다나카 고이치 씨는 학부 졸업 후 줄곧 민간 기업에서 일한 기술자로 박사 학위도 없다. 대학뿐만이 아니라 대기업, 중견ㆍ중소기업도 다양한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를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하고 있다.

야마나카 박사는 고교 때는 유도부와 노래 동아리에서 활약했고, 대학입시 전날에도 럭비를 했다. 또 마라톤 풀코스를 몇 차례나 완주했다. 유머와 비즈니스 감각도 있다. 도쿄대ㆍ교토대 등 최고 학벌도 아니며, 정형외과에서 수술을 잘하지 못해서 연구자로 전환했으나 그마저 벽에 부딪쳐 고민했다. '인간 만사 새옹지마'가 마음의 버팀목이었다고 한다. 좌절을 모르는 초엘리트만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용기를 나 같은 평범한 사람도 갖게 해준다.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수상은 기쁘지만 일본도 과제가 많다. '산업과 연구 간 연계가 약하다' '외국 유학 희망자가 줄었다'는 점 등이다. 미국은 각국 두뇌들이 모여들어 자연스럽게 절차탁마(切磋琢磨)할 수 있는 혜택 받은 환경이 있다. 한국은 미국 유학생이 일본보다 훨씬 많다는 장점이 있다. 중ㆍ고등학생의 강한 경쟁심, 박사학위 취득 의욕이 강한 것도 일본 이상이다.

눈앞의 이익이나 지위가 아니라 사후에 비로소 인정받는다 해도 원이 없다는 착실한 진리 추구, 기초연구를 통해 인류에 헌신하겠다는 각오, 이를 귀히 여기는 사회 풍토만 함께한다면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날도 머지않을 것이다.

[미치가미 히사시 주한일본공보문화원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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