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호텔 영수증, 받고 나니 웃음이 터졌다
[오마이뉴스 글:신은미, 편집: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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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일행은 마식령 호텔에 닿았다. |
ⓒ 신은미 |
원산을 떠나 마식령으로 오는 내내 2014년 겨울 내가 한국에서 당했던 '종북몰이'의 기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해 겨울 남편과 나는 마식령 스키장에서 겨울 휴가를 보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조카의 결혼식과 시조카 손주의 돌잔치에 참석하러 한국에 가는 김에 북한에 가 수양딸들도 만나고 겨울 휴가도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한국에 도착해 강연에 응했다가 그만 마녀사냥식 '종북몰이'와 검찰·경찰의 조사로 인해 2개월 동안이나 시달리다가 미국에 돌아오고 말았다. 그것도 강제추방의 형식으로 말이다. 이런 연유로 '마식령'과 '종북몰이'는 내 기억 속에 항상 동반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가 돼버렸다.
[살짝 보기] 마식령 호텔, 내부는 이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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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뉴판을 펼쳐들고...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다. |
ⓒ 신은미 |
마식령 호텔의 조선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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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나는 겨울 스키 시즌 때 꼭 다시 오자고 굳게 다짐한다. 이곳 마식령에서 스키를 즐기며 며칠을, 그리고 명사십리가 있는 갈마반도에서 겨울바다를 바라보며 며칠을 즐길 상상을 하니 내 마음은 곧바로 남녘 동포들에게로 다가간다.
남한 정부가 5.24 조치를 풀고 원산관광을 허락한다면 이곳은 모름지기 남한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것이다. 원산의 송도원, 갈마반도의 명사십리, 마식령, 울림폭포 그리고 금강산을 잇는 이곳 동해안은 가히 세계적인 관광지로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동포들이 사는 우리나라이기 때문이다.
[감상] 마식령의 아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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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식령호텔 아침식사 테이블 세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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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식사 디저트로 나온 쑥인절미를 맛봤다. |
ⓒ 신은미 |
남편도 웨이트리스에게 온갖 질문을 한다. 나이는, 형제는, 부모님은, 학교는, 전공은, 고향은, 남자친구는, 장래의 꿈은…. 장난기를 갖고 지나가는 말이 아닌, 사뭇 진지하게 묻는다. 우리 모두 그녀의 미래를 함께 그려본다.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자 웨이트리스가 조용한 목소리로 인사한다.
"다음에는 꼭 겨울에 오십시요. 좀 사람들이 많아 번잡하긴 해도 역시 마식령에서는 스키를 타야 제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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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식사를 챙겨준 웨이트리스들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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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식령호텔 로비의 프론트 데스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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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부부가 마식령호텔에서 묵은 숙박비용 영수증. 금액 등을 손글씨로 적어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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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식령 스키장 안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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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식령스키장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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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일행은 리프트를 타고 마식령 스키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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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봉에서 바라본 강원도의 밀림. |
ⓒ 신은미 |
대화봉 휴게소에서 내려다 보니 강원도의 광활한 밀림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 웅장함에 숙연해 질 정도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야 말로 북한이 갖고 있는 보물 중의 보물일 게다. 산업화되지 않은 북한에는 이러한 곳들이 전국에 산재해 있다. 그리고 청정 공기, 깨끗한 강과 바다가 있다. 마을 주변의 민둥산들만 나무로 채워진다면 북한은 세상 그 어느 나라보다도 오염되지 않은 멋진, 자연환경을 갖춘 나라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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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식령 스키장의 야외식당에서. |
ⓒ 신은미 |
"혜영 선생, 나는 이 강냉이국수만 있으면 밥이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이 국수가 정말 좋아요. 아마 옥수수로 국수를 만드는 나라는 여기밖에 없을 거예요."
"그런가요? 다른 나라엔 없습니까?"
"북에서 처음 먹어봤습니다."
"조국(북한)에는 아무래도 산간 지방이 많다나니까 논이 부족해 쌀을 충분히 생산해 내질 못한다 말입니다. 기래서 옥수수나 감자로 국수도 만들고 합니다."
"아, 참,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북에 오면 모든 식당에서 흰쌀밥만 주는데 제발 흰쌀밥만 먹지 말고 잡곡을 섞어 드세요. 그것이 건강에도 좋고."
