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뭘 할 수 있냐고? 1명의 힘 세상을 바꾼다

2008. 10. 1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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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고집불통 집시법 '나홀로 시위'는 진화중

지난 3월5일 가수 인순이씨의 데뷔 30주년 기념 전국투어 콘서트 관련 기자회견장. 인순이씨는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하고 싶어 서류를 완벽하게 구비해 제출했는데도 탈락했다"며 "만약 예술의전당이 공연을 한 번 더 거부한다면 '1인 시위'라도 하겠다"고 말했다. "세금을 내는 국민으로서 국민에게 대중가요를 좋은 공연장에서 즐길 수 있는 권리를 줬으면 좋겠다"는 자신의 주장을 펴기 위해 인순이씨는 1인 시위도 불사하겠다고 한 것이다.

내로라하는 국민가수가 자신이 표현하고, 주장하고 싶은 바를 알리는 수단 중 하나로 언급할 정도로 1인 시위가 대중 속에 자리잡았다. '나 혼자 뭘 할 수 있겠어'에서 '나 홀로라도 주장을 펴겠어'로 생각과 실천의 방향이 옮겨가면서다. 단순히 가만히 서 있으며 구호를 외치는 방식에서 그 방법도 다양해지고, 일반 시민에서부터 유명 연예인까지 시위 참가자의 범위도 넓어졌다. 처음부터 잘 짜인 엄청난 조직의 힘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에 바탕을 둔 '나홀로 시위'가 진화 중이다.

"혼자라도 해보자", 말이 씨가 되다

1인 시위가 알려지게 된 것은 2000년 12월 참여연대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변칙 상속에 항의하고 증여세 적극 추징을 요청하기 위해 국세청 앞에서 항의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최초의 1인 시위를 기획했던 홍일표 희망제작소 상임연구원(당시 참여연대 조세개혁팀 간사)은 "당시 국세청이 입주했던 건물은 종각역 근처의 삼성생명 건물이었은데 같은 건물에 온두라스 대사관이 입주하고 있어 시위를 할 수가 없었다"며 "국세청에 항의 시위라도 하려면 한참 떨어진 YMCA 앞까지 가서 해야 했는데 속된 말로 영 '말빨'이 안먹히더라"라고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는 "외국 대사관이 입주한 건물이나 입법기관 주변 100m 이내에서는 집회를 할 수 없다"는 금지 규정이 있었던 데다, 집회의 개념이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도로, 광장, 공원 등 일반인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행진하는 것"이라고 규정돼 있기 때문에 국세청 앞에서 다수가 모인 집회를 여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아무리 국세청이 증여세를 과세해야 한다는 자료를 많이 모았다고 하더라도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던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이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생각해낸 것이 1인 시위였다. "정 안되면 혼자라도 하겠다"는 말이 그대로 시위가 되어 혼자 피켓을 들고 국세청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조세개혁팀 소속의 윤종훈 회계사가 1번 타자가 됐다. 처음엔 혼자 서 있는 것 자체가 "뻘쭘했다"고 한다. 홍 연구원은 "그렇게 아이디어를 내고 시작했지만 전례가 없었던 일이라 고민을 했다"며 "국세청 정문에 설지 직원들이 이용하는 후문에 설지, 출근시간에 할지 점심시간에 할지, 하루종일 서 있을지, 시선은 어디로 둘지 등 사소한 것 같지만 예민한 부분들이 고민이 되더라"라고 술회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진행되던 1인 시위는 다음 단계로 유명 인물들을 1인 시위자로 나서게 했고, 이들을 법에서 정한 일정한 거리 간격을 두고 릴레이 배치를 하기도 했다. 이즈음 인터넷을 통해 1인 시위 신청자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설마 누가 신청을 하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실명'을 건 민간인이 국세청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겠다는 신청자는 예상을 뛰어넘었고, 1명이 소화하던 시간에 2명씩 교대로 시위를 해야 신청자를 모두 소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79일 동안 이어진 시위에는 108명이 참여했고 1인 시위의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국세청의 삼성에 대한 증여세 징수 방침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장동건도 1인 시위

곧 1인 시위는 각 분야로 번져나갔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시위, 교육권 투쟁, 노동계 이슈,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시위, 이라크 파병 반대 등 주제도 다양해졌고 각종 단체에서 기본적인 시위의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장애인 교육권 연대, 장애인 이동권 연대 등 여러 장애인 인권 확장을 위한 활동에서 1인 시위를 해왔다는 장애인 학생지원 네트워크 김형수 사무국장은 "시민단체 활동가는 물론 피해 당사자나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도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1인 시위의 장점"이라며 "처음 1인 시위를 시작할 때는 경찰 등 관계기관에서 압박 아닌 압박을 주지만 크게 규범을 어기지 않는 한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고 1인 시위의 특징을 정의했다.

