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에 중단한 세계 최장기 단식투쟁, 첫 음식은 꿀 한 방울

김의철 2016. 8. 1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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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16년 전인 2000년 11월 2일, 인도의 동북부 마니푸르의 말롬이라는 마을에서 인도 보안군이 군중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해 10명이 숨졌다. 보안군은 무장반군과 교전을 벌인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사망자들은 모두 평범한 민간인들이었다. 오인에 의한 사실상의 학살이었던 셈이다. 당시 마니푸르는 내전을 이유로 투입된 군인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민간인들을 살해하고 부녀자들에 대한 강간 사건이 번번했던 곳이다.

이른바 '말롬 대학살'로 불린 현장을 직접 목격한 이롬 샤밀라는 격분했다. 당시 기자였던 샤밀라는 학살의 배후에 '군사특별권한법'(Armed Forces Special Powers Act)이 있다고 믿었다. 이 법 때문에 보안군이 자의적이고 월권적인 총격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샤밀라는 사건 직후 '군사특별권한법'이 철폐될 때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머리를 빗지도, 거울을 보지도 않겠다고 선언하며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6년 동안 단식 투쟁을 벌여온 인도 여성인권 운동가 이롬 샤밀라가 9일(현지시각) 마침내 '단식투쟁'을 끝냈다. 세계 최장기 단식 투쟁으로 지난 2000년 11월 2일 시작된 이후 만 15년 9개월 7일(5,760일) 만이다. 단식 투쟁을 시작할 때 28살이었던 이롬 샤밀라는 이제 44살의 중년이 되었다.

16년 만에 단식을 끝낸 인도 여성 운동가 이롬 샤밀라가 단식을 중단 선언하는 행사에서 손으로 꿀을 찍어 먹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사진=AP)


이롬 샤밀라는 9일(현지시각) 마니푸르주 임팔에서 있었던 단식을 중단하는 행사에서 손으로 꿀 한 방울을 찍어 입에 댔다. 이롬 샤밀라는 "나는 이 순간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짤막한 소감을 밝혔다.

샤밀라는 지난달 26일 “단식으로 무언가 바꿀 수 없어 단식 중단 결정을 내렸다”면서 8월 9일에 단식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샤밀라는 이어 "여기서 투쟁을 멈추진 않는다. 내년 상반기에 열리는 마니푸르 주지역 입법부에 입후보해 투쟁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샤밀라는 무소속으로 출마할 계획이지만 여러 정당이 샤밀라의 영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롬 샤밀라가 9일(현지시각) 복역 중이던 교도소에서 석방돼 꿀 병을 들고 있다. (사진=AP)


당시 기자이자 시인이었던 샤밀라는 단식 돌입 3일 만에 체포됐다. 혐의는 '자살기도죄'였다. 인도 형법을 보면 자살을 기도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인도 정부는 단식하는 샤밀라의 코에 영양공급을 위한 튜브를 강제로 채웠다. 샤밀라는 이후 수십 차례 체포, 석방, 강제 입원 조치를 당했다.장기간의 단식 투쟁에도 샤밀라가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샤밀라는 단식기간 마음이 약해질까 두려워 2012년 단 한 차례를 빼고는 어머니와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샤밀라는 '마니푸르의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한, 영양 튜브를 코에 꽂은 샤밀라의 모습은 군사특별권한법의 부당함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단식 당시의 샤밀라의 모습.


샤밀라는 2007년 5·18기념재단이 주는 광주 인권상을 받은 데 이어 2009년 제1회 마일라마 인권상, 이듬해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평화상을 받았다. 2013년 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샤밀라가 "자신의 신념을 평화적으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구금돼 있다."며 그녀를 양심수로 선포했다.

2007년 광주 5.18 재단에서 준 광주 인권상 시상식에는 샤밀라 대신 오빠(오른쪽)가 대신 참석했다.


무소불위의 '군사특별권한법'

인도 국내외에서 논란이 되는 '군사특별권한법'(Armed Forces Special Powers Act)은 1958년 만들어졌다. 이 법에서는 군인 또는 준 군사 요원들에게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합리적 의심'이 있을 때 용의자를 영장 없이 수색, 체포할 수 있으며 나아가 총기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즉 '합리적 의심'이라는 자의적 기준으로 행해지는 군인의 어떤 행위도 처벌할 수 없어 인권 침해 논란이 계속돼왔다.

그런데 이 법은 특정 주에만 적용된다. 마니푸르 주를 포함한 동북부 7개 주가 그 대상이다. 이곳 사람들은 인종적으로 몽골족 계열이어서 외모가 본토 인도인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인도 전체로는 힌두교도가 대다수지만 이 지역에서는 기독교도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언어와 문화도 다르다. 본래 독자적 왕국을 이루고 살았지만,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인도로 편입됐다.

이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인도 독립 이후 분리주의 무장 항쟁이 펼쳐졌다. 인도 정부에 대항하는 무장 투쟁과 함께 현지 무장 단체 간의 다툼도 끊이지 않았다. 이런 무장 투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군사특별권한법이다. 문제는 이 법이 인도 헌법과 법률의 정신을 훨씬 뛰어넘는 월권적 권한을 군에게 부여한 것이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얼러트가 2012년 9월 내놓은 조사보고서로는 1979년부터 이 시기까지 인도 정부군이 저지른 살해 건수는 1,528건에 이른다.

폭로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밝힌 2006년 미국 총영사 보고서에는 정부군이 이 지역 주민들을 국민이라기보다 식민지인으로 다루고 있다고 평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2014년 인도 법원은 사건 발생 14년 만에 '말롬 대학살' 희생자 가족에게 각각 50만 루피(약 840만 원)를 보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난망한 상황이다. 정작 사태의 원인이 된 군사특별권한법이 처벌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샤밀라의 단식 투쟁과 국제 인권단체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인도 정부는 군사특별권한법을 폐지할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기나긴 단식 투쟁을 중단하고 군사특별권한법 폐지를 위한 또 다른 투쟁을 시작한 샤밀라의 꿈은 언제 이루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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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철기자 ( kimec@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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