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회도서관, 고려인 80여명 수기집 디지털화 보관

2007. 2. 8.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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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정권 초창기 참여 소련파 거물들 포함

옛 한국 서적 3천책 해제 작업 지원

(워싱턴=연합뉴스) 윤동영 특파원 = 미 의회도서관이 옛 소련 고려인의 강제이주 70주년을 맞아 북한 정권 수립에 부수상, 내무상 등 다양한 직책으로 참여했던 고려인들의 육필 수기를 마이크로필름에 담아 보관하고 이를 전 세계에서 인터넷을 통해 열람할 수 있도록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의회도서관은 또 도서관 예산으로 오는 12월 옛 전적(典籍) 전문가인 전북대 김병기 중어중문학과 교수를 초청, 도서관에 소장된 옛 한국 전적 451종 2천943책에 대한 해제 작업도 한다.

한국 정부는 미 의회도서관에 소장된 한국 자료 발굴을 위한 자금 지원을 도서관측에 제안해 도서관측이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학봉 전 북한 정치사관학교장이 책으로 출판하기 위해 수집, '피와 눈물로써 씨여진 우리들의 력사'라고 제목을 붙인 이 수기집은 장씨를 포함해 허가이 전 부수상, 유성철 전 북한군 총참모부 작전국장 겸 부총참모장, 허가이의 장인 최표덕 전 북한군 딴크(탱크)장갑차 사령관, 김찬 전 중앙은행 총재, 리상조 전 주소대사 등 81명의 본인 수기나 유족들이 쓴 간략한 일대기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 81명은 대부분 소련 출신의 고학력자들로 광복직 후 북한 정권이나 노동당, 학교, 언론사 등에 다양하게 참여했다가 1950년대 중반 김일성의 권력 공고화 과정에서 숙청당하거나 소련으로 돌아간 사람들이어서 당시 북한 사회 전반, 그 중에서도 김일성의 권력 독점 과정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장학봉씨는 A4 복사지 950쪽에 이르는 수기집 서문에서 1994년말 당시 우즈베키스탄 주재 서건이 대사의 권유로 수기들을 수집하게 됐다고 밝혔으나, 수집이 끝난 후에도 한국에서 출판사가 나서지 않아 지인의 주선을 통해 2004년 미 의회도서관에 기부하게 됐다고 이 도서관의 소냐 리(한국명 이성의) 한국과 선임사서는 7일 설명했다.

소냐 리씨는 "이 수기집을 의회도서관이 디지털화 한 것은 이례적인 것"이라며 "관장이 러시아 전문가인 덕분에 김일성 정권 초기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수기여서 보존이 필요하다는 건의를 받아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장학봉씨는 수기에서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때 북한군의 인천해안방어여단 정치부장으로서 "5일간 함포, 항공사격에 의해 완전한 싸하라 사막처럼 뻔뻔한 벌판이 되여 버리고, 우리 포대대도 그 흙밑에 전투원들과 함게 영원히 매장되여버리고" 만 광경을 "뒷산에 위치한 전투지휘소에서...내려다만" 본 경험을 회고하기도 했다.

박헌영을 직접 처형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김일성의 권력 강화를 충실히 수행했던 방학세 전 내무상의 경우 누이 어리나가 4쪽짜리 일대기에서 "김일성 심복자로써...사실 자기의 친구인 허가이 암살 사건, 리익선의 생매장 사건, 박헌영이나 리승엽의 허위날조 사형 사건 등을 잘 알았으나 어찌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변호하고 있다.

허가이의 딸 허리라는 아버지가 김일성의 숙청 대상이 되자 자살한 게 아니라 암살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장학봉씨도 당시 허가이가 등뒤에서 총을 맞아 암살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북한의 6.25 남침 작전 계획 수립에 작전국장으로 참여했던 유성철씨는 일제 말기 소련군이 만든 '제88특별저격여단'에서 김일성과 함께 활동했던 시기를 회상하면서 1937년 보천보 파출소를 습격한 유격대는 '진짜' 김일성이 지휘했고 이 진짜 김일성은 파출소 습격 후 추격을 받다 조우한 일본군과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말했다.

1991년 카자흐스탄의 고려일보에 싣기 위해 쓴 이 수기에서 유성철씨는 "나의 회상기 일편이 한국 신문들에 발표한 바 있는데 그 누구의 잘못으로 전부 사실이 왜곡되고 정확치 않게 이야기됐기 때문에 <<고려일보>>지를 통하여 이상 모든 것을 시정"하기 위해 쓴다고 밝혔다.

유성철씨는 인천상륙작전 후 북한군이 패주하면서 당시 중공의 지원을 얻기 위한 방중 대표단의 일원으로 마오쩌뚱(毛澤東)을 면담했을 때 마오가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한 다리를 미군이라고 가장하고 다른 다리를 국방군이라고 하자"라며 "한다리를 들고 다른 다리로 뚝뚝 뛰면서 (전술문제를) 설명"한 장면을 인상적인 것으로 기술했다.

미의회도서관내 한국 전적 해제 사업과 관련, 소냐 리씨는 10년전 한국서지학회 전문가가 책 이름과 외양을 기록한 목록만 작성한 후 지금까지 방치돼 왔다며 책 내용에 대한 해제가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고서적과 고지도 등이 너무 헐어 보존 작업도 시급하지만, 도서관측은 외국 정부의 자금을 받기를 꺼리고 민간자금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y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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