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선택권 빌미 벼랑끝의 인문학 또 밀치나

이대혁 김민정 2015. 2. 2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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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학과별 모집 폐지 논란

학문보다는 시장 원리에 방점, 수요 많은 공학계열 증원 의도

"전공 선택 확대 취지" 해명 불구 "전공 쏠림 현상 불 보듯" 비판 고조

학문보다는 시장원리를 택했다. 26일 중앙대가 발표한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은 취업 시장에서 이공계에 대한 수요가 많은 점이 대폭 반영됐다. 학교측이 "사회적으로 공급확대가 필요한 공학계열을 단계적으로 증원하겠다"고 밝힌 점에서도 의도는 명백하다.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고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넓힌다는 취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학생 선택권을 방패막이로 삼아 취업에 불리한 학과를 폐지하기 위한 '꼼수'라는 부정적 평가도 만만찮다. 지난 2008년 두산 그룹에 인수된 이후 2011년 캠퍼스 간 유사ㆍ중복학과 통폐합으로 77개 학과를 47개로 축소한 중앙대가 본격적으로 '직업인 양성소'의 역할을 수행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교수와 학생 등 학내 반발이 커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중앙대는 2016학년도 입시부터 모집단위를 단과대학으로 확대한다. 지금까지 인문대학 내 국어국문학과 40명, 영어영문학과 100명 등 학과별 모집정원에 맞춰 학생을 선발했다면, 올해 입시부터는 인문대학 신입생 365명을 한꺼번에 뽑는 식이다. 다만 공과대학 내 에너지시스템공학 등 일부 특성화학과와 의학대학의 의학과 등 교육부 정원 승인이 필요한 전공은 계속 전공별로 뽑는다. 올해 중학교 1학년이 대입을 치르는 2021학년도부터는 ▦인문ㆍ사회 ▦자연ㆍ공학 ▦예술ㆍ체육 ▦사범 ▦의학ㆍ약학ㆍ간호 등 계열별 모집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단과대학별로 입학한 학생들은 1학년 때 사회적 소양과 전공 이수를 위한 기본 역량 교육인 '리버럴 아트 에듀케이션(LAE)'과정을 거친다. 이어 2학년 대학공통 전공기초 과정을 이수한 뒤 2학년 2학기 때 주전공을 선택하게 된다. 이용구 중앙대 총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전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모집 단위를 광역화하고 학생들이 단일 심화전공뿐 아니라 이중, 삼중 전공을 택할 수 있도록 전공 제도를 강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앙대의 학사구조 개편은 학과간 장벽이 있는 현 구조에서는 융ㆍ복합 교육이 불가능하고, 이는 대학 생존 여부와 직결된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또한 그간의 대학교육이 수요자(학생)가 아닌 제공자(대학) 중심이었다는 점에서 학생의 선택권을 넓히겠다는 의미도 담겼다. 박상규 행정부총장은 "유연한 학사구조를 운영하면 입학 시 전공이 정해져 변경 기회가 희박했던 학생들의 선택권이 넓어지고 희망전공과 실제전공 간 불일치가 해소될 수 있어 학생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단과대학ㆍ계열단위의 모집은 전공 편성 및 운영 권한이 기존 학과에서 단과대로 넘어가면서 전공과목의 신설과 폐지가 쉬워진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선택 받지 못한 학과는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다. 또 대다수 학생이 취업에 유리한 이공계열이나 상경대 등의 전공을 택하는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임성호 하늘교육종로학원 대표이사는 "학생들이 취업이 잘 되는 일부 전공으로 몰리게 되고 인문학을 기피하는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번 개편이 의견수렴 없이 밀실에서 이뤄졌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학내 반발도 고조되고 있다. 대학 평의원회와 교수협의회 전ㆍ현직 회장 6명으로 구성된 '대학구조조정에 대한 교수 대표 비상대책위원회'는 간담회장에 들어와 "이번 계획은 학문에 대한 쿠데타이며 대한민국 대학사에 남을 폭거"라며 "기업(두산)이 대학을 장악했을 때 학문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황폐화시키는 지 보여주는 결정판"이라고 비판했다. 비대위원회는 학교 측이 계획을 강행할 경우 현 총장에 대한 불신임과 함께 법적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김민정기자 fac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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