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입 vs. 신탁' 격론 벌이는 하우스푸어 해법..진짜 핵심은

2012. 9. 2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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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43세 정모씨. 그는 3년 전에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인근에 34평짜리 아파트를 2억8000만원가량에 분양받았다. 인근에 조성되는 각종 사회기반시설과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 도심지하철 노선 연장 등등을 고려할 때 투자 가치는 장밋빛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 이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집값은 현재 분양가 아래를 밑돌고 있다. 은행에 매달 내는 이자만 해도 1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정씨는 요즘 밤마다 자신의 집을 손으로 퍼서 서울 강남에 그대로 옮겨두는 꿈을 꾼다고 한다.

집을 사기 위해 은행에 빚까지 냈지만 부동산 가격 하락 때문에 집을 팔아도 빚을 다 갚지 못하는 사람들을 '하우스푸어'라고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이 단어는 최근 들어 연일 방송과 신문지상을 장식할 만큼 유명한 말이 됐다.

최근 정치권과 금융당국, 은행권에서는 하우스푸어의 해법으로 '세일 앤드 리스백'(매입 후 임대)나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신탁 후 임대) 제도 도입을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언뜻 보기에 하우스푸어들에게 내려온 동아줄 같은 묘책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단순히 대출 만기를 늦춰주는 산소호흡기 수준의 정책에 그칠 경우 상황은 또다시 원점이 될 공산이 크다.

■매입 vs. 신탁… 민간과 정부 측 이견

KB금융연구소가 지난 5월에 발표한 가계부채 고위험군 분석 자료에서는 빚을 갚기 위해 주택 처분이 필요한 가구들을 하우스푸어로 분류했다. 가구별로 주택의 40% 이하, 40% 이상 그리고 모두 처분해야 하는 계층으로 나뉘기는 하지만 어쨌든 대출을 갚기 위해 집을 처분해야 하는 계층은 45만여 가구, 이들의 부채는 138조원에 달한다. 현재 금융당국과 민간 은행들은 금융권이 공동으로 동참하는 세일 앤드 리스백이나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 도입에는 의견 일치를 보고 있지만 방식에서는 이견이 있다. 하우스푸어들을 실효성 있게 구제하려면 신탁보다는 매입 방식을 취해야 효과가 있다는 게 민간의 의견인 반면, 금융당국은 신탁 방식으로 가닥을 잡아 가고 있다.

신탁 방식은 18%대 연체 이자보다 저렴한 5%대의 월세를 낸다는 점에서 하우스푸어가 매달 지급하는 금융비용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그때까지 쌓여 있는 원금과 이자는 그대로 남는다. 최장 5년간의 임대 계약이 끝날 때까지 그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결국 원점이다.

■정교한 제도 설계가 관건

세일 앤드 리스백이나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은 기본적으로 집을 소유한 대출자가 이 프로그램에 응해야 이뤄질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은행이 집을 사는 세일 방식의 경우 집값을 결정하는 부분에서 은행과 주택 소유주 간에 이견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신탁 방식 역시 현금이 부족한 하우스푸어 입장에서 월세를 꾸준히 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집값 대비 월세가 얼마만큼 책정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정상대출 이자에 비해 주택 월세가 비싼 수준이 될 것"이라며 "월세를 내지 않으면 집을 매각할 수 있도록 해놓는다고 해도 사실상 그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월세에 대해 다른 기관에서 보증을 해주는 방안도 연구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정호 금융연구원 금융산업.경영연구실장은 "금융기관과 채무자 간에 채무조정 과정에서 하나의 옵션으로 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해볼 만한 일"이라며 "그러나 이를 일반화할 때는 형평성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집조차 없는 진짜 '푸어' 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서 실장은 "우리나라는 집값 대비 월세가 싸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 손해를 보는 등 부작용이 생길 우려도 크기 때문에 아주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며 "특히 은행 입장에서는 신탁이든 매입이든 집값 하락이라는 리스크를 떠안고 가야 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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