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남성 성형수술 '꽃미남'을 꿈꾼다
ㆍ세우고 깎고 째고 채우고…얼굴에 칼을 대는 남자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사람들은 후보들의 공약보다 외모에 더 관심을 표하는 이들도 많았다. 73세의 이회창 후보, 67세의 이명박 후보 등은 그 연령은 물론 수년 전의 모습에 비해서도 너무 젊어보였기 때문이다. 측근에선 "눈밑에 늘어진 부분을 절개하는 수술을 받았다" "자가지방을 이식해 피부가 전반적으로 팽팽해졌다" "머리카락을 수천개 이식하고 보톡스도 맞았다고 하더라" 등의 이야기를 전했다. 물론 머리염색이나 긍정적 열정만으로도 피부의 탄력이나 자신감 있는 표정이 나타나긴 하지만 대통령 후보들의 '날이 갈수록 젊어보이는 외모'는 현대의학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의들의 분석이다.
남성 성형의 경우 과거엔 불의의 사고로 코뼈·턱뼈가 부러졌다거나 얼굴에 칼자국이 나는 등의 경우에만 어쩔 수 없이 받는 '교정 성형'이 고작이었고 최근까지도 연예인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쌍꺼풀이나 콧등을 날렵하게 보이는 수술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성형수술 한 사실은 마치 은밀한 일처럼 밝히는 것조차 꺼렸다. 하지만 요즘은 가수 환희 등 남자 연예인들이 확 달라진 얼굴로 방송에 출연해 "성형수술을 받았다"고 당당하게 털어놓고 중년남성들도 남성전문 성형외과에 부끄럼없이 드나든다. 심지어 부모의 환갑, 칠순 등의 선물로 효도 성형을 해드리는 것도 새로운 트렌드다. 이런 현상 덕분에 개원 성형외과의 경우 2002년까지만 해도 전체 성형수술 가운데 남성수술이 10% 정도였던 것이 2007년의 경우 병원마다 차이가 있으나 10~40%, 평균 25%로 급증했다.
남성도 예쁜 외모가 경쟁력
쾌남, 마초맨, 터프가이… 예전엔 이런 단어들로 표현되는 남성호르몬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남성들이 인기였다면 요즘은 남성들도 여성처럼 곱고 부드럽고 세련된 외모가 대세다. 꽃미남, 훈남, 완소남뿐만 아니라 메트로섹슈얼족, 그루밍족 등 여성과 남성의 경계에 선듯 깨끗하고 화사한 피부에 또렷한 이목구비, 부드러운 얼굴 윤곽선을 자랑하는 남성들에게 여성들이 열광한다. 단지 여성들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취업 등 자신의 생계나 삶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성형수술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주부 김경란씨(51·서울 강남 대치동)는 이번 여름방학에 대학 2년생 아들에게 눈과 코 성형수술을 시켰다.
"아들이 눈이 작으니까 뭘 볼 때면 자꾸 눈을 치켜 떠서 스무살인데 이마에 주름이 가더군요. 코도 매부리코인 것 같아 눈을 시원하게 트여주고 4콧대도 바로 잡는 수술을 시켰습니다. 요즘 20대는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 시대에 학점관리, 토플 성적도 중요하지만 면접에서나 실생활에서 좋은 인상이 필수인 것 같아 성형수술을 권했는데 처음엔 펄펄 뛰던 아들도 이젠 만족해요. 잘 생기게 만들어주질 못했으니 사후 관리라도 해줘야죠"
김씨는 500만원의 거금이 아깝지 않은 투자라고 했다. 실제로 미국의 경제학자 크리스티 엥게만과 마이클 오위양은 2005년 '외모가 보수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얼굴, 몸무게, 키 등이 소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 특히 잘 생긴 외모가 생산력 향상의 원동력이 된다는 분석이다. 특히 일반적 인식과 달리 오히려 여성보다 남성에게 외모 프리미엄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한다. 잘 생긴 남성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며 더 높은 연봉과 더 높은 지위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한 성형외과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형을 하는 목적이 여성들은 '자신감 회복을 위해서'(40%)가 가장 큰 이유였으나 남성들은 '외모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서'(34%)로 나타나 취업이나 결혼 등 현실적인 목적을 위해 성형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 포털 커리어가 구직자 13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남성 응답자의 19.0%가 외모로 인해 면접에서 낙방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면접에서 더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취업성형을 고려해 보았다는 남성 응답자도 58.8%나 됐고, 가장 성형받고 싶은 부위(복수응답)는 '치아교정'(86.3%) '피부'(82.5%) '코'(75.0%) 순이었다.
