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사 각본대로.. 아베, 미국인 호감 얻기 쇼"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입력 2015. 4. 27. 21:39 수정 2015. 4. 2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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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방미 일정 시작.. 미국 '파격 대우' 이벤트 연속

▲ 첫 방문지로 케네디 도서관워싱턴선 홀로코스트기념관국무장관 집에 초대 이례적

▲ 하버드 학생 위안부 질문에"인신매매 가슴 아파" 답변

미국 워싱턴 거리에는 벚꽃축제가 끝나기 무섭게 일장기가 걸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공식 방문에 맞춰 미국 수도에서 4월 한 달은 온통 일본 얘기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번 방문에서도 아베 총리의 입에서 과거사에 대한 사죄의 표현은 나오지 않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모호한 대답'만 흘러나왔다.

아베는 26일 보스턴에 도착해 6박7일의 미국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그는 보스턴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을 가장 먼저 들렀다. 도쿄에서부터 동행한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대사의 표정은 감동 그 자체였다. 케네디 대사는 케네디 전 대통령의 장녀로 생존해 있는 유일한 혈육이다. 아베는 "케네디 대통령의 훌륭한 리더십 덕분에 얼마나 많은 성취가 있었는지 잘 아는데, 오늘 또다시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아베는 이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과 존 케리 국무장관의 자택을 찾아 저녁식사를 했다. 미국 국무장관이 자택에 외국 정상을 초대한 것도 파격이다.

아베는 이튿날 2주기를 맞은 보스턴마라톤 폭탄공격 현장을 찾아 헌화했다. 그러고는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학생들과 짧은 간담회를 가졌다. 아베는 과거사에 대한 사죄는 없이 '깊은 반성'이라는 표현을 되풀이했다. "고노담화 입장과 다르지 않다"고도 했다. 군 위안부 문제를 묻는 질문에는 "인신매매는 가슴 아프다"며 확답을 피했으며, "중국의 군사주의는 이웃국가들이 우려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아베의 하버드 간담회장 밖에서는 100여명이 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2차 세계대전 전쟁범죄에 항의하고 사과를 촉구하는 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워싱턴에서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기에 앞서 알링턴 국립묘지, 홀로코스트기념관 등을 찾는다. 이 일정들은 모두 2차 대전에서 숨진 미국인들을 위로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베의 과거사 인식을 비판하는 일부 미국 내 태평양전쟁 참전군인들을 고려한 행보로 보인다. 아베는 워싱턴에서 일본 총리 최초의 상·하원 합동 연설과 정상회담을 한 뒤 서부의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간다. 페이스북, 애플 설립자들과 만나고, 일본 고속열차 수출을 위한 로비를 벌일 예정이다.

1주일 동안 4개 도시를 누빌 아베의 행보는 미국인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일정이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동·서부의 유명 대학과 홀로코스트기념관, 보스턴마라톤 공격 현장, 케네디도서관 등 미국인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곳을 가는 일정은 기획사를 동원해 짠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모든 일정과 회담 의제는 최상의 미·일관계와 강력한 지도자 아베를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짜여 있지만 한국 등 주변국에 대한 식민지배와 침략 역사에 대한 인식 문제는 계속 그를 따라다닐 것으로 보인다. 아베는 워싱턴에서 오바마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 미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 사사가와평화재단 강연 등 세 차례 연설을 한다.

아베 방문에 맞춰 미국을 찾은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26일 보스턴에 가서 "역사의 산증인인 나부터 보라"고 말했다.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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