김 국장은 또 "촛불집회와 같이 대규모 군중이 모이면서도 폭력 행사 없이 평화적 시위가 진행되는 데 1인 시위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1인 시위도 이제 하나의 문화적 코드가 됐다"고 진단했다.

1인 시위는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확산됐다. 대표적인 것이 고등학생 신분으로 학교의 종교 강요에 맞서 1인 시위를 벌인 강의석씨가 대표적이다. 2004년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강씨는 "학교가 비기독교인 학생들에게도 종교를 강요하고 있다"며 '헌법 20조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예외다?'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이 시위로 강씨는 학교에서 제적당하기도 했지만 관심을 끌지 못했던 주제인 미션 스쿨 학생의 종교자유에 대한 사회적 환기를 일으켰던 사례로 기록된다. 최근 강씨는 지난 국군의 날 행진 대열에 뛰어들어 군대 폐지를 주장하며 혼자 알몸 퍼포먼스 시위를 펼쳐 현행범으로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연예인들도 1인 시위에 얼굴을 내비치는 단골손님들이다. 유명인의 1인 시위는 그 자체로 사회적 관심이 환기된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안성기, 정재영, 이준기, 문소리씨 등 유명 영화배우들이 줄줄이 벌인 스크린 쿼터 축소 반대 1인 시위가 대표적이다. 유명인사들의 1인 시위는 해프닝을 동반하기도 한다. 2006년 톱스타 장동건씨가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스크린 쿼터 사수 1인 시위에 나선다는 소문이 팬들 사이에 퍼졌다. 장동건씨가 피켓을 들고 서 있기로 한 시간에 근처 직장인들을 비롯한 팬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고 장동건씨는 1인 시위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3분 만에 철수해야 했다. 광화문 시위가 불발로 끝나자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자리를 옮겨 시위를 이어가려 했으나 이 역시 같은 이유로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2001년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열린 장충동 국립극장 주변에선 '심은하 컴백' 1인 침묵 시위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진화하는 1인 시위, 제자리걸음 하는 집시법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둘러싸고 집회가 이어졌던 '촛불 정국'에서는 '산책을 가장해 청와대 앞에서 합법적인 1인 시위하기 요령'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방법은 단순하다. '이명박 퇴진하라' 등 관련 구호가 적힌 스카프를 두르거나 피켓을 들고 혼자서 청와대 주변 길을 걷는 것이다. 네티즌들은 "차도로 간 것도 아니고,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니고 단독이니 시위대로 몰아 넣을 수도 없다"며 "단순한 산책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인 시위의 방법이 다양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여러 명이 특정 장소에 모여 교대로 1명씩 시위를 펼치는 '릴레이 시위'나 20m 이상 떨어진 장소는 동일 장소로 보지 않는다는 집시법의 틈새를 이용해 수십명이 일정 간격을 두고 시위를 펼치는 '인간띠 시위'도 벌어지고 있다. 변형된 형태의 1인 시위에 대해선 불법이냐 아니냐 논란이 일고 있긴 하다. 시위를 하는 사람이 한 사람뿐이기 때문에 집시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주장이지만, 다른 쪽에선 언제든 집단적 시위로 변질될 수 있고 결국은 동일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기획한 것은 현행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로 진화되는 1인 시위의 배경엔 1인 시위의 태생에서 보듯 규제 일변도인 집시법 규정이 자리잡고 있다. 홍 연구원은 "1인 시위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시위방식으로서는 제한적인 것"이라며 "외국 대사관의 경우는 제외됐지만 집시법에는 여전히 주요 공관에 대한 100m 접근 금지 규정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2003년 '국내 주재 외교기관 청사의 경계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 장소에서의 옥외집회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에 대해선 집회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 결과 외교기관 인근의 집회가 전면 허용된 것은 아니지만 '외교기관이나 숙소 등의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을 경우'라는 단서를 달고 집회 시위가 가능하게 됐다. 또 2001년 청와대 앞에서 국무회의 속기록 작성과 공개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인 참여연대 투명사회만들기 소속 최한수 간사를 경찰이 강제 연행한 것에 대해 2002년 법원은 국가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회의사당과 각급 법원, 헌재, 대통령 관저 등의 경우엔 100m 규정이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국회 앞의 시위를 막는 부분에 대해선 위헌 소송이 청구된 상태다. 이와 관련, 민주당 천정배 의원 등 22명은 지난 5월 집회 시위가 가능한 장소를 공관 50m로 축소하고, 1인 이내의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해 집시법 적용을 배제하는 한편 야간 옥외집회나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의 자유를 강화하는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천 의원 측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구체화해 법안에 담을 필요가 있다"며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허가제로 편법 운영됐던 집회·시위 금지 규정을 없애 헌법적 권리를 국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지선기자 j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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