"우리 인민들은 꼭 흰쌀밥을 먹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예전에 남쪽에서는 쌀이 모자라 잡곡을 섞어 먹어야 했을 때가 있었어요. 모든 식당에서는 잡곡을 섞어 밥을 짓도록 정부에서 명령을 내렸고, 학생들은 점심시간 때 도시락 뚜껑을 열어놓고 잡곡을 섞었는지 선생님으로부터 검열받아야 했어요. 여기서도 국가가 그런 규제를 했으면 쌀 부족 문제도 해결하고 좋을 텐데…."
"네? 벤또 검사를 했다구요?"
"그럼요. 지금은 쌀 생산량이 늘고 반대로 소비는 줄어 쌀이 남아돌지만 내가 어렸을 땐 항상 쌀 부족에 시달려 마침내는 정부가 식생활에 개입하게 된 거지요."
"아무리 기래도 기렇지 어떻게 국가가 인민들 밥까지 간섭을 합니까? 배급쌀 갖고 쌀밥을 먹건 옥수수 밥을 먹건 인민들 마음이지 국가가 기걸 왜 간섭을 한단 말인지…. 도저히 리해가 안됩니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남편이 문득 할 말이 떠올랐는지 끼어든다. 리용호 운전기사에게 말을 건넨다.
"이보게, 리 선생. 북에 오니 외국 담배들을 그렇게 많이 피우는데 이곳 담배도 좋은데 왜들 그렇게 외국 담배를 피워대? 남쪽에서는 외국 담배를 양담배라고 부르는데 예전에 양담배 피우다 걸리면 혼쭐 정도가 아니었어. 공무원 같은 경우에는 직장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구."
"공무원이 외국 담배를 피웠다고 직장에서 쫓겨났다구요?"
"응, 예전엔 그랬었지."
"아니, 인민들이 무슨 담배를 피우든 국가가 왜 간섭을 합니까? 도저히 리해가 안됩니다."
'국가가 명령을 내리면 따라야 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야 물론 당연히 그렇지만 국가는 그런 말도 안되는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며 김혜영 선생이나 리용호 운전기사나 "도저히 리해가 안됩니다"라는 똑같은 대답만 반복한다. 남편과 나는 '국가가 그럴 수도 있다'고 열심히 설명을 했지만 이해를 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강냉이국수를 맛있게 먹고 평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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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에 오르기만 하면 잠들곤 했던 박영길 동생(2013년 8월 황해도 해주 가는 길에서 촬영). |
ⓒ 신은미 |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남편이 영길 동생을 깨워 "아니, 우리 '감시' 안 하고 잠만 자면 어떻게 해? 평양에 가면 다 보고할 거야"라면서 농담하면서 면박을 주기도 했다. 뒷주머니에 머리빗을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을 때면 숱도 별로 없는 머리부터 빗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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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부터 박영길 동생, 리정 선생. 둘은 심각한 표정으로 내가 남한에서 겪은 일들을 전해들었다. |
ⓒ 신은미 |
"누나,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디? 얼굴도 기대로네. 남조선에서 강연 도중 폭탄 맞았단 소식 듣고 여기서 얼마나 놀랬는디 몰라. 기래 무섭디 않았어?"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무서울 겨를도 없었어."
"신문에 보니까 폭탄을 던진 놈이 학생이라는데 어케 기럴 수가 있어? 누나 둘째딸 설향이가 얼마나 울었는디 몰라. '폭탄 맞을 사람이 따로 있디' 하면서 말야. 기러구 누나 남조선에 5년간 못간다며? 오마니도 계신데…."
"응. 그래서 지금 재판 중이야. 승소하면 갈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마."
"꼭 이기라, 누나."
옆에서 리정 선생도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는다. 화제를 돌리려고 리정 선생에게 말을 붙였다.
"요즘 관광 사업은 어떠세요?"
"매년 늘고 있습니다. 목표를 '외국인 관광객 100만 시대'로 잡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맞춰 안내원들도 많이 늘리고 있구요."
술잔이 몇 배 돌자 영길 동생이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워 한다. 남편이 영길 동생에게 묻는다.
"요즘도 퇴근하고 집에 가면 맥주 마시면서 딸내미 노래 시키나?"
"노래요? 이제 좀 컸다구 안 불러요. 노래가 뭡니까, 내가 불러줘야 할 판이야요."
영길 동생의 딸 자랑이, 리정 선생의 아내 자랑이 한동안 이어진다. 택시에 다섯 사람이 꼭 끼워 탔다. 한 사람씩 집 앞에 내려주고 호텔로 돌아온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분단이라는 허상이 이들을 '뿔난 괴물'로 만들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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