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잡아라" 美·中·日 패권전쟁

2009. 12. 13. 18: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세안+3 재무장관회의.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일본, 중국 3개국 대표가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이 자리에서 역사적 합의가 이뤄진다. 치앙마이이니셔티브 다자간통화기금(CMIM) 설립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아시아 국가 간에 통화스왑 계약을 맺어 제2의 위기를 차단하자는 치앙마이이니셔티브의 후속 조치였다. 당시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가 '심리적 위로 수준(a degreeof psychological comfort)'이라고 코웃음쳤지만 9년 뒤 보란 듯이 결실을 맺었다.

아세안 국가들과 한ㆍ중ㆍ일이 공동기금 1200억달러를 조성하고 그 분담비율을 정했다. 분담비율에 아시아 패권전쟁의 숨은 코드가 있다. 중국, 일본이 각각 32%, 아세안 10개국이 20%, 한국이 16%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도 국가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평가했다. 자랑할 만했다.

과연 그럴까. 한국은 어느 나라와 합쳐도 50%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세안은 다르다. 일본, 중국 어느 쪽을 택해도 52%가 된다. 우리는 캐스팅보트를 가졌다고 했지만 실제 캐스팅보트를 가진 곳은 아세안이다.

10개국 전체 경제 규모를 합해 봐야 한국 정도에 불과한 아세안이 실제 외교력에서는 막강한 파워를 행사한 것이다. 우리가 그저 후진국 연합이라고 폄하했던 아세안은 어느덧 이렇게 아시아의 중심에 서 있다. 아시아 패권전쟁의 요충지가 바로 아세안이다.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아시아 복귀'를 선언했다. 그가 말한 아시아는 아세안에 방점이 있다.

오바마보다 한발 앞서 나간 이는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다. 그는 우애외교라는 간판을 걸고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말했다. 아시아 중시 외교에 시동을 걸었다.

한국도 뒤늦게 아세안에 구애외교를 펼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 발표한 신아시아 외교의 골자도 따지고 보면 아세안 잡기다. 신각수 외교통상부 1차관은 "아세안은 우리 외교의 뒷마당"이라며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지난 6월 1일 아세안 10개국 정상을 제주 서귀포로 초대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한-아세안 정상회담을 여기서 열었다.

아세안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은 느긋한 자세로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차기 국가주석으로 유력한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최근 "한ㆍ중 자유무역협정(FTA)과 동아시아공동체가 조기에 실현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한 것은 그런 맥락이다.

아세안의 경제규모는 한국과 비슷하다. 한국이 1이라면 중국이 4, 일본이 5 정도 된다.

결국 동북아 3국인 한, 중, 일 3국은 아세안 10개국을 모두 합친 경제규모의 10배가 된다.

그러나 국제외교 무대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그렇지 않다. 한, 중, 일 모두 아세안에 눈도장 찍기가 바쁘다. 서로 경제지원을 많이 하겠다고 발 벗고 나선다.

아세안의 결속력에 밀려 한ㆍ중ㆍ일이 별도로 정상회담을 시작한 게 지난 2008년이다. 1997년 아세안+3 회의체가 생긴 지 11년 만의 일이다.

지난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제2차 한ㆍ중ㆍ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때 하토야마 일본 총리가 불만을 터뜨렸다. "아세안+3가 아니라 3+아세안 회의를 열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더 이상 대국이 소국에 질질 끌려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었다.

아세안은 발끈했다. 중국의 입을 빌려 "한ㆍ중ㆍ일 회의를 따로 하지 말고 아세안+3로 다시 합치라"는 요구를 했다.

지난 4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아태공동체(APcㆍAsia Pacific community) 구상회의에서 만난 곽푹성 싱가포르 외교부 국장(아세안 담당)은 "아세안의 결속력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며 "아시아 지역의 가장 중요한 추동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세안의 힘만으로 글로벌 이슈를 끌고 나갈 수는 없지만 아세안을 무시하고는 아시아의 범공동체는 이뤄질 수 없다"며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아세안의 위력에 호주의 케빈 러드 총리도 체면을 구겼다. 그가 야심차게 내놓은 아태공동체 구상이 아세안의 벽에 막혔다.

호주 라트로브대학의 닉 브리슬리 정치국제관계 대학원장의 말이다.

"지난 5월 아태공동체(APc)에서 공동체를 뜻하는 C가 대문자에서 소문자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APc'가 된 것입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죠. 아세안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입니다. 거기다가 앞에 정관사 'the'가 아닌 'a'를 붙였습니다. 그냥 하나의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것이지 뭔가 단일체를 만들겠다는 야심을 드러내지 않은 것입니다."

아세안은 작년 12월 '아세안 헌장'을 발효시켰다. 지금과 같은 느슨한 국가연합체가 아니라 2015년까지 유럽연합(EU)과 같은 지역공동체를 만들겠다는 목표다. 결속력이 강할수록 외부에 대한 협상력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아세안이 설립된 것은 지난 1967년. 42년간 쌓아온 내공으로 주변 강대국들을 농락하고 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발하자 아세안 국가들은 위기 극복을 위해 한ㆍ중ㆍ일 세 나라를 끌어들였다.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아세안+3 정상회의. 말레이시아 마하티르의 야망이 숨겨진 외교작전이었다. 그리고 한 해 뒤인 1998년 하노이 회의에서는 한ㆍ중ㆍ일 참석을 매년 정례화시키기로 합의했다.

아세안+3 체제는 어디까지나 아세안이 주인이다. 한ㆍ중ㆍ일은 객(客)에 불과하다.

회의하는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실체를 알 수 있다.

첫째 날 아세안 정상회의를 한다. 한ㆍ중ㆍ일 정상은 아세안+3 회의 첫날 밤에나 도착한다. 아세안 10개국 정상들끼리 만나 먼저 현안을 논의한다. 그 다음날 오전께 한ㆍ중ㆍ일 각각 한 나라씩 부른다. 한ㆍ아세안 정상회의, 중ㆍ아세안 정상회의, 일ㆍ아세안 정상회의를 한다. 각개격파 작전이다. 속된 표현을 쓰자면 조직폭력배들이 관할 구역 업소로부터 돈을 뜯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일본과의 회의에서는 "중국이 우리를 이렇게 도와주려고 하는데 너희는 뭘 할 거냐."

중국과의 회의에서는 그 반대다. 한국과 만나면 "당신은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여력이 없지만 이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리고 오후에 아세안+3 정상회의를 연다. 점심 한 끼 우아하게 먹고 다 짜여진 각본에서 회의하고 기자회견 한 뒤 기념사진을 찍는다.

아세안은 한 번도 이 회의를 +3개국, 즉 한, 중, 일에서 여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늘 그들이 호스트를 한다. 지금까지 모두 13차례 회의가 열렸는데 모두 아세안국가에서 개최를 했다.

급기야 지난달에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로 날아와 아세안 정상들과 회담을 하니 그들의 콧대는 한껏 높아졌다.

■ <용어>

아세안(ASEAN) =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즉 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의 약자다.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브루나이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 10개 국가다.

[손현덕 정치부장 / 이근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모바일로 읽는 매일경제 '65+NATE/MagicN/Ez-I 버튼'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