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性 인식 바뀌어.. 국가가 형벌로 강제할 수 없어"

2015. 2. 27.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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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 62년만에 폐지]헌재 위헌결정 근거

[동아일보]

"형법, 1953년 9월 18일 법률 제293호로 제정된 것, 제241조(간통죄)는 헌법에 위반된다."

26일 오후 2시 23분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박한철 소장이 주문을 낭독하는 순간 간통죄는 62년 만에 곧바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고조선의 '8조법금' 때부터 존재했다는 게 통설인 간통죄는 이날 사적 영역에 국가 형벌권이 과도하게 개입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있고, 개입에 따른 실효도 없다는 논리와 함께 폐기됐다.

○ "성과 사랑은 형벌이 아니라 개인에게 맡겨야"

간통죄 위헌 의견은 1990년 3명, 2001년엔 1명, 2008년엔 5명이었으나 이날은 7명이나 됐다. 특히 박한철 이진성 김창종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 등 5명은 간통과 상간행위를 처벌할 정당성 자체가 없어 위헌이라고 판단해 가장 강력한 위헌 의견을 냈다.

1990년 당시만 해도 "사생활을 숨길 자유를 위배한다"는 이유로 위헌 의견을 낸 사람은 김양균 재판관이 유일했다. 당시 위헌의견 3명 중 2명(한병채 이시윤 재판관)은 처벌의 정당성은 인정하면서도 처벌 조항에 징역형만 규정돼 있어 위헌이라는 논리였다. 김 전 재판관의 논리는 2001년 "간통죄는 주홍글씨를 새기듯 수형자의 자존심을 철저하게 짓밟는다"는 권성 전 재판관의 위헌의견으로 명맥이 이어졌고, 이번엔 5명으로 최다를 기록했다. 5인의 의견을 낭독한 서기석 재판관은 "결혼과 성에 관한 인식 변화에 따라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에 맡겨야지 간통을 형벌로 강제할 수는 없다"며 "간통죄는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간통죄가 과거 사회경제적 약자였던 여성을 보호하는 역할도 이제는 상당 부분 상실했다고 판단했다. 여성의 경제적 능력이 향상된 데다 이혼 소송, 재산분할 소송 등을 통해 여성 배우자를 보호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 "미혼인 상대방은 보호할 성적 성실의무 없어"

김이수 재판관은 별도 의견에서 간통 행위자의 죄질과 특수성을 배제하고 일률적으로 형사처벌하고 있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간통의 유형을 △단순한 성적 쾌락을 위한 간통(1유형) △배우자보다 더 매력적인 상대를 만나 기존 혼인관계에 회의를 느끼고 상간자와 사랑에 빠진 경우(2유형) △장기간 별거 등 혼인이 사실상 파탄 난 상태에서 새로운 상대를 만나 성적 결합에 이른 경우(3유형) 등 세 가지로 나눴다.

김 재판관은 "3유형에는 성적 성실의무가 이미 무너졌는데 이를 형벌로 처벌하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김 재판관의 논리는 "혼인관계가 실질적으로 파탄 났다면 불륜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도 없다"는 지난해 11월 대법원 판결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김 재판관은 더 나아가 상간 행위자가 미혼인 경우 애초 보호할 성적 성실의무가 없는데도 함께 처벌하도록 한 점도 위헌이라고 봤다. 다만 미혼 상간자가 적극적으로 상대방을 도발하거나 유혹해 간통을 저지른다면 처벌해야 한다고 봤다.

강일원 재판관은 간통죄 조항이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을 위배한다는 논리로 위헌 의견을 냈다. 간통죄에 "종용(사전 동의) 또는 유서(사후 동의)의 경우에는 고소할 수 없다"는 규정이 해석상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징역형만 규정한 것은 범죄와 형벌 사이 균형을 잃게 만들 수 있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 합헌 의견도 불합리한 현실 지적

안창호 이정미 재판관은 간통죄 폐지가 "성도덕의 최소한의 한 축을 무너뜨리는 것이며 입법자 재량의 자유"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가족 해체 상황에서 경제적 약자인 여성과 자녀를 보호할 장치가 여전히 취약하고 전업주부 등을 보호할 장치도 없다. 법정형이 징역형만 규정했지만 그 상한이 높지 않고 벌금형도 가능해 문제가 없다"며 합헌 입장을 유지했다. 법 규정에 다소 흠결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간통죄를 없앴을 때 발생할 사회 문제와 부작용에 더 주목한 논리다. 하지만 두 재판관도 "실질적으로 부부 공동생활이 파탄 난 경우에까지 형사처벌하는 것은 사회윤리에 위배되고 위법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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