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학과제 폐지 배경·파장은] 저출산 시대 선제적 구조개혁 "취업사관학교 전락" 우려도

전수민 황인호 임지훈 이도경 기자 2015. 2. 27. 03: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단과대별 전공 학과 폐지 한층쉬워져.. 취업 불리 인문·자연과학 고사 우려

중앙대의 '2016학년도 학사구조 개편안'은 파격적인 실험이다. 산업계 수요를 반영하고 저출산·취업난 현실을 감안해 스스로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는 즉각 '취업사관학교'로 변신하려 한다는 반발에 부닥쳤다.

중앙대 재단은 두산그룹 회장을 지낸 박용성 이사장이 맡고 있다. 4년 전에도 학과를 정리하는 구조개편에 나섰다가 수익성을 앞세운 '기업식 구조조정'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화여대 역시 취업을 겨냥한 새로운 단과대 신설과 기존 단과대 정원 감축에 착수했다.

◇"학생이 줄어서"… 학과 대신 전공= 중앙대 개편안에 따르면 2016학년도 수능을 치르는 학생들은 국문과 40명, 영문과 100명 등 학과별 모집정원에 맞추지 않고 인문대학 신입생 365명 중 한 명으로 입학하게 된다. 단과대별 모집인원은 사회과학대 435명, 경영경제대 785명, 자연과학대 170명, 공과대 470명, 창의ICT공과대 407명, 생명공학대 356명, 예술·체육대 841명 등이다.

중앙대는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이 도입되는 2021학년도 이후엔 모집단위를 더 넓혀 인문·사회, 자연·공학, 예·체능, 의·약·간호 등 계열별로 신입생을 모집할 계획이다. 사회적 수요가 많은 공학계열의 전공은 단계적으로 늘리고, '미래 유망 학문'을 발굴해 2017학년도부터 새로운 전공을 개설하겠다고 밝혔다.

또 학과 자체를 폐지하고 다양한 전공 과정을 운영하는 전공제를 도입한다. 신입생은 전공탐색기간(1학년 1학기∼2학년 1학기)에 교양수업과 소속 단과대학 전공기초 과목을 듣고 2학년 2학기 때 주 전공을 선택하게 된다. 중앙대는 평의원회와 이사회의 승인, 교수·학생 대상 설명회를 거쳐 4월 교육부에 개편안을 제출할 방침이다.

중앙대는 '지금처럼 해서는 대학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개편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학교 관계자는 "정부의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을 보면 공학계열은 27만7000명이 부족한 반면 인문사회계열은 6만1000명이 과다 공급되고 있다"며 "산업수요와 대학교육 간 미스매치를 해결하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저출산에 따른 대학의 본격적 '생존 경쟁'도 언급했다. 2006년 출생자들이 대학에 입학하는 2025년에는 대학에 진학할 학생이 현재보다 32% 줄어든다는 것이다. 대학만 세우면 입학생이 줄을 서는 시절은 지나갔다는 뜻이다.

중앙대는 세계 유명 대학 100곳의 학사구조를 분석해 이 같은 방안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상당한 반발과 부작용이 우려된다. 학생 수가 줄고, 취업난은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결국 취업률이 높은 학과나 전공으로 학생들이 쏠릴 수밖에 없다. 취업에 불리한 인문·자연과학계열의 일부 전공은 존폐 기로에 내몰리게 된다. 전공 편성·운용권이 각 학과에서 단과대로 이양되면 전공이나 학과를 없애는 일은 한층 쉬워진다.

◇"고등교육의 붕괴"… 교수·학생 반발=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의 본질이 퇴색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4년에 걸쳐 배우던 전공을 2년 안에 끝내야 해 전문성이 떨어지게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학 구조개혁을 강조해온 교육부도 다소 놀란 눈치다. 교육부 관계자는 "정부 정책 기조에 맞기는 하지만…"이라며 "대학구성원들 반발을 해결하는 게 관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상당한 후폭풍이 예고되고 있다. 기자간담회에 앞서 오전 10시 열린 교수회의에서 400여명의 교수 가운데 87.4%가 반대 의사를 밝혔다. 대학 평의원회와 교수협의회 전·현직 회장 6명으로 '대학구조조정에 대한 교수 대표 비상대책위원회'도 구성했다.

비대위는 기자간담회 도중에 들어와 "일방적이고 비합리적인 구조조정이 도를 넘었다. 학문의 자유를 없애고 학생들을 '실험용 쥐'로 삼는 행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비대위원장을 맡은 김누리 독어독문과 교수는 "밀실에서 소수가 결정한 안으로 교수사회를 우롱하며 대한민국 고등교육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비대위는 총장 불신임과 함께 법적 대응도 준비키로 했다. 학생들 반발도 거세다.

이에 중앙대 관계자는 "전공별로 지난 3년간 모집정원의 120%를 선발하는 만큼 전공 자체가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배움의 깊이가 얕아질 것이란 지적에 대해선 "시간당 학습량을 두 배로 늘리는 등 전공지식 심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이화여대도… 신산업융합대학 신설= 이화여대는 2016년부터 일부 단과대학 인원 감축과 함께 신산업융합대학 신설을 위한 학칙 개정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학생들은 학과 통폐합 및 취업에 용이한 쪽으로 대학구조를 바꾸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5일 열린 이화여대 대학평의원회에는 신산업융합대학 신설을 위한 학칙 개정 심의가 안건으로 올라왔다. 신산업융합대학 신설은 인문·사회계열의 취업률 제고 등을 취지로 지난해 8월 취임한 최경희 총장이 내세운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신설 신산업융합대학에는 융합콘텐츠학과(정원 32명), 의류산업학과(51명), 국제사무학과(30명), 체육과학부(57명), 식품영양학과(48명), 융합보건학과(30명)가 들어간다.

이에 따라 기존 단과대의 정원 축소는 불가피하다. 이화여대 측은 조형예술대(9명 감축), 음악대(23명 감축) 등이 감축 대상이라고 밝혔다. 감축 기준은 취업률과 산업발전 방향이다. 학생대표기구인 중앙운영위원회는 27일 기자회견을 여는 등 이 같은 결정에 강력 대응하기로 했다.

전수민 황인호 임지훈 이도경 기자

suminis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뉴스 미란다 원칙] 취재원과 독자에게는 국민일보에 자유로이 접근할 권리와 반론·정정·추후 보도를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고충처리인(gochung@kmib.co.kr)/전화:02-781-9711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