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베스 '빈민구제' 개혁..고물가·계층갈등 '진통'

2010. 9. 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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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석유 수익 기반으로 무상의료·교육 실시

중산층 이상은 "부패하고 경제 망쳐" 분노

국민분열 극심…사회제도 변화 최대 과제

'독립과 혁명'. 올해 독립 200주년을 맞은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 곳곳의 도로변에는 독립영웅 시몬 볼리바르의 얼굴 옆에 나란히 두 글자가 쓰여져 있다.

이 나라에 혁명적 변화가 시도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지난달 17일, 카라카스 외곽의 곧 무너질듯한 산비탈에 들어찬 빈민촌 옆 작은 보건소엔 환자 수십명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이 잘 안보였는데 무료로 안과치료를 해줘서 볼 수 있게 됐다."(마리아 오소리오•47) "가난한 사람들은 아파도 참는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치과치료도 받을 수 있다."(알란 끌라비호•43) 주민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실시하는 30개 '미시온'(사회정책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무료 의료혜택을 제공하는 '미시온 바리오 아덴트로'의 현장이다.

카라카스 시내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 건물을 개조한 볼리바리아나대학교에서 만난 자니나 사바르세스(35)는 "고등학교 졸업 뒤 17년 만에 꿈도 못꾸던 대학이란 곳에서 법학을 공부하면서 변호사로 일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료·교육·육아시설과 협동조합이 모두 갖춰진 발전센터에서도 "쉰살 넘어 글을 배웠다""이제야 생계를 꾸릴 수 있게 됐다"는 격찬이 쏟아졌다.

"모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는 차베스 대통령 덕택"이라는 소리가 이어졌고, 거리의 서민들은 차베스를 "우리들의 최고사령관"이라고 자주 불렀다. 베네수엘라 정부의 각종 복지혜택을 설명하던 안내자는 "완전 무료"(¡totalmente gratuita!)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카라카스 시내의 하천 강둑에는 "사회주의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이라고 쓰여 있었다.

차베스가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을 내걸고 세계 10대 석유수출국인 베네수엘라의 석유 수익을 서민과 빈민층에 돌리면서, 그동안 베네수엘라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지만 소외됐던 이들은 환호했다. 1998년 차베스 집권 이전, 보수 양당은 1958년 이른바 '뿐또 피호'협정을 맺어 권력을 독점하고 국부를 소수 기득권층이 독점해왔다. "수십년 동안 아무도 못한 일을 하고 있다" "수차례 선거에서 뽑아준 다수의 국민이 원하는대로 하는 게 독재인가?"라고 지지자들은 열변을 토했다.

반면, 서민에게 '신이 보내준 존재' 차베스는 중산층 이상에게는 증오의 대상이다. "가난한 사람을 노예로 만든다" "부패하고 경제를 망쳤다" "중산층에 희망이 없다" "인간의 본성을 바꾸려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 대선에서 야당 후보 선거책임자였던 호세 까라께로 시몬볼리바르대 교수는 "국외 송금과 시장가격까지 통제하면서 사회주의 쿠바처럼 바뀌고 있다. 혁명의 성과라는 것은 선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반차베스 일간지 <딸꾸알>의 테오도르 페트코프 편집장은 "정치시스템을 망가뜨리고 모든 권력이 대통령 한 명에게 집중돼 있다. 역대 최저의 효율성을 가진 최고로 부패한 정권"이라고 비난했다.

카라카스는 마침 공무원들이 17만9000t의 식료품을 빼돌려 공금을 횡령한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하필이면', 빈민촌에 가정용 가스통을 거저 나눠준다는 곳을 방문했을 때는 "가스 없음"이라고 쓰여 있고 식료품 할인슈퍼 메르칼은 "내부 수리"로 닫혀 있었다. 2006년 13.7%였던 물가상승률은 올해 29.7%로 예상된다. 2008년 한때 배럴당 140달러를 넘어섰던 국제원유가격이 70달러대로 떨어져 복지예산 축소도 불가피하다.

차베스는 독립혁명가 볼리바르를 꿈꿨지만, 찬반으로 극단적으로 쪼개진 카라카스에서 그는 볼리바르처럼 모든 국민의 영웅은 아니었다. 시장 상인 이사이마 베세라(41)는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앙헬 모로 볼리바리아나대 부총장은 "변화의 과정에는 사회적 위기가 따르고 기득권층과 타협하면서 혁명을 할 수는 없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더 나은 길을 가기 위한 과정이다"라고 혼란과 갈등을 설명했다.

차베스의 '실험'은 혁명과 거짓선전, 맹종과 증오 그사이 어디께 있었다. 베네수엘라를 떠나는 날까지 '이같은 분열 속에서 차베스식 혁명이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맴돌았다. 칠레에서 만난 전문가의 말들이 머릿속서 떠나지 않는다. "한 명의 지도자보다 제도화가 더 중요하다." "변화는 한꺼번에 이룰 수 없다." 카라카스 산티아고/

글·사진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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