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인프라코어는 어쩌다 위기를 맞게 되었을까요
[한겨레] [더 친절한 기자들] 기업공시로 본 상황
영업이익 내지만 밥캣 인수로 빚더미 올라
두산에 내는 브랜드 사용료 급증세
그룹 연수원·연구단지 부지 매입에 수백억
베어스 야구선수 헬멧에 로고 사용 대가로 수십억
두산은 고배당 잔치…창업주 가족에 돌아가
두산인프라코어가 올해 네 번째 실시한 희망퇴직에 20대 신입사원이 포함됐다고 해서 논란이 뜨겁습니다. ( ▶ 관련 기사 : 두산인프라코어 20대 사원 ‘명퇴가 미래다’ ) 두산인프라코어가 그렇게 절박한 상황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전자금융감독원 누리집( ▶ 바로 가기 )에서 열람할 수 있는 기업공시를 살펴봤습니다.
굴삭기와 공작 기계를 만들어 파는 두산인프라코어㈜는 매년 3000억원 정도의 영업이익을 내는 회사입니다. 2014년엔 4530억원, 2013년 3695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죠. 이렇게 꾸준히 수천억원의 이익을 내는 회사가 왜 직원들을 내보낼까요? 게다가 직원들이 익명으로 대화하는 블라인드앱을 보니, 직원들은 이번에 퇴사하면 10~20개월에 해당하는 급여를 위로금으로 받지만, 희망퇴직을 거부하면 조만간 정리해고가 실시돼 위로금이 전혀 없을 거란 압박을 받는다는군요. 정리해고는 법적으로 ‘긴급한 경영상의 위기’일 경우에만 실시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입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정말 정리해고를 해야 할 정도로 위기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긴급한 수준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위기인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문제는 빚입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2007년 미국의 건설장비 제조업체인 밥캣이라는 대기업을 49억달러(2015년 12월17일 환율 기준 약 5조7600억원)에 인수했습니다. 49억달러 중에 자기자본이 10억달러였고, 39억달러를 미국과 한국의 금융권에서 빚을 내 조달했죠.
당시엔 한국 재벌이 미국 대기업을 인수한 ‘한국 경제의 쾌거’처럼 알려졌지만, 신기루는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2007년 하반기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지면서 전세계 부동산 시장은 차갑게 얼어붙었고, 건설용 중장비의 수요도 급감했죠. 밥캣 인수로 두산그룹 전체가 흔들리며 근 10년간 유동성의 위기를 겪게 됩니다. 결국 밥캣 인수는 인수합병(M&A)의 귀재라고 불린 박용만 회장의 두고두고 쓰라린 악수(惡手)가 됐죠.
두산인프라코어는 지금도 빚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원재료와 노동력을 투입해 만든 상품을 파는 ‘영업’ 부문에선 매년 수천억원의 이익을 내고 있으나, 빚에 대한 이자가 대부분인 ‘영업 외’ 손익 부문에선 매년 수천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죠. 빚에 대한 이자는 재무제표에서 ‘금융비용’으로 잡히는데요. 두산인프라코어의 금융비용은 2014년 5801억원, 2013년 5325억원입니다. 부채총액은 2013년 7조9325억원에서 2014년 8조6691억원으로 늘었습니다. 올해 3분기까진 8조5657억원입니다. 매년 부채총액의 6% 이상을 이자로 내는데도 빚이 늘고 있는 상태죠. 내년엔 상황이 더 심각해집니다. 한국예탁결제원이 밝힌 두산인프라코어의 2016년 만기 회사채 규모가 4050억원입니다. 내년엔 기존 이자비용에 원금 상환 압박까지 받게 됩니다.
두산 쪽도 부채 상환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올해 7월엔 밥캣의 사전 기업공개(pre-IPO)로 7055억원을 조달하며 내년 차입금 상환 재원을 마련했고, 이번 달 21일엔 기업의 2대 사업부문인 공작기계 사업부를 매각하기 위한 본입찰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공작기계 사업이 국가 기간사업이라는 점을 고려해 지분의 51%를 보유해 경영권을 유지하라고 권고했지만, 두산 쪽은 이마저도 거부하며 완전 매각을 추진하고 있죠.
좀 거슬러 올라가면, 2012년엔 국내 최초로 ‘영구채권’을 발행해 5억달러를 조달했습니다. 영구채권이란 만기가 없는 채권이란 뜻인데요. 독특하게도 ‘채권’이면서 부채가 아닌 ‘자본’입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어려운 경영 사정으로 매년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한 적이 거의 없지만, 이 영구채권에는 재무제표에서 ‘신종자본증권 배당금의 지급’으로 채권의 이자(2014년엔 135억원)를 물고 있습니다. 이 영구채권이 부채냐 자본이냐는 논란이 분분했지만, 2013년 5월 국제회계기준위원회가 ‘자본’으로 인정하면서 두산인프라코어의 부채비율도 급격히 낮아졌습니다.
