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전환대출, 가계 빚에 정말 허덕이는 사람은 쏙 빠져"

2015. 3. 2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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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르포 안심전환대출 은행 가보니

"이자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고 왔어요. 죽기 전에 빚을 다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26일 안심전환대출로 갈아타기 위해 케이비(KB)국민은행 서울 남대문지점을 찾은 김아무개(61)씨의 말이다. 그는 2년 전 30년 만기 변동금리(연 3.19%)로 주택담보대출 1억5000만원을 받았다. 자녀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서 전셋집을 얻어주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대출을 받던 그해 은퇴했다. 월 250만원가량의 연금으로 생활을 꾸려가고 있지만 매달 은행에 내야 하는 원리금만 150만원가량이다. 주택담보대출과 별도로 신용대출도 받은 게 있다 보니, 총 대출금이 3억원을 넘긴 탓이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마이너스 인생'인 것 같다"고 했다.

출시 사흘만에 10조 넘어서연2%대 이자로 갈아탄 직장인"매달 10만원 돈 아끼게 됐다"상대적으로 신용 높은 이들 혜택퇴짜 맞은 제2금융권 대출자 등"우린 왜 안해주나" 불만 쏟아내

김씨처럼 안심전환대출로 갈아타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금융당국 집계를 보면, 출시 사흘 만인 26일 현재, 전환대출 누적 실적이 12조3678억원에 이르렀다. 정부가 애초 계획한 대출금 총규모 20조원의 절반을 이미 넘어서 버렸다. 이르면 27일, 늦어도 다음주 초쯤이면 준비한 물량이 모두 동날 것이라는 게 은행권의 관측이다.

안심전환대출은 가계가 빚을 좀더 안정적인 구조에서 갚아나가도록 유도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마련한 전환대출용 상품이다. 원금은 놔두고 이자만 갚고 있거나, 변동금리로 대출을 받아서 앞으로 금리가 오르면 이자부담이 커질 수 있는 은행 대출자들을 고정금리·분할상환 대출로 갈아타게 하는 게 목적이다. 이를 통해 가계부채발 금융불안의 뇌관을 약화시키자는 것이다. 금융당국도 예상 밖 돌풍에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안심전환대출 출시 전에는 실적이 저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었다. 시중금리가 더 떨어지면 지금 고정금리로 갈아타는 게 손해일 수 있는데다, 그동안 이자만 내던 이들이 앞으로는 원금도 함께 갚아나가야 하는 부담이 따르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전환대출 신청자가 쏟아진 것은 왜일까? 은행 창구에서 만난 이들은 한결같이 원리금 상환 부담을 한푼이라도 줄이지 않으면 앞날이 캄캄하다고 털어놨다.

직장인 이아무개(35)씨는 그동안 '갈아타기'를 거듭하면서 원리금 부담을 줄여나가고 있었다. 그는 2011년에 연 5.12% 고정금리로 주택담보대출 9000만원을 받았다. 이씨는 달마다 60만원가량씩 원리금을 갚다가, 2013년에 20년 만기 연 3.72% 변동금리 상품으로 갈아탔다. 중도상환수수료 70만원을 물어야 했지만 이자 부담을 덜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후로 그는 매달 53만원씩 원리금을 상환해왔다. 이씨는 "이번에 안심전환대출로 바꾸면서 20년 만기 연 2.63% 금리가 적용돼 매달 45만4000원씩 부담하면 된다. 매달 10만원씩 돈을 아끼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출판회사에 다니는 송아무개(65)씨는 7억원가량 되는 아파트를 담보로 1억700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평생 대출 한번 받은 적이 없었는데, 딸의 결혼자금에 보태주려고 빚을 냈다고 했다. 이날 안심전환대출로 갈아탄 그는 자신은 그나마 형편이 괜찮은 편이라고 하면서도, "이자는 싸지만 원금을 같이 갚아야 하기 때문에 가계 소득이 낮거나 일정하지 않은 사람들은 안심전환대출로 바꿔도 부담일 것 같다"고 말했다.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린 직장인 김아무개(30)씨는 안심전환대출을 받아보려고 했지만 은행에서 빌린 대출이 아니라서 갈아탈 수가 없었다. 그는 지난해 지역농협에서 1억400만원을 대출받았다. 그는 "한푼이라도 더 대출을 받아야 했던 처지라, 담보가치를 높게 인정해주는 지역농협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며 "안심전환대출이 정작 혜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김씨는 "아이가 태어나면 아내가 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둘 예정이어서, 가계빚에 대한 부담이 더 크게 다가올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안심전환대출의 대상은 제한적이다. 상대적으로 원금 상환 여력이 있는 중산층 이상의 대출자를 주된 대상으로 하여 가계부채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구조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작 위기가 왔을 때 충격은 1, 2금융권에서 동시에 대출을 받은 저소득층이나 주로 2금융권을 이용하는 다중채무자"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가파른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부채 구조의 질적 개선도 담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안심전환대출은 기존 비싼 이자율을 낮게 해주기 때문에 비용이 든다. 향후 금리가 높아질 경우 은행이나 주택금융공사에 손실이 생기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공공영역의 손실이 커질 우려가 있다. 소득이 없는 경우 가계대출을 못 받게 하는 구조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필 이재욱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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