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조선인 인육 먹었다" 확인.. 정부 '밀리환초 사건' 첫 규명

2010. 10. 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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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을 5개월여 앞둔 1945년 3월 1일 오전 남태평양 마셜제도 내 밀리환초(산호섬이 띠 모양으로 연결된 곳) 지역의 작은 섬 체르본에 총성이 울렸다. 구와시카(桑下) 대위가 이끈 일본군 15∼16명이 태평양전쟁을 위해 섬으로 끌고 온 조선인에게 발포한 기관총 소리였다.

학살은 오전 내내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다. 일부 조선인은 다이너마이트를 끌어안고 자결을 택했다. 섬에 있던 조선인 120명 중 105명이 죽었다. 15명은 야자수 위로 피신해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일본군의 만행은 전날 밤 조선인 저항사건에 대한 분풀이였다. 조선인들은 탄압을 견디다 못해 감시하던 일본인 11명을 모두 살해하고 미군에 투항할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일본인 7명을 처치했지만 나머지 4명이 눈치를 채고 도망가 봉기는 실패했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의 '밀리환초 조선인 저항사건과 일본군의 탄압 진상보고서'를 5일 공개했다. 지원위는 보고서를 통해 조선인 봉기의 직접적인 발단이 일본군의 '식인(食人) 만행'이라고 지적했다.

밀리환초 지역은 토질이 척박하고 기후도 나빴다. 1944년 6월 이후 미군의 공격으로 식량 보급이 끊겨 일본군과 조선인은 굶주림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1945년 초 일본군이 조선인 숙소로 먹을 것을 가져다주며 "고래고기니 먹으라"고 했다.

하지만 며칠 뒤 근처 무인도에서 살점이 도려져 잔혹하게 살해된 동료의 사체가 발견됐다. 동료들이 자꾸 실종되는 걸 이상히 여겼던 조선인들은 일본군이 산 사람을 살해해 먹은 뒤 자신들에게도 먹인 것을 알아채고 봉기를 결심했다.

지원위는 2006년부터 밀리환초 강제동원 피해자인 이인신씨가 과거 군속생활을 기록한 수기와 다른 생존자 증언을 입수해 조사를 벌였다.

조선인이 일본군의 식인 사건에 저항하다 무차별 학살된 사실이 정부 차원의 조사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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