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 잃어가는 미국, 한반도에서 기싸움

2010. 7. 1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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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미국에서 중국으로의 권력 이동 과정, 갈등 불가피…판을 바꿔야 한다는 워싱턴의 결기가 신냉전구도로

천안함 문제에 대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한국의 입장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중국이 마침내 한-미 연합훈련을 서해상에서 실시해선 안 된다는 주장까지 들고 나왔다. 특히 미국 항공모함의 훈련 참여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필자는 이를 미-중 권력 이동 과정에서 나타난 중국의 초기 공세라는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다.

신경전을 넘어 서로 툭툭 밀쳐보는 단계

패권 유지는 무엇으로 하는가? 그것은 곧 미국이 새로운 시장을 제공할 능력이 있는가, 그리고 정치·군사적 경쟁국의 등장을 저지할 수 있는가 하는 두 가지 질문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동시에 미국이 1945년 제2차 세계대전과 1990년대 소련 붕괴로 초강국에서 '유일 초강국'으로 지위를 굳혀온 비밀의 열쇠이기도 하다. 시장을 제공하지 못하고 도전자의 부상을 막지 못한다면 '팍스아메리카나'도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기존 질서의 동요는 새롭게 등장한 강자에게 패권을 내주게 한다. 이 과정에서 군사적 충돌은 불가피하며, 종종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미-중 관계의 현주소를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그것은 '권력 이동'이다. 함께 춤을 추는 듯 보이지만 서로 넘어지지 않으려 한다. 유일 초강국이라는 단 하나의 의자를 차지하기 위한 각축전은 신경전을 넘어 팔꿈치로 서로 툭툭 밀쳐보는 단계로 가고 있다. 정면 대결로 치달을 것이라는 예측은 감히 누구도 쉽게 내놓지 않는다. 하지만 웃으면서 칼을 상대방의 목에 겨누고 있다. 조화로운 공존은 미-중 관계의 미래가 아니다.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딱 한 달이 지난 2008년 12월 미-중 관계 정상화 30주년을 맞아 다이빙궈 중국 국무위원이 워싱턴을 방문했다. 브루킹스연구소에서 한 그의 연설은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 경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바닥을 향해 내려앉고 있었다. 팍스아메리카나는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혔으며, 그만큼 부시 8년의 중국 정책은 오바마가 수정해야 한다는 기대가 컸다. 다이빙궈는 세계경제를 회복시키고 국제질서가 조화롭게 발전할 수 있도록 선진국(Developed Countries)의 대표인 미국과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ies)의 대표인 중국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학 용어인 선진국과 개도국 개념을 빌려 저물어가는 미국과 떠오르는 중국을 대비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관리'하려 했지만 점점 압도당하는…

'권력 이동'을 '권력 공조'로 바꿔보고 싶은 미국의 몸짓은 차라리 애처로웠다. 2008년 1월 중국을 '슈퍼파워'라고 처음 부른 것도 워싱턴 언론계였다. 선진 경제국 G8을 대체하는 G20을 국제 금융위기 극복의 협력틀로 제안하면서도 핵심은 G2 협력, 즉 미국과 중국이 어떻게 협력하느냐에 세계경제의 장래가 달렸다고, 중국의 부양책 없이는 미국의 경기부양책이 성공할 수 없다고 자조 섞인 추파를 베이징을 향해 날렸다. 중국은 미국의 경기부양책을 훨씬 능가하는 규모의 계획을 발표했었다. 이때만 해도 중국의 역할은 제한적으로 보였다. 미국의 전문가팀은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와 중국도 종래의 10~14%대 경제성장에서 6~7% 선으로 주저앉게 될 것이라는 기대 섞인 비관적 전망도 내놓았다. 그러나 중국은 미 재무성 증권을 대량 매도하기보다는 미국을 향해 제대로 경제를 살려내 중국이 보유한 미국 자산의 달러 가치를 지켜내라는 식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중국이 의외로 빨리 10% 경제성장이 지속되고 있다는 지표를 공개했을 때, 결재권은 워싱턴도 월가도 아닌 베이징에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을 관리 대상으로 보고 싶어했다. 부시처럼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대등한 협력관계를 강조하는 대신 그에 상응한 책임도 강조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관철해보자는 심산이다. 하지만 먹히지 않았다.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도, 달라이라마를 백악관에 초대하는 것도 더 이상 레버리지가 되지 않는다. 무역균형을 위해 위안화를 절상하라는 요구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중국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납품하는 물품에는 일정 부분 이상 중국 원산의 기술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규정을 발표했다. 미국이 관리하는 게 아니라 중국이 방향을 결정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 시장이 위축되면 중국 경제가 더 큰 타격을 받아야 하는데, 묘하게도 투자는 중국으로 더 몰리고, 정보 역시 따라간다. 발언권도, 영향력도 날로 커진다.

