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동북아 패권 거센 풍랑속 '3無 외교' 허우적

워싱턴 2013. 12. 2.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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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日 메아리 없는데 박근혜정부 "신뢰"만 외쳐MD·방공식별구역 등 전략없이 위험한 줄타기주변국 비난 감수해도 앞서서 방향 제시해야

한국 외교가 혼돈에 빠졌다. 동북아 패권을 놓고 미일 양국과 중국이 맞붙는 거센 풍랑 속에서 갈피를 못 잡는 양상이다. 미사일방어(MD) 체제와 집단적 자위권으로 촉발된 양측의 불협화음은 급기야 방공식별구역을 둘러싼 충돌로 번져 한국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신뢰와 전략, 존재감이 없는 '3무(無)' 외교의 굴레에 갇혀 허우적대는 모습이다.

공허한 신뢰외교

박근혜정부의 외교정책 키워드는 '신뢰'다. 북한을 넘어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신뢰를 강조한다. 그 청사진으로 차근차근 협력의 강도를 높이자는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내세웠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반대다. 오히려 불신과 대립의 구도가 강화되고 있다. 해묵은 영토분쟁에 국민감정까지 겹쳐 안보 갈등이 증폭되는 아시아패러독스가 지배하는 구도다.

박 대통령이 올해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세 차례나 만났고 최고위급 전략대화 채널도 가동했지만 이어도를 포함하는 방공식별구역의 일방 선포로 중국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미국은 일본과의 동맹에 우선순위를 두며 한미공조에 이상신호를 보내고, 일본은 잇단 우경화 조치로 한국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1일 "갈등의 수위가 워낙 빠르게 높아져 신뢰를 외쳐봐야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라고 말했다.

모호한 전략과 위험한 줄타기

외교정책에 깔린 전략적 판단도 애매하다. 정부는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모호성'을 강조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양상이다.

MD 논란이 단적인 예다. 정부는 한국형 MD가 미국 주도의 MD와 다르다고 읊어대지만 중국의 의구심만 키울 뿐이다. 일본과는 원칙에 얽매여 대화를 거부하다 보니 혈맹인 미국마저 고개를 갸웃거리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뒤늦게 이어도를 포함해 방공식별구역을 넓힌다지만 이 지역을 선점한 중일 양국이 동시에 반발할 경우 어떻게 대처할지 의문이다. 미국은 한국 방공식별구역 확대 추진에 신중한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확대에 대해 지역정세 불안을 우려해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어, 한국의 조치에도 같은 입장을 개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 소식통은 "한미간 본격 협의가 이뤄진 상황은 아니다"며 "미국도 동북아 긴장완화를 위해 고려할 사안들이 매우 복잡해 보인다"고 전했다.

이렇다 보니 동북아에서 한국 외교의 존재감도 흐릿해지고 있다. 이슈별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지만 동북아 정세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매번 뒷북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열강의 세력다툼에 끼어 끌려 다녔던 구한말의 상황이 연상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창의력 발휘, 지렛대 확보 절실

이를 탈피하기 위해선 커진 국력에 걸맞은 상황관리능력과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주변국에 선제적으로 방향을 제시하는 창의적인 외교역량을 발휘할 시점인 것이다.

가령 방공식별구역 문제에 대해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3국 협의를 제안해 갈등 수위 조절에 나서는 것도 방법이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 대통령이 외국정상과 숱하게 만난들 우리만의 컨텐츠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며 "주변국의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먼저 총대를 메는 용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을 지렛대로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여 중국을 견제할 수도 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우리가 미국을 상대로 할말을 한다면 중국도 얕볼 수 없을 것"이라며 "한중, 한미관계가 마냥 좋을 것이라는 착시현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의 외교정책이 연성이슈에서 벗어나 경성이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역내 국가간 군사적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여전히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 얽매이는 것은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황지환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정부가 변죽을 때리면서 상황이 호전되길 기다리기에는 동북아 정세가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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