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밀항' 연 7천억 '검은 비즈니스'.. 마피아 등 가담 기업화

정유진 기자 2015. 4. 21.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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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꾀어 인신매매단에 팔기도.. 리비아 군벌까지 개입'튼튼한 배' 약속 어기고 총 겨누며 낡은 보트에 밀어넣어

올 들어서만 1750명이 넘는 난민이 지중해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배나 늘어난 숫자다. 그러나 내전과 가난을 피해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는 '죽음의 행렬'은 겨우 시작일 뿐이다. 지금도 유럽행 배를 타려고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항구에서 대기 중인 사람들이 최대 100만명에 달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누군가의 절망을 누군가는 '돈벌이'의 기회로 악용한다. 밀입국 난민선을 운영하는 밀항업자들이다. 지난해 출간된 <인간 밀수업자의 고백> 공저자 지암파올로 무세미는 "흔히들 밀항업자들을 어선 선장이나 어부로 착각하곤 하는데 사실 이들은 거대한 기업형 조직"이라면서 "지중해 밀항 알선업의 연간 규모는 3억~6억유로(약 7000억원)에 달한다"고 BBC방송에 20일 말했다. 전문가들은 밀항업자들이 이탈리아 마피아 등 국제 범죄단체와 손을 잡고 점점 조직화돼 간다고 보고 있다.

아프리카 북서부 감비아에서 온 알리는 밀항업자에게 1000디나르(약 79만원)와 여권을 건넸다. 그러나 크고 튼튼한 배를 제공하겠다던 약속과 달리 그가 탈 배는 위험천만한 낡은 보트였다. 그는 "우리가 항의하자 그들은 총으로 우리를 위협하며 강제로 배에 밀어넣었다"고 BBC방송에 말했다.

돈 없는 난민들은 배삯을 마련하기 위해 채찍을 맞으면서 노예처럼 강제노역을 하고 있다. 밀항업자들은 액수를 채우지 못한 난민들에게 친척이나 친구들을 통해 돈을 마련해오라고 위협한다. 지난 2월에는 밀항업자들이 상의가 벗겨진 난민들을 바닥에 꿇어앉힌 후 찬물을 끼얹거나 채찍질을 하는 동영상이 공개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 장면을 몰래 촬영한 시리아 난민소년은 "동영상을 찍은 사실을 들켰다면 나는 아마 그들에게 살해당했을 것"이라고 영국 언론 텔레그래프에 말했다.

심지어 밀항업자들은 난민들에게 유럽 일자리를 알선해주겠다고 속인 후 이들을 강제로 유럽의 인신매매 조직에 팔아넘기기도 한다. 유럽의회 조사에 따르면, 현재 유럽에는 100만명에 달하는 '노예'들이 존재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지중해를 건너온 난민들이다. 이들은 부유한 가정집의 노예로 전락하거나 섬유공장 같은 곳에 끌려가 착취를 당한다.

내전 상태에 빠진 리비아 정부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오히려 리비아의 민병대와 부족들이 내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밀항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면서 사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리비아의 혼란이 시작된 후 석유 밀매를 통한 수입이 급감하면서 난민 거래가 고소득 사업으로 떠오른 것이다. 인신매매 문제를 추적해온 활동가 무스타파 오르한은 "예전에 상품 밀수입을 하던 부족들이 지금은 불법 이주민 거래시장의 지분을 놓고 다툰다"며 "난민들은 한 업자에게서 다른 업자들에게로 여러 차례 팔려간다"고 전했다.

더 이상 지중해의 난민들을 외면해선 안된다는 여론이 높아지자 유럽연합(EU) 장관들은 20일 룩셈부르크에서 긴급 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이들은 난민 구조작전에 대한 자금 지원을 늘리고, 리비아에서 활동하는 밀항조직을 소탕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전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밀입국 선박들을 아예 파괴해버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회의 땅'인 유럽에 가기 위해 목숨을 걸고 떠나는 사람들을 막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무세미가 만난 한 밀항업자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절대로 우리를 막을 수 없다. 유럽 정부가 난민을 막겠다고 나서면 밀항로는 더욱 길고 어려워지기만 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더 많은 돈을 받아 더 부자가 될 것이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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