성형외과 전문의 이민구 원장은 "요즘 청년들은 여성들만큼 성형수술에 관심도 많고 인터넷 등에서 정보를 얻어 거의 전문가 수준의 성형수술 상식을 갖고 있다"면서 "남성의 성형상담 중 가장 많은 것은 역시 코이고 다음이 눈, 안면 윤곽, 여성형 유방 순"이라고 전한다. 가장 만족도가 높은 부분 역시 코. 너무 큰 코, 낮은 코, 휘어진 코, 매부리코 때문에 고민하던 남성들의 상담이 상대적으로 많고 수술 후 자신감이 더 커졌다며 결과에 대한 만족도 매우 높다고 한다.
성형수술의 발달과 더불어 주5일제의 확산도 남성성형 수술의 증가에 일조했다. 눈두덩 부분을 칼로 절개하는 것이 아니라 실로 매듭짓는 간단한 매몰쌍꺼풀 수술의 경우 금요일 하루만 휴가를 내면 목요일 저녁에 성형수술을 받은 후 월요일에 부담없이 출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급격히 늘어난 중년남성 성형붐
젊은 남성들보다 더 급속도로, 더 다양한 부위의 성형수술을 받는 이들이 중년남성들이다. 성형외과 전문의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남성 성형수술의 최고 공신자"라며 감사패라도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유난히 굵은 이마 주름 때문에 보톡스를 맞은 부작용으로 눈이 자꾸 감긴다며 상안검제거술을 받은 후 "나도 시원하게 눈뜨고 싶다"는 중년남성들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3년 전 남성전문 성형외과인 레알포맨을 개원한 김수신 원장은 "당시만해도 남성들만을 위한 미용성형외과가 될 리가 있냐며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쌍꺼풀부터 피부박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술과 서비스를 받는 중년남성들이 늘어 여성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떳떳하고 즐겁게 시술을 받고 간다"고 소개한다.
중년남성의 성형붐은 성형공화국인 우리나라만의 세태는 아니다. 최근 동안 열풍, 회춘기대와 더불어 전세계적으로 남성 성형은 물론 보톡스 시술도 늘어났다. 최근 영국 성형외과협회 조사에 따르면 보톡스주사를 맞는 남성들이 지난해에 비해 60% 가까이 증가했다. 영국의 일간지 '텔레그라프'는 "보톡스(botox)를 맞는 중년남성이 폭증하면서 소년(boy)이 되려는 남성이란 뜻의 보이톡스(boy tox)라는 별칭까지 생겼다"는 기사를 실었고 인디펜던트지도 "중년남성들은 주로 직장에서 젊은 남성들에게 밀려나지 않기 위해 주름시술을 받는데 전세계 남성 성형시장 규모가 16조원 정도일 것"이라고 전했다.
40대에도 여전히 꽃미남으로 불리는 브래드 피트도 보톡스의 도움으로 미모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미국의 가수 선발 프로그램인 '아메리칸 아이돌'의 괴팍한 심사위원인 사이먼 코월(49)도 "보톡스는 이제 치약처럼 평범한 것이어서 난 1년에 한번씩 꼭 시술받는다"고 자랑스럽게 밝혔다.
