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모토지진 6개월> "이웃집 폭삭, 무서워서 집에도 못가"
"새로운 인간관계 어렵다"…잃어버린 일상, 건강에도 악영향
(마시키마치<일본 구마모토>=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겁이 나서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지난 4월 발생한 일본 구마모토(熊本) 연쇄 지진으로 피난생활을 하다 수개월 전 가설 주택으로 거처를 옮긴 도야마(82·여) 씨는 지난 10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느냐는"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의 집은 지진 피해가 가장 컸던 마시키마치(益城町)에 있었던 탓에 직격탄을 맞았다.
지붕에서 물이 새 응급조치를 하기는 했지만, 붕괴 우려가 있어 결국에는 집을 헐기로 했다.
그러나 이 여성의 집을 철거하는 작업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길가에 있는 집을 먼저 헐기 때문이다. 비교적 안쪽에 있는 그의 집 철거 작업은 언제 시작될지 막막하다.
도야마 씨는 가설 주택 거주 기간인 2년 이내에 집을 새로 짓는 일이 마무리될지 회의적이라고 했다.
그는 가설 주택이 "여름에 덥기는 했지만, 방음이 비교적 잘되는 편이고 공과금만 내면 되므로 좋다. 하지만 좁아서 싼 호텔 같다"고 말했다.
당장 지내기에 큰 문제는 없지만, 그간 모아놓은 적금을 털어서 새집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도야마 씨의 가장 큰 근심이다.
마시키마치 주민들은 구마모토지진이 극히 예상 밖의 사건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거동이 불편한 부인과 자택에서 생활하는 70대 남성은 목욕 준비를 하던 중에 지진을 겪었다.
그는 "막 옷을 벗던 중이라서 당황스러웠다"면서도 "나보다는 아내가 걱정됐다. 하지만 이미 어두워졌기 때문에 피난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두려움 속에 밤을 보낸 경험을 이야기했다.
마시키마치(益城町) 체육관에서 여전히 피난생활을 하는 75세 여성.
지난 4월 14일 첫 지진 발생 후 차에서 생활했다는 이 여성은 이틀 뒤 강력한 지진이 다시 발생했을 때 "차가 심하게 요동쳤고 펑크까지 났다"고 회고했다.
이 여성의 남편(78)은 "이웃집은 집이 폭삭 무너졌다. 다행히 모두 집 밖에서 생활하고 있어서 다치거나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고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이달 말에 피난소가 폐쇄되면 가설 주택이 아닌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여성은 피난소 생활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 때문에 어렵다"며 지진으로 다소 손상된 집을 수리해서 생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남편은 "주로 도시락만 먹다 보니 고기, 튀김 등이 많다. 채소가 부족해 살도 찌고 혈압도 올랐다"며 피난소 생활이 주는 부담을 토로했다.
지진은 아이들에게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주고 있었다.
가설 주택에서 만난 한 초등학교 3학년생은 가설 주택이 수영장과 가까워서 좋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지만 "우리 집이 반파(절반 파손)됐다"는 다른 초등학교 3학년 생의 이야기에 "우리 집에는 불까지 났다"고 말하며 이내 표정이 심각해졌다.
곁에 있던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는 "이제 태풍이 올까 봐 무섭다"고 얘기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일상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조금씩 이어지고 있었다.
가설 주택단지에는 최근에 슈퍼마켓이 생겼고 지진 피해 주민이 중심이 돼 운영하는 미용실, 접골원, 음식점 등 생활에 기반 시설이 문을 열기도 했다.
다닥다닥 붙은 집 앞 공간에 화분을 놓고 가설 주택에서 새로 만난 이들과 차를 마시거나 함께 장을 보며 '이웃사촌'을 새로 만드는 주부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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