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수자다]비보수 탈북자들 "탈북 2세대는 평화적 남북관계 중시"

2012. 3. 28. 15:2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의 대다수는 보수우파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언론에서 보수세력과 함께 나오는 몇몇 탈북자가 마치 탈북자를 대표하는 모습인 양 비쳐지고 있다"

2월 24일부터 서울 효자동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시작된 탈북자 북송저지 집회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언제나 그렇듯 탈북자 인권 집회를 주도한 것은 보수단체였다.

집회를 주도한 '탈북난민구출네트워크'에는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찬성 집회를 조직했던 서경석 목사를 비롯해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 박세환 재향군인회 회장 등 유명한 보수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집회를 지켜보던 기자는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과연 탈북자들은 보수세력의 북한 인권에 대한 접근방식에 모두 동의하는 것일까. 보수적 성향이 아닌 탈북자는 얼마나 있을까.

현재 탈북자들은 탈북자동지회, 숭의동지회 등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새터민들의 쉼터'와 같은 탈북자 인터넷 커뮤니티도 있다. 이런 커뮤니티에서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배후에는 김정일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은 다르다 박정희 같은 분이 나오신다면 독재를 하더라도 응원하겠다"와 같은 보수적인 주장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어렵사리 자신이 보수성향과 무관하다는 한 탈북자와 접촉할 수 있었다. 해외에 거주 중인 이진철씨(가명)는 "탈북자의 주류세력은 수구우파다. 나는 그들에게 왕따를 당해 한국을 떴다"고 말했다. 이씨는 "탈북자들이 수구우파로 비쳐진다는 점은 남한 사람들로 하여금 탈북자들을 무시하는 원인 중 하나다"고 말했다. 그는 "탈북자들의 대다수는 보수우파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언론에서 보수세력과 함께 나오는 몇몇 탈북자가 마치 탈북자를 대표하는 모습인 양 비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1세대는 보수, 2세대는 합리적 의견 지지

이씨를 통해 아직 남한에 살고 있는 비보수 탈북자들을 소개받았다. 대부분 이씨처럼 자신의 이름과 신분, 얼굴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였다.

기자가 접촉한 비보수 탈북자들은 흔히 말하는 2030세대였다. 대학원에서 통일문제를 공부하고 있는 전광일씨(가명·29)도 그 중 하나다. 전씨는 기자에게 탈북자들이 보수세력에 동조하게 된 원인을 설명했다.

"제가 북한에 있었을 때 가끔 남한 사람이 월북해오면 그걸 가지고 엄청나게 홍보를 했던 기억이 나요. 남한도 옛날엔 마찬가지였죠. 군부정권과 그 뜻을 같이 하는 보수세력이 '귀순용사'를 앞세워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했죠. 그리고 초기에는 생계형 탈북이 많았기 때문에 공안당국이나 보수세력이 원하는 행동을 해줄 수밖에 없었어요. 그 1세대 탈북자들이 아직도 여러 탈북자단체에서 대표로 활동하고 있고요."

전씨는 자신을 비롯한 젊은 2세대 탈북자들은 좀 더 합리적인 의견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이 흐르면서 '생계형' 탈북보다 더 나은 삶과 자유를 찾아 북한을 떠난 '목적형' 탈북이 많아졌다는 점도 지적했다.

"2세대 탈북자들은 1세대에 비해 교육수준이 높은 편입니다. 저도 그렇지만 한국에 와서도 꾸준히 고등교육을 받으며 극단적 주장에 무조건 따라가기보다 북한문제에 합리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2세대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여유가 없지만 조만간 평화적인 남북관계를 중시하는 2세대가 주도하는 시대가 올 겁니다."

전씨는 보수세력의 대북 강경론에 반대하는 젊은 탈북자들의 의견도 전했다.

"남한의 보수주의자들은 햇볕정책 때문에 김정일 정권이 수명을 연장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햇볕정책 기간에 남북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평화로웠고, 개성과 금강산에서 남북한 사람들이 직접 만났습니다. 이렇게 안보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탈북자 문제 소극적인 진보진영 아쉬워

아울러 전씨는 탈북자 인권문제에 소극적인 진보·개혁진영에 대한 아쉬움도 표했다.

"민주정부 10년이 지나면서 MB식의 강경 대북정책보다 평화정책이 옳다고 생각하는 탈북자들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의외로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 10년 동안 진보세력이 합리적 생각을 가진 탈북자들과 함께 북한 인권운동을 했더라면 지금처럼 보수세력이 탈북자 문제를 총선에 이용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또다른 젊은 탈북자 임지형씨(가명)는 북한에 살던 시절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대북 강경론에 회의적인 입장을 표했다.

"북한에 식량지원을 해도 군대에 전용되거나 고위층이 가져가기 때문에 지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 '대한민국'이라고 써 있는 포대를 직접 받아본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쌀을 주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보관기간이 짧은 다른 식량을 지원하면 됩니다. 북한 인권을 말하는 분들이 인도적 지원을 반대하는 건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임씨는 '2세대 탈북자'들이 추구하는 평화통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권력이 넘어오면서 북한이 민주화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북한 내부가 혼란할 때 국군을 평양에 진격시키자는 말이 아닙니다. 북한 핵심부의 장악능력이 떨어지면서 내부 변화를 통해 남한처럼 민주적인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열렸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남북한의 민주정권이 대화를 통해 평화적인 통일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몇몇 2세대 탈북자들은 합리적인 남북관계가 무엇인지 연구하는 스터디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전광일씨는 "MB정권이 한계에 달한 지금이 진보세력이 북한 인권문제를 주도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보다 합리적인 북한 인권문제의 해결책이 제시되면 자연스레 2세대 탈북자들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열린다는 의미다.

평화적 남북관계를 지지하는 탈북자 출신의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39)은 "진정으로 북한의 인권개선을 말하려면 북한과 교류하고 대화할 줄 알아야 한다. 북한을 비판하고 돌멩이만 던지는 건 너무 쉬운 일이다. 남한에서 북한 인권을 이야기하는 분들은 우선 북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한 분들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김 소장은 "북한 인권을 이야기하는 남한의 정치인들은 정작 남한의 인권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인권은 남과 북이 따로 있을 수 없으며, 자신으로부터 가까운 곳부터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 주간경향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