중국은 더 이상 말을 아끼지 않는다. '화평굴기'에서 굴기라는 단어가 스스로 일어서겠다는 것처럼 비쳤을 때 얼른 '화평발전'으로 표현을 수정하던 2003년의 중국이 아니다. 워싱턴에선 얼핏 웃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좌절감은 경계심과 우려를 넘어 어떻게든 판을 바꿔야 한다는 결기로 가득하다. 중국 역할론은 이제 중국 책임론으로 돌아섰다. 양쪽은 서로 할 말은 해야겠고, 주장해 관철할 것은 관철해보자는 쪽으로 흐른다. 협력은 경쟁과 갈등으로 양상을 달리했다.

갈등은 언제나 가장 약한 곳으로 분출한다. 화산의 용암은 낮은 데를 찾아 이동한다. 결국 전통적인 지정학적 대치점인 한반도에서 미국과 중국은 지난 2년 동안 의외로 심각한 대치를 벌이고 있다. 북한 핵 문제와 김정일 정권의 장래, 남북관계와 천안함 사태의 유엔안보리 논의는 양국이 남의 나라 문제로 자신들이 상대방을 어떻게 보는가를 드러내는 유용한 소재가 되고 있다. 오바마가 이명박을 끼고 돌 때, 중국도 김정일을 감싸고 돈다. 신냉전구도가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다. 최근엔 마침내 중국이 서해상에서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하겠다는 것에 대해서도 날을 세운다. 처음엔 항공모함이 참여해선 안 된다고 하더니 이젠 아예 훈련 자체를 걸고넘어진다. 미국은 중국의 태도에 '이건 정말 아니다. 어떻게 한-미 연합훈련까지 시비를 거느냐'고 하면서도 항공모함을 파견하겠다고 통보했던 내용조차 확인해주지 못한다. 반면 중국은 미국 근해에서 군사훈련을 하지 않는데, 베이징~상하이 중간 지점인 서해상에서의 한-미 연합훈련은 미군이 중국에 가장 근접해 벌이는 대규모 군사훈련 아니냐는 지적을 이 기회에 꼭 해두려고 한다.

대북 선전방송 막은 미국, 북보다 중국 의식

천안함 문제에 대해 중국이 지나친 게 아니냐는 불만이 이명박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미 2008년 초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한-미 동맹을 구시대 유물이라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던 중국이다. 중국으로선, 먼저 자극한 쪽은 천안함 침몰 사건에 중국 책임론 운운한 이명박 정권이 아니냐는 거다. 국제사회에서 시장 창출 능력과 정치·군사 정세의 방향을 결정해갈 지렛대를 확보한 중국이 한국을 툭툭 치면서 미국에 불만을 표출하고 정책 변화를 요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간파해야 한다. 미-중 양국의 구조적 권력 이동이 잉태한 갈등이 '한-미 동맹 맹신론자' 이명박 정권 길들이기로 시작해 미국을 직접 거론하면서 불만을 표출하는 데까지 비화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천안함 사건은 중국에 좋은 소재였다. 앞으로 또 무엇이 새로운 빌미로 활용될지 제대로 봐야 한다. 대북 선전방송을 천안함 문제에 대처하는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인 방안으로 평가했던 미국이 이제 방송을 시작해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월터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의 뇌리엔 북한보단 중국이 들어 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만큼 미-중 권력 이동은 지각 밑에서 꿈틀대는 맨틀의 변화를 의미한다.

박선원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초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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