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나는 흑인 노예가 지은 백악관의 안주인"

김우식 기자 2016. 8. 3. 10:1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부부의 연설을 한 장소에서 직접들은 청중들은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현직 대통령 부부가 한 이벤트에 나란히 등장해 찬조연설을 하는 것은 미국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입니다. 그것도 당대 연설의 달인이라고 일컬어지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트럼프의 아내 멜라니라아가 연설을 표절까지 해 더욱 유명해진 백악관 안주인 미셸 오바마의 연설이었으니 두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미셸 오바마는 2008년부터 세 번 연속 민주당 전당대회 연단에 올랐습니다. 가장 최근인 4년 전 남편이 재선에 도전할 때 연설보다 이번 힐러리 찬조연설은 좀 더 톤이 강했습니다. 길이는 4년전 25분에서 이번엔 14분으로 줄었지만, 또 하나의 명연설로 기록될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4년 전 그녀는 경쟁자인 공화당 밋 롬니 후보와 공화당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왜 남편이 더 흘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는지, 왜 롬니보다 더 중산층과 서민층을 잘 도울 수 있는 사람인지를 감동적으로 설명했을 뿐입니다. 자신과 남편 모두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은 아니지만 돈보다 중요한 인내와 성실, 정직을 배웠다면서 남편은 귀한 가치로 뭉친 사람이라고 칭찬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더 적극적으로 상대후보인 트럼프에게 각을 세웠습니다.

2012년 민주당 전당대회 찬조연설

미셸은 오바마의 출생을 문제 삼았던 트럼프를 겨냥해 “딸들에게 아버지의 시민권이나 종교를 의심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무시하도록 하고, TV에 나온 공인에게서 듣는 증오에 찬 말들이 이 나라의 진정한 정신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트럼프가 내건 대선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도 대놓고 비난했습니다. 이어 “이 나라가 위대하지 않다고, 그래서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누구도 말하지 못하게 하자. 지금도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다 라고 역설했습니다. 

특히 “대통령이 마주하게 되는 이슈는 흑백이 아니며 140글자로 요약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며, “민감하거나 남을 혹평하려는 성향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안정적이고 신중하며 견문이 있어야 한다”며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왜 트럼프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되는지를 강조했습니다.

연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이번에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오는 11월에 우리가 투표소에 가서 결정하는 것은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 혹은 왼쪽이냐 오른쪽이냐가 아니라, 누가 앞으로 4년이나 8년간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형성할 권력을 갖게 될지 결정하는 것"이라면서, 힐러리는 "압력에 굴하지 않는 사람이고, 내 딸들이나 다른 어린이들을 위한 대통령감"이라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힐러리를 내 친구라고도 표현했습니다. 8년 전 남편과 사활을 건 대결을 벌인 경쟁자였던 그녀를 친구라고 표현하며 왜 자기가 그녀를 좋아하게 됐는지 설명했습니다. “8년 전 힐러리가 경선에서 패했을 때 그녀는 화를 내거나 환멸에 빠지지 않았고, 정말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 자신의 실망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치켜세웠습니다

힐러리의 대선슬로건 ‘함께 하면 더 강하다’(stronger together)와 힐러리 지지자들이 쓰는 ‘나는 그녀의 편’(I'm with her)이란 단어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인 언급보다 그녀의 연설을 명연설로 칭찬하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습니다. 연설에서 그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매일 아침 나는 노예들이 지은 집에서 일어나 내 딸들, 아름답고 지적인 젊은 흑인 여성 두 명이 백악관 잔디밭에서 개들과 노는 걸 본다”고 언급했습니다. 노예생활을 했던 그 흑인이 세월이 흘러 미국의 주인이 돼 있고, 백악관이란 하얀 집의 뜰에서 흑인들이 뛰놀며 살고 있다는 말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미국의 달라진 모습과 미국의 진정한 가치인 다양성, 또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는 문장이었습니다.

4년 전에도 그녀는 남편이 강조하는 의료개혁과 교육 등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버락이 주장하는 이슈는 정치적인 게 아니라 개인적인 것들입니다. 가족들이 항상 싸워 온 문제이고 여러분의 자녀와 손자들에게 이런 문제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어디서 태어났고, 어떻게 생겼고, 누구를 좋아하든지, 아메리칸 드림의 기회는 모두에게 동등해야 하며, 오바마가 바로 산 증인이라”고 역설했습니다.

미셸이 찬조연설로 나섰던 첫날 민주당 전당대회장 분위기는 험악했습니다. 강성 버니 샌더스 지지자들이 붙볕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당대회장 밖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대회장 안에서는 힐러리 이름이 나올때마다 한동안 야유가 터져나와 찬조연설에 차질을 빚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셸의 연설을 들은 양쪽 지지자들은 너나할 것없이 그녀를 연호하고 그녀의 이름이 적힌 손팻말을 흔들고 환호했습니다.

미국 언론들도 ‘첫날 최고 승자였다’, ’완벽한 홈런’, ‘마음을 움직이는 연설’이라며 앞다퉈 극찬했습니다. 남편 오바마도 "한 대단한 여성이 믿을 수 없는 연설을 했다"며, "이보다 더 자랑스러울 수 있을까. 이런 여성을 영부인으로 두고 있는 미국은 축복받았다"라며 칭찬의 글을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찬조연설 나선 미셸 오바마와 멜라니아 트럼프

조용한 내조자이지만 이렇게 할 말을 하는, 그것도 훌륭하게 하는 미셸은 역대 영부인 가운데서도 인기가 가장 높은 사람 중 하나입니다.

힐러리는 여성차별을 상징하는 ‘유리천장’을 깬 첫 미국의 주요정당 여성대선후보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힐러리가 아니라 미셸이었다면 유리천장보다 훨씬 두꺼운 장벽을 깬 인물이 됐을 것이고, 또 지금의 힐러리보다 훨씬 수월하게 대선을 치르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됩니다.

부부가 연달아 대통령을 하는 것은 독재국가가 아닌한 불가능하지만, 앞으로 세월이 지나 혹여나 미셸이 첫 여성 흑인 대통령 후보로 나온다면 미국 역사에 더 큰 획을 긋는 사건이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김우식 기자kwsik@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