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 명예 더럽혔다" 가족 살해 '여성=소유물' 인식부터 변해야
아프가니스탄 출신 캐나다 이민자 남성과 둘째 부인이 첫째 부인과 딸 3명을 이른바 '명예살인'해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을 계기로, 21세기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반인류적 범죄 명예살인에 대한 관심이 새삼 집중되고 있다. 인도, 파키스탄 등 일부 남아시아와 중동지역에서 많이 발생했던 명예살인이 서구 이민자사회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명예살인은 얼마나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그 원인은 무엇일까.
◆샤피아 가족의 비극 = 지난 2009년 6월 캐나다 온타리오주 킹스턴의 운하에서 물에 빠져 가라앉은 차 한 대가 인양됐다. 차 안에는 4구의 여성 시신이 있었다. 로나 아미르 모하마드(50), 자이나브(10), 사하르(17), 지티(13)였다. 경찰은 4명의 여성이 모두 아프가니스탄 이민자 모하마드 샤피아(58)의 가족 구성원이란 사실에 주목했다. 수사 초반부터 가족 내 살인사건일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자 경찰은 결국 샤피아, 둘째 부인 투바(42), 두 사람의 아들 하메드(21)를 일급살인죄로 구속했다. 지난 1월29일 배심원단은 15시간에 걸친 토론 끝에 세 사람이 첫 부인과 딸 3명을 이른바 '명예살인'했다고 평결했다. 아이를 낳지 못했던 로나는 최근 수년간 남편에 이혼을 요구해온 상태였으며, 샤피아와 투바 사이에서 출생한 맏딸은 화려한 옷을 입고 파키스탄 청년과 연애를 하는 등 아버지와 자주 마찰을 겪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구 이민자사회와 명예살인 = 캐나다에서 명예살인이 발생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2006년 이슬람권 출신 이민자 가정의 여성 카테라 사디키가 "아버지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약혼자와 함께 오빠에 의해 살해당했다. 2010년에는 모하마드 파르베즈란 남성이 히잡(이슬람 여성스카프)을 쓰기 싫어하는 16세 딸을 아들과 함께 살해했다.
인도, 파키스탄 등 옛 식민지역 이민자가 많은 영국에서는 살인을 포함한 '명예범죄'가 2010년 현재 2283건 보고됐다. 이는 전년대비 47%나 늘어난 규모이다. 유럽의 이슬람국가인 터키 경우 2008년까지만 해도 평균 1주일당 1명꼴로 '명예살인'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됐으나 최근 들어서는 크게 줄어든 상태이다.
◆'명예살인' 연간피해자 최소 5000명 = 유엔 통계에 의하면, 전세계적으로 명예살인 피해자는 연간 5000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중동, 남아시아 인권운동가들은 비공식 피해규모는 유엔 통계치보다 4배나 더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악의 국가는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에서 각각 해마다 약 1000명이 '명예살인' 당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10년 6월 인도의 인권변호사 란지트 말호트라는 '강제결혼의 사회적 법적 측면'이란 보고서를 통해 펀자브, 하리야나, 우타르 프라데슈 3개주에서만 해마다 최소 900명이 명예살인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주에서 발생한 100∼300건을 포함하면 인도 전역에서 명예살인 건수는 최대 1300건에 이른다는 것이다. 파키스탄의 경우 2005년 무려 1만건이 보고됐다가, 현재는 1000건 미만으로 '급감'한 상태이다. 지난해 12월20일 파키스탄 인권위원회는 같은 해 1월부터 9월까지 전국적으로 675명의 여성이 '가문의 명예'란 이름으로 살해당했다고 공식보고했다. 살해된 675명 중 71명은 18세 미만의 소녀였다.
◆법보다 인식변화 시급 = 타임스 오브 인디아는 지난 1월31일 법무부와 내무부 관계자 등으로 이뤄진 정부위원회가 현행 형법에 명예살인 처벌조항이 없어 독립적인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법안에 따르면 가족으로부터 명예살인 위협을 받는 커플은 피난처를 제공받게 되고 명예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입법화 과정에서 정치적 논란이 야기될 것으로 보이는데다가 정치적 영향력이 강력한 인도 북부지역 마을 공동체 원로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설 가능성이 커 과연 법안이 현실화될지는 미지수이다.
무엇보다 여성을 '소유물'로 보고, 교환가치를 잃었을 경우 '폐기처분'해도 된다는 인식이 바뀌지 않은 한 명예살인은 근절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오애리 선임기자 aer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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