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명예살인' 가문의 영광 위해 유린되는 이슬람 딸들

이청솔 기자 2010. 8. 31.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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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결혼 거부 등 명예 더럽혔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사적 처벌'인도 등 연간 5천여명 목숨 잃어.. 법으로 금지 불구 뿌리깊은 악습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것입니다."

지난달 15일 아프가니스탄 북부 쿤두즈주 물라쿨리 마을에서 탈레반의 '투석처형'으로 목숨을 잃은 한 남녀가 형 집행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25세 남성 카얌은 부인이 있었고, 19세 여성 시디카는 약혼한 남성이 있었다.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는 현지 풍습에 따라 카얌은 시디카를 두번째 부인으로 들이려 했다. 하지만 시디카가 약혼한 남성은 카얌의 친척이었고, 카얌과 시디카의 사랑은 주위의 혹독한 반대에 부딪혀 '간통'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했다.

현지 탈레반 종교법정에서 간통죄를 선고받은 이들에게 돌팔매질을 한 남성 200여명 가운데는 카얌과 시디카의 아버지와 형제들도 있었다. 아프간 동부 쿠나르주로 도망쳤던 카얌과 시디카에게 "돌아오면 결혼을 허락하겠다"는 거짓말을 해 꾀어낸 것도 이들의 가족이었다. 가족의 명예를 더럽힌 이들은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목숨을 빼앗는 '명예살인'의 한 단면이다.

죽음으로 가족의 명예를 지켜야 하는 여성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명예살인을 "가족에게 불명예를 가져다줬다고 생각되는 여자 가족 구성원을 남자 가족 구성원들이 죽이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더 넓은 의미는 남녀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덧붙이고 있지만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명예살인의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명예살인의 희생자가 되는 경우는 다양하다. 강요된 결혼을 거부하는 경우, 간통한 경우뿐만 아니라 성폭행의 피해자가 됐을 때도 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누명을 쓰게 된다. 여성이 씨족 집단의 '복장 관습'을 어기는 것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혼하려 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남편의 폭력이나 학대를 견디지 못한 여성들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지난달 9일 미국 시사주간 타임의 표지 모델로 등장해 세계인을 놀라게 했던 아프간 소녀 비비 아이샤(18)는 목숨은 건졌지만 남편과 시댁 식구들의 학대에서 벗어나려다 잔혹한 폭력의 희생양이 된 경우다. 그는 친정으로 도망쳤다가 탈레반을 대동한 남편에 의해 코와 두 귀가 잘렸다.

대부분의 명예살인이 가해자는 남성,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공식을 따르고 있다. 그렇다고 여성들이 명예살인에 대해서 모두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여성들도 자신의 가족 내 다른 여성에 대한 명예살인에 동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족은 '남성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여성들은 가족의 명예를 더럽힌 딸을 죽이지 않을 경우 외부 남성들이 자신의 다른 딸들과 결혼하는 것을 꺼려할까봐 명예살인을 옹호하기도 한다. 여성은 죽음으로써 가족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가치는 찾아볼 수 없고, 가족 집단의 부속품으로서의 여성만 존재한다.

유엔인구기금(UNFPA)은 명예살인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1년에 전 세계적으로 5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문제는 명예살인을 옹호하는 집단은 이를 자신들의 전통이나 문화라고 주장하며 살인을 금지한 실정법보다 우선시한다는 점이다. 아프간 탈레반처럼 실질적으로 권력을 잡고 있는 집단이 명예살인을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

명예살인이 근래 들어 등장한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기원전 1790년에 발행된 바빌론의 함무라비 법전은 "간통을 저지른 남녀는 참수시켜 죽인다"고 적고 있다. 기원전 1075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아시리아 법은 "순결을 잃은 처녀의 아버지는 딸을 벌주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고대 로마에서는 간통한 여성에 대해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남자 가족 구성원들이 박해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여성 지위 낮은 사회에서 명예살인도 많아

