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사형수 어머니 14년뒤 '애달픈 승소'

2011. 9. 1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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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살 공군, 고문 못이겨 살인자백 '총살'…결국 무죄

어머니 끈질긴 재수사 요청 결실…사형제 논란 확산

대만 공군의 사병이던 장궈칭은 21살이던 1997년 사형당했다.

1996년 공군 작전사령부 영내에서 다섯살 소녀가 성폭행당하고 살해된 사건이 일어나자, 군은 그를 용의자로 체포했다. 재판정에서 장궈칭은 진술을 뒤집고 고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백했다고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당시 성범죄 전과가 있는 쉬룽저우라는 사병이 범행을 자백했는데도 군은 이를 무시했다. 97년 8월 총살로 장궈칭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14년이 흐른 지난 13일, 대만 군사법원은 장궈칭이 당시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대만과 중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장궈칭의 억울한 죽음이 드러나면서, 대만에서는 사형제에 대한 논란이 불붙고 있다.

잊혀진 사건을 되살린 것은 아들의 억울함을 씻으려는 장궈칭 부모의 끈질긴 노력이었다. 부모는 몇년 동안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재수사를 요청했고, 대만 검찰원은 지난해 재수사를 지시했다. 재수사 결과, 당시 범죄 현장에 장궈칭이 있었다는 증거가 전혀 없고, 장궈칭이 고문을 받아 자백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14년 전 범행을 자백했는데도 처벌받지 않았던 쉬룽저우가 용의자로 체포됐다.

무죄 판결이 나온 날, 장궈칭의 어머니 왕차이롄은 판결서를 손에 들고 아들의 위패 앞에 향을 피워 넋을 위로했다. 왕차이롄은 눈물을 흘리며 "아들아 네가 무죄라는 판결이 나왔다. 결국 억울함을 씻었다"고 말했다고 <연합보>가 전했다. 장궈칭의 집에 도착해 판결서를 내미는 국방부와 공군작전지휘부 간부들에게 그는 "정말 너무나 늦게 왔다"고 탄식했다. "15년 동안 하루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도 아들이 눈앞에서 계속 울면서 호소했다."

마잉주 대만 총통은 장궈칭의 가족에게 공식 사과하면서 "사법 개혁을 통해 앞으로는 이런 억울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밝혔다. 대만 정부는 1억대만달러가 넘는 배상금을 지급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특별조사팀은 14년 전 장궈칭을 고문하고 사형 판결했던 책임자들에겐 불기소 처분을 결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장궈칭의 어머니는 "현재 가장 큰 소원은 그때 죄를 지은 사람이 응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라며 "사건 당시 국방부장인 천자오민 등은 부당한 고문과 판결로 아들을 억울하게 죽이고도 지금까지 죄를 인정하지 않고 아들의 무덤에 가서 사과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법률 전문가들도 당시 군이 사건을 서둘러 해결하느라 장궈칭을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대만은 2006년부터 4년 동안 사형제도 유예기간(모라토리엄)을 실시해 사형을 집행하지 않다가, 지난해 사형제도를 다시 부활시켰다. 이후 지금까지 9명의 사형이 집행됐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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