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군사정보협정 연기] "영토도발 하는 일본과 무슨 군사정보협정이냐"
외교부 는 29일 오전 8시 21분 출입기자들에게 '한일 정보보호협정 서명 예정'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오전 11시 34분에는 국문과 영문으로 된 협정문 전문(全文)도 제공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오후 4시로 예정된 이 협정 서명을 그대로 밀어붙일 태세였다.
그러나 이날 오전엔 이미 민주통합당 등 야당들은 이 협정을 비공개로 처리한 국무회의를 주재했다는 이유로 김황식 총리 사퇴까지 요구하고 나섰고, 새누리당 에서도 "이 상태에서 협상을 체결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었다. 일본 과 광복 후 첫 군사협정을 체결하려는 데 대한 여론의 반감도 눈덩이처럼 커졌다.
◇ 정부, 뚜렷한 논리 제시 못해
정부는 이날 오후 2시 10분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전화해 협정 체결 보류를 요청하자, 이때에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분주히 움직였다. 결국 협정 체결 1시간이 채 안 남은 상태에서 '서명식 연기' 결정이 내려졌다.
정부는 작년 초 일본 과 정보보호협정 및 군수지원 협정 등 2개의 군사협정을 추진키로 결정한 뒤 줄곧 이들 협정이 꼭 필요한 이유와 논리를 제시하지 못했다. 대북(對北) 핵·미사일 정보 공유가 유일한 이유였다. 그러나 일본과 이같은 협정이 없어서 지금껏 정보 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거나 그로 인해 위기를 초래한 사례조차 제대로 내놓지 못했고, 이 협정이 체결되면 무엇이 얼마나 더 나아질 것인지에 대한 전망도 명확하지 않았다. 외교부와 국방부 당국자는 "한때 공산국가였던 러시아와도 맺은 협정인데 일본과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가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한 전문가는 "왜 이 협정을 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한 채, 아직도 '독도는 일본 땅'이라며 영토 도발을 일삼는 일본과 군사협정을 체결한다는 데 동의할 국민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여기에다 국무회의 통과가 비밀리에 이뤄졌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국민적 반감에 불을 질렀다"고 했다.
◇"'MB(이명박)식 불통' 다시 도졌다"
야권에선 이 협정을 추진한 이명박 정부를 1905년 을사늑약을 주도했던 '이완용'에게 비유하면서 맹공세를 폈다. 인터넷 등을 중심으로 "'MB(이명박)식 불통' 다시 도졌다"는 여론이 급속히 번져갔다. 한 전직 정부 관료는 "아무리 좋은 정책도 국민 지지가 바탕이 돼야 하는데 정부가 '우리는 무조건 옳다'는 독선에 빠진 것 같다"며 "무리하게 꼼수를 부리는 바람에 협정의 좋은 취지마저 퇴색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 협정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대마저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국무회의 통과 사흘 만에 '여론의 벽'에 막혀 허둥지둥 포기한 모양새가 됐다는 것이다.
이날 협정이 전격 연기된 뒤에도 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국회를 최대한 설득해 국익에 도움이 되는 협정이란 인식을 갖도록 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국방부, 외교부 모두 협정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국무회의 비공개 처리 같은 문제에 대해선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김황식 국무총리는 이날 밤 보도자료를 통해 "절차상의 문제로 의도하지 않게 국민에게 심려를 드리게 된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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