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D가 한국기업 보호? 캐나다 변호사들 '절레절레'
[한겨레] 중재인에 "ISD 무력화" 압력까지…패소하지 않는 나라, 미국
나프타 피소 21건중 패소 '0'…"미국 법·판례 그대로 반영"
"미국에 투자한 우리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는 필요하다."(외교통상부 자료집, 'ISD, 공정한 글로벌 스탠다드' 중에서)
우리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폐기할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하지만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이후 미국 정부를 상대로 19건의 국제중재를 제기한 캐나다의 법률가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스 밴 하튼 캐나다 요크대 교수(오스굿 홀 로스쿨)는 "캐나다 기업은 법률·중재비용으로 수백만달러를 지불했지만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직 캐나다 외교관인 존 존슨 변호사도 "미국은 승소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절대 합의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투자자-국가 소송제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우등생'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캐나다 기업(19건)과 멕시코 기업(2건)에 21차례 피소됐지만 패소한 적도, 합의한 적도 없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서 진행된 국제중재사건을 분석해보면, 합의하거나 취하하는 경우가 평균 10건 중 4건이고, 국가의 패소율(46%)이 승소율(31%)보다 높은데도 말이다. 반대로 캐나다나 멕시코 정부는 여러 차례 합의하고 패소했다.
왜 미국 정부만 패소하지 않을까?
하튼 교수는 "미국 정부가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없앨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어서"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이 패소한다면 미국 의회가 '사적 중재인들이 미국의 공공정책과 판결을 짓밟을 수 있느냐'며 소란을 일으킬 것이고, 그러면 이 제도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걸 중재인들이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다국적기업의 변호사로 활동하는 중재인들은 수조원의 법률시장이 사라지길 바라지 않아 '자기검열'을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1998년 10월 캐나다 장의업체가 제기한 로언 사건 중재인을 맡았던 미국의 전직 판사 애브너 미크바는 미국 정부의 압력을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미국 법무부 고위 관료가 찾아와 "미국이 로언 사건에서 패소하면 나프타를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는 것이다. 중재인들은 미국의 판결이 명백히 부당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절차적 문제를 들어 캐나다 기업의 청구를 기각해버렸다. 데이비드 슈나이더먼 캐나다 토론토 로스쿨 교수는 "중재인들이 전략적으로 행동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헌법과 판례를 토대로 만들어진 투자협정이 준거법이라는 점도 미국 정부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해 10월 의회에 제출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미국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투자 분야는 미국의 법 원칙과 판례를 그대로 반영했다"고 명시돼 있다. 한국 헌법이 투자자-국가 소송에서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슈나이더먼 교수는 "한국이 국제중재에 대비하려면 제일 먼저 미국 헌법을 공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패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미국 기업의 든든한 원군 노릇도 맡는다. 내부고발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2010년 1월28일치 아르헨티나 주재 미국대사관 보고서를 보면, 미국 대사가 수도시설을 공영화했다는 이유로 미국 기업 아주리에 배상금을 물어줘야 할 처지에 놓인 아르헨티나 경제장관을 만나 배상금 협상에 응하라고 압박한 것으로 돼 있다. 또 미국대사관은 아르헨티나 정부 내 동향을 파악해 미국 기업에 알려주기도 했다.
존슨 변호사는 "특정 국가가 패소하지 않는 국제중재제도라면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론토/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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