소년이 되고 싶은 중년, 그리고 더 이상 아저씨로 불리기 싫다는 노무(No more Uncle)족들이 보이톡스의 수준을 넘어 수술대 위에 오른다. 그들은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아 늘어져 심술궂어 보이는 눈밑 주름, 늘어진 턱선은 물론 검버섯 제거, 뱃살의 지방흡입술 등 다채로운 부분의 수술을 받는다.
얼굴만 아니라 머리카락도 모발이식술을 받는 등 회춘성형의 혜택을 누리는 이들이 많다. 젊고 밝은 인상이 중요한 영업 사원, 학원 강사 등은 직업상 필요에 의해서, 또 이혼이나 사별 후 재혼시장에 나서려는 이들 역시 성형수술을 받는다.
55세의 사업가 정형근씨(경기도 분당)는 최근 검버섯 제거술, 눈밑 주름제거수술 등을 받았다. 3년전 암으로 부인을 잃고 두 자녀도 최근에 유학, 결혼 등으로 떠나보내 혼자 사는 정씨에게 여동생이 성형수술을 한 후 새인생을 찾을 것을 강력히 권했다고 한다. 영감 같은 얼굴로는 사업이나 재혼시장에서 환영을 못받는다는 것이 여동생의 주장이었다.
"여동생이 이제 100세 건강시대인데 왜 벌써부터 얼굴에 버섯농장 만들어 검버섯 재배를 하냐며 요즘은 칠순 노인들도 성형수술을 하는데 받아보라고 권하더군요. 처음엔 그4냥 웃어 넘겼는데 나 역시 새로 결혼해 외롭지 않고 안정된 삶을 찾고 싶어서 지난 봄에 성형수술을 받았습니다. 얼굴이 젊어지니 마음도 젊어지는 것 같고 다른 일에도 활력을 찾았어요. 물론 주책이라는 비난도 받고 거울을 보고 낯설어 깜짝 놀라긴 하지만 우중충한 노후를 보내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합니다."
정씨처럼 모든 이들이 성형수술로 몸과 마음의 젊음을 찾는 것은 아니다. 수술도 인간의 일이라 부작용이 나타나 눈이 안 감겨지거나 피부가 곪는 등의 후유증도 심하고 성공할 경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다른 부분을 수술로 요구하다 성형중독자가 되기도 한다. 또 본인들은 젊음을 찾아 행복하지만 여전히 '성형수술을 한 남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도 만만치 않다. 홍보대행사를 하는 문화마케팅 전문가 박인숙씨는 "여성이건 남성이건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여유로움과 부드러운 표정이 더 매력적"이라며 "수술 흔적이 역력하고 너무 젊게만 보이려는 느끼한 중년남성들이 안쓰럽게 여겨진다"고 했다.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 맞춤인재 구인구직 '9988 경력채용 한마당' -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윤석열 “몇 시간 사건이 내란? 법리에 안 맞아”···논리 되풀이
- 장하준 “한국, 트럼프 비위 맞추기 그만둬야…미국에 매달리면 봉변당할 것”
- 경찰, 장제원 사건 수사결과 발표 안 한다…“고소인엔 규정 따라 통지”
- 공수처 인사위원, 한덕수 직무유기 고소···“검사 임명 안 해 존립 흔들어”
- 교육격차 해소한다던 ‘서울런’…“축! 서울대 19명” 황당 현수막
- [단독]가세연의 ‘쯔양 협박’에 ‘불송치’ 결정한 경찰···검찰은 보완수사 요구
- 박나래 자택 절도 용의자 체포, 경찰 “모르고 범행한 듯”···소속사 “외부인”
- [단독]영화 ‘기생충’의 그곳, 14㎡가 만들어낸 재개발의 ‘기적’
- ‘팔레스타인 승인 추진’ 마크롱에 “엿 먹어”…네타냐후 아들, 또 막말
- [단독]‘명태균식 업체’ 퇴출될까…선관위, 여론조사기관 등급제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