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중국이 아니야" 신장 위구르 유혈시위, 왜?
[오마이뉴스 모종혁 기자]
5일 밤 중국 서북부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의 수도 우룸치(烏魯木齊)에서 대규모 유혈시위가 발생했다.
중국 관영 < 신화통신 > 은 "일단의 군중이 우룸치 런민(人民)광장, 제팡루(解放路), 국제 바자르, 신화난루(新華南路) 등 각지에서 시위를 벌였다"며 "이들은 행인을 공격하고 차량을 불태우는 등 난동을 부려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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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아침 관련 뉴스를 보도한 중국 언론매체는 피해자가 3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낮에는 AFP 통신이 중국정부 대변인을 발언을 전하며 사망자가 140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 신화통신 > 도 지역 공안당국의 발표를 인용, 129명이 사망하고 816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영국 < 더 타임스 > 는 "시위 참가자가 최소 3000명에서 최대 수만 명에 달한다"며 "금세기 이래 신장에서 일어난 최대 위구르 독립시위"라고 규정했다.
우룸치시 정부는 6일 아침 긴급 성명을 발표해 "시위가 발생한 일부 지역 교통과 출입을 통제한다"며 "모든 기관과 개인은 사회질서 안정에 적극 나서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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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룸치시는 "베이징 시각으로 5일 밤 8시 우룸치 도심 각지에서 불법 집회와 난동 행위가 발생했다"며 "현재는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신장위구르자치구 정부는 TV를 통한 성명을 통해 "이번 유혈시위는 레비야 카디르 일당이 사전에 공모하여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레비야 카디르는 위구르 독립운동을 벌였던 신장 최고의 재벌로, 현재는 미국에 망명해 재미 위구르협회장을 맡고 있다. 자치구 정부는 "레비야가 이끄는 세계위구르대표대회가 홈페이지를 통해 위구르인의 분리 독립을 선동했다"며 이번 유혈시위의 주범을 레비야로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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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의 대규모 독립시위, 95·97년 진상은 지금도 은폐 중
신장은 티베트와 더불어 중국에서 분리 독립 움직임이 활발한 곳이다. 티베트에 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 했지만, 작년 8월 베이징올림픽 전후 잇달아 폭탄 테러가 발생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수년 동안 크고 작은 분리 독립 관련 테러가 일어났으나 일반 시민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유혈시위가 발생한 것은 1997년 굴자(伊犁) 독립봉기 이래 12년만이다.
1997년 2월 굴자에서 수천 명의 위구르인들이 분리 독립 참여혐의로 감금된 주민을 석방해 달라고 집단시위를 벌였다. 중국정부는 군대와 무장경찰을 동원해 시위대에 발포해, 적어도 400명이 사망하는 대량 학살사건이 발생했다.
사망자 중에는 아버지와 남편 석방을 요구하던 8살 소녀와 임산부도 끼어있었다. 사건 발생 뒤 중국정부는 병단의 민병대까지 동원하고 간쑤(甘肅)성에서 3만 명의 군대를 보내 굴자 일대를 장악했다.
이보다 앞선 1995년 6월에도 굴자에서 위구르인과 카자흐족 5만 명이 분리 독립과 공산당 통치종식을 요구하면서 대규모 시위를 일으켰다. 참가자들은 '공산당과 한족은 물러가라'고 외치며 정부 청사를 점거하며 군경과 대치했다.
사건 발생 후 군경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88명이 죽고 300여 명이 부상했다. 당시 중국정부는 굴자와 보러(博樂)에 군대를 증파고 계엄 및 통금을 실시해 간신히 사태를 진압할 수 있었다. 두 사건은 지금도 중국정부에 의해 현장 조사가 금지되어 진상이 은폐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도 신장 내 분리 독립 활동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지난 달 3일 장젠 카슈가르(喀什)시 당서기는 "4월까지 카슈가르 변경지역에서 테러조직 7개를 색출했다"고 밝혔다.
장 당서기는 "1990년대 이후 카슈가르에서만 350건의 소요사태가 일어나 정부 관리와 민간인 60여 명이 사망했다"며 "1990~2003년 적발된 테러단체와 분리주의 조직도 591개나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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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약탈정책과 한족의 대량이주가 사태 원인"
매년 10%에 가까운 경제성장에도 위구르인들의 분리 독립 요구가 거센 데는 경제적 차별과 한족의 대량 이주 때문이다. 우룸치를 둘러싼 신장의 면적은 164만7000㎢. 중국 전체 면적의 6분 1이나 되는 광활한 땅으로 한국의 16배나 된다.
인구는 2천만 명도 안 되지만, 석유·천연가스 등 매장량이 중국에서 가장 많은 자원의 보고다. 러시아를 비롯, 카자흐스탄,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8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변경 무역도 활발하다.
지난 2003년 1886억 위안(한화 약 34조8910억 원)이던 신장의 GDP(국내총생산)는 작년 4203억 위안(약 77조7555억 원)으로 늘어났다. 경제 규모가 5년 만에 2배 이상 커진 것이다. 작년 무역량도 62%나 늘어 중앙아시아 경제무역 중심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결실은 한족이 차지하고 있다. 위구르인들은 언어와 종교적인 문제를 들어 취업 등에 있어서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 우룸치의 위구르 청년실업은 한족의 4~5배에 달한다.
밀려드는 한족은 위구르인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1950년 중국이 신장을 점령할 당시 5%에 불과했던 한족은 오늘날 위구르인보다는 더 많다. 2005년 인구 조사에서는 우룸치 인구 268만 명 중 한족 비율이 85%나 되었다. 위구르 종교문화의 마지막 보루라고 불리는 카슈가르마저 한족 비율은 30%에 가깝다.
작년 일자리를 찾지 못해 키르기스스탄으로 넘어간 오스만(25)은 "신장은 한족에 의해 점령당한 식민지"라며 "더 이상 위구르인의 땅이 아니다"고 울분을 토했다.
평소 위구르인들은 분노를 잘 표출하지 않는다. 반세기 이상 중국정부의 탄압이 지속되면서 자신들의 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위구르인들의 이번 시위가 중국정부의 주장대로 단순히 레비야의 지시로 일어났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룸치의 한 위구르 지식인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지 사정이 아직도 불안정하다"면서 "위구르인이나 무슬림을 무조건 범죄자나 테러리스트 취급하는 한족에 대한 분노와 중국정부의 수탈적인 약탈정책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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