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성인에 매달 300만원 '꿈' 이뤄질까

이윤정 기자 2016. 6. 1.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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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기본소득 지급안’ 놓고 5일 국민투표 실시

“도둑을 교수형에 처하는 대신 모두에게 약간의 생계수단을 주는 게 낫습니다. 빈민을 도둑으로 만들고 나중엔 시체가 되게 하는 무시무시한 궁핍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하려면 말이죠.”

1516년 토머스 모어가 쓴 책 <유토피아>에는 포르투갈 여행자 라파엘 논센소가 캔터베리 대주교와 모든 국민을 위한 ‘보편적인 기본소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16세기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 속에 등장했던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500년 뒤 실현 가능성을 점치게 됐다.

오는 5일(현지시간) 스위스는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성인 1인당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을 주는 방안을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이번 국민투표는 2013년 10월 스위스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BIEN)가 13만명의 서명을 받아 연방의회에 제출해 이뤄지게 됐다. 가결되면 스위스는 세계 최초로 조건 없이 모든 국민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나라가 된다. 그러나 가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지난 4월 티메디아가 2만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찬성하는 사람은 40%에 그쳤다. 국회도 기본소득에 반대한다. 부가가치세 등 세금을 올려야 하고, 노동 의욕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이 정말 사람들의 노동 의욕을 떨어뜨릴까. BIEN 측은 기본소득과 노동 의지는 큰 상관이 없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지난 1월 스위스 국민 1000여명을 대상으로 테모스코프가 조사한 자료를 보면 ‘기본소득을 받으면 일을 그만둘 것’이라고 답한 비율은 2%에 지나지 않았다. 절반이 넘는 이들은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가족과 더 시간을 보내고 다양한 교육을 받고 싶다고 답했다.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이 제도가 노동시간을 줄이고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말한다.

재정부담도 예상보다 적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정부는 당초 기본소득에 필요한 재원이 1540억스위스프랑(약 186조3122억원)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지난 3월 사회보장부는 기본소득 도입에 따른 재정부담은 250억스위스프랑(약 30조2455억원)이라고 정정했다.

스위스 기본소득안은 통과 가능성과 상관없이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독일 여론조사회사 달리아리서치가 4월 유럽 28개국에서 1만명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니 ‘찬성’이 64%였다. 기본소득을 받으면 일을 그만두겠다는 사람은 4%에 지나지 않았다.

현대의 기본소득 개념은 1935년 옥스퍼드대학 석좌교수를 지낸 경제학자 조지 콜이 소개한 ‘사회배당’ 개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영국 노동당에서 논의가 이뤄졌지만 조건이 붙은 ‘배당’ 개념이 강했다. 20세기 중반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등도 비슷한 아이디어를 언급했다. 1978년 덴마크 학자들이 내놓은 책 <중심부로부터의 반란>은 아무 조건 없는 ‘시민임금’을 제안해 베스트셀러가 됐다. 1970년대 미국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기본소득법을 입안했으나 무산됐다. 1980년대 영국과 독일에서도 학자들이 활발히 아이디어를 내놨으나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986년 BIEN이 결성되면서 유럽 내 네트워크가 생겼고, 활동이 활발해졌다. 산업혁명 때 만든 복지제도가 한계에 부딪히자 유럽국들은 앞다퉈 기본소득을 검토하고 있다.

배당금 형식으로 돈을 지급한 사례는 있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석유 수입을 기금에 넣고 1982년부터 주민에게 수익을 나눠줬다. 1970년대 캐나다 마니토바주도 4인 가구 기준으로 3300달러의 기본소득을 주는 실험을 했다. 이 돈을 받은 사람 중 일을 그만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무리하게 일하지 않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줄자 병원을 찾는 사람 비율은 8.5% 줄었다.

기본소득이 21세기 노동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가 될지 모른다는 관측도 있다. 지난 3월 뉴욕타임스는 “향후 수십년 내 일자리를 로봇이 대체하게 된다면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해고 재앙을 막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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