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작전명 '제로니모'의 아이러니

2011. 5. 12.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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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전설의 아파치족 추장의 이름… 미국 억압에 맞서 싸운 영웅

"제로니모 E-KIA."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던 순간 미 특수부대원이 외친 말이다. '제로니모'는 빈 라덴 제거작전의 암호명이며, 'E-KIA'는 'Enemy Killed In Action', 즉 '적이 작전 중 죽었다'는 뜻이다. 작전명이 알려진 지난 3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한 통의 항의서한이 전달됐다. 발신자는 알 카에다가 아니었다. 편지를 보낸 이는 제프 하우저 아파치족 추장이었다.

아파치족을 비롯한 미 인디언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제로니모'가 바로 미국의 억압에 맞서 끝까지 저항한 아파치족의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1829년 현재 미국 애리조나주 길라 강가에서 태어난 제로니모의 본명은 '하품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고야클라'(Goyahkla)였다. 본명보다 더 잘 알려진 별명은 그의 용맹함을 두려워한 멕시코인들이 가톨릭 성인 성 예로니모(Jeronimo)를 외치며 기도한 데에서 비롯됐다.

제로니모의 일족인 치리카후아 아파치족은 미국과 멕시코의 경계에 해당하는 현재의 뉴멕시코, 애리조나 지역에서 반농·반수렵 생활을 하며 살고 있었다. 1848년 미국·멕시코 전쟁으로 아파치족의 영역이 미국 영토가 된 이후 미 정부는 아파치족의 저항을 누르고 이들을 애리조나 중동부 황무지에 위치한 산 칼로스의 보호구역으로 강제이주시키기로 결정했다. 제로니모는 명령을 거부하고 수백 명의 부족원들을 데리고 멕시코로 떠났다. 이후 제로니모는 애리조나, 뉴멕시코, 서부 텍사스 등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며 미군을 괴롭혔다.

강제이주정책에 맞서 끝까지 저항

1883년 미국은 국경지대의 불안을 끝내기 위해 남북전쟁에서 활약한 조지 크루크 장군을 애리조나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크루크는 제로니모 이전부터 있었던 아파치족과의 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제로니모의 사촌 제이슨 베치네즈와 함께 직접 멕시코로 넘어가 제로니모를 만났다. 당시 크루크는 보호구역 내의 아파치족에게 신임을 얻고 있었으므로 제로니모는 1884년 크루크를 믿고 애리조나의 보호구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애리조나 지역 신문에는 제로니모를 죽여야 한다는 성토가 끊이지 않았다. 결국 제로니모는 1년이 채 못 되어 추종자들과 함께 멕시코로 떠났다.

크루크는 여러 차례 제로니모를 추적했지만 끝내 체포에는 실패했다. 미 육군성은 크루크 대신 강경파 넬슨 마일즈를 불러들였다. 1886년 4월, 마일즈는 취임과 동시에 5000여 병력과 500명에 달하는 아파치족을 앞세워 제로니모 체포에 나섰다. 태양광을 이용한 수십대의 통신장비도 대동했다. 다섯 달간 끈질긴 추격전이 벌어진 끝에 제로니모는 붙잡혔다. 끝까지 제로니모 곁에 남은 것은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한 36명이었다. 체포된 이후 제로니모는 다시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

이후 제로니모는 플로리다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오클라호마의 실 요새에 정착하게 된다. 1898년 오마하의 국제박람회에서는 구경거리가 됐고, 1904년 세인트루이스 만국박람회에서는 자신의 사진과 직접 제작한 수공품을 팔았다. 제로니모뿐만 아니라 미국의 침략에 저항했던 다른 인디언 지도자들 역시 인디언 쇼 출연료 등으로 연명하는 여생을 살았다.

제로니모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공식석상은 1905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 대통령의 취임식 퍼레이드였다. 당시 제로니모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나와 내 동족은 살 집이 없습니다. 백인들이 우리 고향땅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나가달라고 해 주십시오." 제로니모의 행적은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보다는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아랍 민중의 모습과 더 닮았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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