현대에 와서 명예살인이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은 파키스탄, 인도 등 남아시아와 중동 지역이다. 여성의 권리가 상대적으로 미약한 지역과 명예살인이 많이 벌어지는 곳은 겹친다. 가족·결혼 문제 전문가인 버밍엄 대학의 리처드 윌킨스 교수는 사회의 기본적 문명화 정도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 여성에 대한 폭력의 강도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는 경쟁에서 뒤처진 남성이 여성을 억압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회복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파키스탄에서는 명예살인을 '카로카리'라고 부른다. 국제앰네스티는 "파키스탄 당국은 수사와 가해자 처벌을 통해 명예살인을 막는 데 실패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명예살인 가운데 상당수는 외부로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여성들이 '자살'한 것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희생자와 관련된 정확한 통계는 없다. 하지만 2002년 신드주 한 곳에서만도 여성 245명, 남성 137명이 명예살인으로 희생된 것으로 집계됐을 만큼 파키스탄에서 명예살인은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여성 권익 옹호단체들은 파키스탄에서는 사회, 경제, 정치 등 모든 측면에서 여성을 '자산'으로 여기는 인식이 확고해, 정부도 매일 같이 벌어지는 명예살인을 눈감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동에서도 명예살인의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08년 4월에는 한 여성이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을 통해 남성과 교류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살해됐다. 이 사건은 사우디 성직자가 '인터넷이 불러온 사회갈등의 예'로 언급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레바논에서는 1년에 여성 40~50명이 명예살인의 희생자가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동에서 가장 개방적인 나라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요르단에서도 명예살인이 벌어진다. 이 나라에서는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져 있을 만큼 성차별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명예살인에 대한 처벌 형량이 고작 6개월 이하 징역형이다. 해당 법률을 차용한 팔레스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요르단에서는 1999년부터 법률 개정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개정안은 아직도 하원을 통과하지 못했다.

유럽·미국 등 서구권에서도 이민자 사회를 중심으로 명예살인이 벌어지고 있다. 2005년 독일 슈피겔지는 "4개월 동안 베를린에 거주하는 무슬림 여성 6명이 가족들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했다"고 전했다. 그 가운데 한 여성은 가족들이 정해준 남편과 함께 살기를 거부하는 등 '독일인처럼' 살려 했다는 이유로 희생됐다. 영국에서도 해마다 여성 10여명이 명예살인의 희생자가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구권 국가들은 '문화 상대주의'에 대해 둔감하다는 이민자 사회의 반발을 우려해 자국 내에서 벌어지는 명예살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산다.

카스트는 사라져도 다른 카스트와의 결혼은 '불명예'

명예살인 대부분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힌두교 인구가 다수인 인도에서도 최근 급증하는 추세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과 결혼하려다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지만 '카스트'라는 인도 특유의 요소도 한 요인이다. 인도의 신분제인 '카스트 제도'는 현재 존재하지 않지만, 아직도 민간에서는 출신 카스트를 따지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다른 카스트와의 결혼을 시도하다 희생되는 이들이 나오는 것이다.

뉴델리에서는 지난 6월 10대 커플이 교제를 반대하는 여성 가족들의 전기고문 끝에 숨졌다. 여성의 아버지는 딸이 다른 카스트에 속한 남자친구와 사귀는 것에 반대해 같은 카스트에 속한 부동산 중개업자와 강제로 약혼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둘이 태도를 바꾸지 않자 딸의 남자친구를 집으로 불러 인두와 전기로 고문해 숨지게 했다. 같은 달 북부 찬디가르에서는 한 남성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교제한 딸과 딸의 남자친구를 살해한 뒤 본보기로 동네 주민들에게 전시하기도 했다.

법적인 차원에서는 대부분의 나라가 명예살인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파키스탄, 터키, 이집트 등 광범위하게 명예살인이 행해지는 나라들도 규정상으로는 이를 엄히 처벌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요르단, 시리아, 모로코처럼 명예살인을 어느 정도 허용하는 나라들도 있다. 남미의 브라질과 콜롬비아도 20세기 후반까지 남편이 간통한 부인을 살인하는 행위를 눈감아줬다.

특기할 만한 것은 가족 혹은 씨족집단의 '명예'를 훼손시킨 이들에 대한 '사적 처벌'이라는 명예살인이 유독 약혼, 결혼, 간통 등 성적 영역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을 저지른 여성들을 겨누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명예살인이 여성을 사회 구성원 재생산의 도구로 여기는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인류학자 샤리프 카나나는 "부계사회에서 남성들이 통제하고자 하는 것은 생식과 관련된 힘이다. 여성들은 남성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여겨지고 있다"며 "명예살인은 성 권력과 행동을 통제하려는 수단이 아니며, 그 뒤에 숨어 있는 것은 종족 번식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청솔 기자 ta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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