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 만주 개척한 일본인 위령비 훼손.. 양국 긴장

2011. 8. 7.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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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 일본의 만주 개척정책에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현지에서 사망한 만몽개척단을 기리기 위해 세운 위령비가 중국의 네티즌에 의해 훼손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국과 일본의 관계가 경색될 위기에 놓였다고 일본 언론들이 7일 보도했다.

산케이(産經)신문 등에 따르면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팡정(方正)현 정부가 지난 달 만몽개척단 4,500명이 매장된 일본인 공원묘지에 50만위안(8,200여만원)을 들여 건립한 위령비를 3일 중국인 남성 5명이 쇠망치로 부수고 붉은 페인트를 뿌리는 등 훼손했다.

경찰은 당시 위령비 훼손 가담자를 붙잡아 조사한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돌려보냈으며 이들 중 한 명은 웨이보(微博)에 "만몽개척단도 중국을 침략한 일본인의 일원으로 그들을 위해 묘비를 세우는 것은 치욕"이라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글을 올렸다.

이 사실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자 이들은 '항일영웅'으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앞서 2일 중국의 적극적인 해상 군사활동과 지난해 9월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ㆍ釣魚島) 앞바다에서 발생한 중국 어선 충돌사건을 두고 고압적이라고 비판한 일본의 방위백서 발표에 격분한 중국인들이 각지에서 몰려와 위령비를 훼손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팡정현은 6일 위령비를 자진 철거했다.

산케이신문은 팡정현이 위령비를 철거한 것은 중국 당국과 반일단체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일본인 민간인들로 구성된 만몽개척단은 1945년 소련군의 참전으로 난민으로 전락했고 결국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기아와 생활고 등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었다"며 1963년 주은래 당시 총리의 지시로 이들의 공개 묘지를 만들 때만 해도 중국 정부나 국민 모두 "전쟁 책임은 군국주의자에 있으며 일본 국민은 피해자"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어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시대부터 "일본 국민은 모두가 가해자"라는 취지의 반일 교육이 시작됐고, 이 교육을 받은 세대가 중국의 여론을 형성하는 주류로 자리잡으면서 민족 감정을 법률보다 우선하는 사례들이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팡정현의 일본인 묘지 관리를 지원하는 팡정우호교류회 오루이 요시히로 사무국장은 "(중국인의) 도량 넓은 국제주의적 정신이 아쉽다"고 말했고 중국 주재 일본의 대기업 관계자는 위령비 훼손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 "법률에 따라 처벌하지 않으면 향후 일제 자동차 파손이나 일본 식당의 습격도 정당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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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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