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3세 승계 앞둔 삼성, '백혈병 사과' 이어 '무노조' 포기?
[한겨레] 전략실 임원 "과거와 상황 달라
노조 막으려해도 막을 수 없어"
70여년 무노조 경영 변화 시사
이건희 회장 건강 악화 계기경영권 승계 부담덜기 나선 듯전략실 "사회적 승인 필요 인식"
삼성이 3세 경영체제 전환을 위한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백혈병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면서, 무노조 경영의 변화 여부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삼성에서도 무노조 경영 변화 가능성을 열어놓는 듯한 발언이 나와 주목된다.
20일 삼성·노동계·시민사회의 말을 종합하면, 삼성이 지난 14일 백혈병 사태에 대한 사과와 함께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밝힌 것은 이건희 회장의 건강 악화로 앞당겨지게 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3세 경영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삼성이 그동안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아온 쟁점들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삼성 3세 체제의 본격 전환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삼성 미래전략실의 한 핵심 팀장도 "삼성도 3세 체제 전환이 단순한 지분 승계뿐만 아니라 '사회적 승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백혈병 문제 해결도 그런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혈병 문제 해결은 삼성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추진해온 변화의 연장선 속에서도 볼 수 있다. 삼성은 지난 1월 신입사원 채용제도 개편의 일환으로 대학총장 추천제를 내놓았고, 2월에는 정년 60살 연장과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7월에는 사장단회의에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을 초청해 쓴소리를 듣고, 지난해 말에는 "삼성이 국민에게 사랑받는 대표 기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관한 여론조사를 벌였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삼성이 백혈병 사태에 책임을 인정하면 산재사업장으로 낙인찍혀 국내외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걱정이 있었지만, 오히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이미지를 개선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 경제계의 시선은 삼성이 창업자의 경영철학을 이유로 70여년간 고수해온 무노조 경영으로 쏠리고 있다. 무노조 경영은 헌법에서 보장한 노동자의 권리를 가로막고 시대 흐름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들어왔다. 삼성도 때맞춰 무노조 경영의 변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발언을 했다. 미래전략실 임원은 "무노조 경영의 취지는 (노조 금지가 아니라) 노조가 필요 없을 정도로 직원 대우를 잘해주겠다는 것"이라며 "지금은 과거와 상황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이 임원은 "이미 노조를 만든 (계열사) 사업장이 계속 늘어나고 있고, (복수노조 허용 등) 과거와는 법제도가 달라져 설령 막고 싶어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도 말했다. 또 그는 "요즘에는 과거와 같은 (노조를 막기 위한 납치·협박 등의) 일들은 없지 않으냐"며 "연초 전체 임원교육에서도 무노조 관련 부분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런 말을 근거로 삼성이 백혈병 사태처럼 당장 무노조 경영 포기 선언을 할 것으로 단정짓기는 힘들다. 삼성 미래전략실도 "(현재로서는) 그런 계획이 없다"며 신중한 모습이다. 하지만 삼성이 3세 승계 본격화 시점에 맞춰 노조 허용을 발표하거나, 사실상 노조를 용인할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평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삼성이 사회와 소통하고 건전한 사회구성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면 노조 문제를 풀 수밖에 없다. 이재용 부회장이 공식 승계 시점에 직접 발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의 박유순 미조직비정규국장은 "삼성이 산업재해와 비정규직 해결에 전향적이라면, 노조 허용으로 인해 회사가 혼란에 빠지거나 경쟁력이 훼손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외 상황도 무노조 경영 고수를 어렵게 만든다. 2010년 이건희 회장의 경영 복귀 이후 신설된 삼성 계열사와 비정규직의 노조는 모두 4곳이다. 에버랜드 노조가 2011년 설립됐고, 올해에는 삼성에스디아이와 삼성코닝 노조가 만들어졌다. 지난해에는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노조를 세웠다. 노동계는 조만간 다른 사업장에서도 노조 설립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국제 노동계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금속노조는 "최근 타이와 독일에서 열린 제조산별노조 아시아총회와 국제노총 회의에서 삼성의 무노조 경영과 산업재해가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고 밝혔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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