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법원 '균형 잃은' 야스쿠니 판결

이충원 2011. 7. 2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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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야스쿠니(靖國)신사 합사취소소송의 피고는 이전에는 주로 일본 정부였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전신인 후생성 인양(引揚) 원호국이 1956년 4월에 '야스쿠니 신사 합사 명부 사무 협력에 관하여'라는 통지서를 발표해 각 지자체에 합사 사무에 협력하라고 지시했고, 실제로 1956 1972년에 걸쳐 전몰자 명단을 야스쿠니신사에 보내줬으니 일본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소송은 주로 '헌법상 정치와 종교 분리 규정 위반 여부'를 쟁점으로 진행됐고, 일본 법원은 "일반적인 행정서비스를 한 것일 뿐 정교분리 규정을 어겼다고는 할 수 없다"고 기각했다.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이들도 이미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2006년 5월25일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일본 정부의 전몰자 통지는 일반적인 행정 조사, 회담 사무 범위 내의 행위였고, 전몰자 합사는 야스쿠니신사가 판단해 실시한 것"이라는 패소 판결을 받았다.

이에 대해 이희자씨 등 합사자 유족과 생존자인 김희종씨는 야스쿠니신사를 피고에 추가해 2007년 2월에 새로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의 의미는 한국인 합사자나 유족이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낸 첫 합사취소 소송이라는 점 말고도 생존자가 낸 첫 소송이라는 데 있었다.

재판 과정을 지켜본 이들은 점점 보수화하는 일본 법원이 원고들의 손을 들어줄 리 없다고 예상하긴 했다. 그래도 원고측은 끝까지 '설마 생존자 이름을 빼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뭔가 그럴듯한 설명이나 조치가 있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하지만 일본 법원의 1심 판결은 일방적으로 야스쿠니신사에 치우친 것이었다.

판결 논리는 "다른 사람의 종교상 행위에 의해 자신의 평온함이 침해됐을 때 불쾌해하고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를 손해배상이나 행위 중단 등의 법적 구제로 연결하면 상대방의 종교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는 것. 즉 일본 신사가 제멋대로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를 믿는 이를 제사지낸다고 해도 멈추게 하거나, 위자료를 주라고 지시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불쾌하다고 해서 법적으로 구제하면 종교적 행위를 제약하게 된다"거나 "다른 이의 종교적 행위가 강제나 불이익을 동반해 자신의 종교의 자유를 방해할 때에야 비로소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다"는 대목도 있다. 야스쿠니신사가 제사를 함께 지내도록 억지로 신사에 데려간 것도 아닌 만큼 '살아있는 사람을 제멋대로 제사지냈다'는 정도로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없다는 소리이고, 더 나아가서는 일본 헌법에 규정된 여러 가치 중 '종교의 자유'는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나 행복 추구권, 인격권 등 다른 어떤 가치도 침해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논리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동안 일본 법원은 강제 징용자나 일본군 위안부 등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관련된 재판에서 '1965년 한일협정' 등을 방패로 내세워 일본 정부나 기업의 편을 들긴 했다. 그래도 이전에는 일본 기업의 자발적인 보상 노력을 촉구하는 등 최소한 균형을 취하려는 '시늉'이라도 했는데 이번에는 '야스쿠니가 뭘 하든 종교의 자유다'라는 논리로 치달은 것이다. 이에 대해 원고측 일본인 변호사는 "같은 일본인으로서 부끄럽다"고 탄식했다.

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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