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지난해 상업운전을 시작한 신월성 1호기에 폐기돼야 할 센서가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센서 전문업체로부터 재사용이 불가하다는 자문을 얻은 뒤에도 지침을 바꾸지 않았다. 지난해 말 터진 엉터리 원전 부품 납품 사건 이후 한수원이 약속한 원전 부품 직접 구입 약속도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 일회용 원전 밸브 성능시험용 센서 재활용

18일 경향신문이 취재한 결과를 보면 정비 중인 신월성 1호기에서 모터구동밸브(MOV)와 공기구동밸브(AOV) 등 안전계통 제어밸브의 성능시험에 쓰이는 일회용 센서(스트레인게이지)가 폐기 처분되지 않고 재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월성 1호기는 지난달 위조 부품이 설치된 것으로 확인돼 일정을 앞당겨 제1차 계획예방정비를 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신월성 1호기 현장에서 최초 가동 직전에 성능검사를 위해 밸브에 부착한 센서가 지금도 그대로 붙어 있었다"고 말했다. 올해 신월성 1호기 밸브의 성능시험을 수행한 업체가 신규 센서를 구입하지 않고 이전에 사용한 센서를 재사용한 것이다.

안전계통 제어밸브는 원전 배관을 흐르는 물과 증기를 제어하는 부품으로 고장날 경우 원자로의 방사성물질이 누출될 수 있어 엄격한 품질 관리가 필요하다. 센서는 이 밸브에 부착해 안전성을 평가할 때 사용되며 가격은 개당 약 150만원이다. 원전 한 기에 설치된 약 170개의 밸브 점검에는 최소 30개에서 최대 70개 이상의 센서가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1979년 스리마일 원전 사고 원인이 밸브 오작동으로 밝혀지면서 1980년대 중반부터 밸브 신뢰성 시험을 의무화했다. 국내에서도 2001년부터 밸브 성능평가를 하고 있지만 엄격한 시험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국내에서 생산되거나 해외에서 수입돼 사용되는 센서는 모두 일반산업등급(S등급) 부품이다. 미국은 5대 발전사를 포함해 모든 원전에서 안전성등급(Q등급)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점이 지적되자 고리 4호기는 지난 1월 실시된 계획예방정비 때 Q등급 센서를 밸브 성능평가에 사용했다. 그러나 이후 이뤄진 9개 원전의 정기점검에서는 다시 S등급 센서가 사용됐다. 국내 원전은 한수원 한 곳이 일괄적으로 운영하고 있는데도 안전관리는 일관성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밸브 시험용 센서를 제작해 성능평가를 하는 국내 업체는 한전KPS, M&D 등 2곳이지만 이들은 Q등급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다. Q등급 제품을 사용하려면 미국 등 해외업체를 통해 센서를 수입할 수밖에 없다. 이러다보니 발주업체인 한수원이나 용역업체인 한전KPS 등은 값이 싸고 자체 생산이 가능한 일반산업등급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한수원은 센서 부착 상태가 양호하고 품질에 이상이 없을 경우 재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생산·유통되고 있는 센서는 모두 일회용이기 때문에 재사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센서 업계 1위인 미국 텔레다인사 관계자는 본지와 주고받은 e메일에서 "특수 설계된 센서가 아니라면 재사용이 불가능하다"며 "경비 절약과 부품 국산화라는 이유 때문인 듯하지만 이는 원전 안전에 치명적인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수원 중앙연구원은 지난해 12월 텔레다인사로부터 이 같은 답변을 듣고도 센서 사용지침을 바꾸지 않았다.

■ 부품도 수주업체가 자의적으로 조달

한수원은 지난 2월 구매사업단을 신설하고 원전 부품 구매를 지역본부가 아닌 본사에서 직접 챙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밸브 시험용 센서는 시험업체가 필요량을 생산 또는 수입한 후 한수원이 사후 결제하는 방식으로 구매가 이뤄진다.

전문가들은 핵심부품인 안전계통 밸브의 성능평가에 사용되는 만큼 다른 부품과 마찬가지로 본사 구매사업단에서 일괄 구매해 품질을 검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품질보증 프로그램에 따라 밸브 시험용 센서의 품질을 관리하고 있고 공인시험기관으로부터 합격한 센서가 용역업체의 성능 평가에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