그런데 두산인프라코어가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더 나아가 정리해고를 직원들에게 압박하는 것과는 상반된 안이한 경영행태들도 상당수 눈에 띕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두산’이라는 이름을 쓰는 대가로 지주회사인 ㈜두산에게 내는 브랜드 사용료가 올해부터 20%가량 비싸졌습니다. 2012년 10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27개월간 301억원이던 브랜드 사용료가 2015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3년간 488억원으로 급증합니다. 연간 평균 134억원에서 163억원으로 오른 셈이죠. 두산인프라코어가 브랜드 사용료를 포함해 기업 내 정보통신(IT) 시스템 구축과 운영 비용 등으로 ㈜두산에 지불한 금액이 지난해 2022억원이었습니다.
두산인프라코어와 함께 그룹 내 2대 계열사인 두산중공업㈜도 ㈜두산에 지난해 849억원을 내부거래로 지불했죠. 문제는 이렇게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돈을 번 ㈜두산이 지나치게 많은 배당을 한다는 겁니다. ㈜두산은 지난해 65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는데, 현금배당을 827억원이나 했습니다. 배당성향이 무려 126.6%입니다. 벌어들인 이익보다 배당금이 더 많았습니다. 2013년에도 당기순이익 1236억원에 배당금이 736억원(배당성향 59.5%)이었고, 2012년엔 당기순이익이 954억원에 배당금이 746억원(배당성향 78.2%)으로 정상적인 기업이라고 볼 수 없는 높은 배당성향을 보입니다. 기업은 보통 이익으로 크게 3가지 활동(투자·내부유보·배당)을 하는데, 배당금이 당기순이익보다 크면 투자나 내부유보는커녕 자본금을 깎아먹어 기업의 존속이 어려워집니다.
㈜두산이 이렇게 높은 배당성향을 유지하는 이유는 지분을 창업가 가족들이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두산 지분의 44.05%를 재벌 가족들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전체 지분의 25.39%에 달하는 자사주를 제외하면 배당 가능한 주식의 59.04%가 재벌 소유입니다. 특히 개인당 4%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사람은 박용만 현 회장을 비롯해 차기 그룹 회장 후보로 꼽히는 박용만 회장의 큰형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의 아들인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 박지원 두산중공원 부회장 등이죠. 결국 이들은 두산그룹이 몸집을 줄이고, 직원들을 내보내는 것과 관계없이 배당으로만 매년 수백억원을 벌어들였습니다. 어림잡아 지난해에만 박용만 회장은 45억원, 박정원 회장은 70억원, 박지원 부회장은 45억원을 ㈜두산에게서 배당받았습니다.
게다가 최근 정부로부터 특허권을 획득한 면세점 사업도 ㈜두산이 담당합니다. 면세점은 대표적인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기존 사업자인 롯데호텔, 호텔신라의 경우도 이익의 대부분이 면세점에서 나왔습니다. 이익이 날 것이 뻔한 사업을 재벌 가족들의 지분율이 높은 회사가 직접 맡는 것은 한국 재벌이 한결같이 보여준 모습이지만, 빚을 갚으려고 자산을 매각하고 직원들을 내보내는 계열사의 상황과는 너무나도 대비됩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올해 두산그룹의 연수원과 연구단지로 사용할 부지도 매입했습니다. 올 6월 ㈜두산으로부터 경기도 군포시 당동 일대의 토지와 건물을 302억원에 매입했고, 올 7월엔 두산큐벡스㈜에게서 강원도 춘천시 삼천동의 토지와 건물을 80억원에 사들입니다. 군포는 두산그룹의 연구단지, 춘천은 연수원이 들어설 계획입니다. 희망퇴직으로 수백명을 내보내고, 정리해고의 가능성을 언급하며 직원들을 압박하는 기업이 그룹 전체의 연수원과 연구단지 조성에 수백억원을 쏟고 있습니다.
게다가 두산인프라코어는 야구단 두산 베어스의 선수 헬멧에 기업 로고를 다는 ‘스포츠 마케팅’ 계약으로 올 7월부터 3개월간 66억원을 지불했습니다. 지난해에도 두산인프라코어는 두산 베어스에 비슷한 계약으로 74억원을 지급했습니다. 두산 베어스가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등 좋은 성적을 내며 한국 야구를 빛낸 측면이 있지만, 신입사원마저 퇴사 압박을 하는 기업이 야구선수 헬멧에 로고를 3개월간 거는 비용으로 66억원을 낸 것이 적절한가라는 문제제기도 가능합니다. 게다가 두산인프라코어의 주력 상품은 굴삭기와 공작 기계로 일반 소비자들을 상대로 한 마케팅은 거의 무의미한 수준입니다.
결국 두산의 이번 희망퇴직 논란은 ‘기업이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최대한 아끼고 허리띠를 졸라맸는데도 인원 감축이 불가피했을까요, 아니면 다른 것은 아끼지 않으면서 사람부터 내몰고 있을까요? 두산이 지금껏 보여온 모습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그런 두산에게 ‘사람이 미래입니다’라는 광고가 어울릴까요? 오히려 두산에게 사람은 미래가 아니라 가장 줄이기 쉬운 ‘비용’으로 보입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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