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천문학적인 폐로 비용..여전한 '방사능 공포'

하준수 2016. 5. 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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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전 사고 30주년…체르노빌은 지금…?

체르노빌 사건 당시 모습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꼭 30년이 됐다. 1986년 4월 26일, 원전 직원이 전력 통제 시스템을 시험하다 원자로가 폭발하는 바람에 방사성 물질 10톤 이상이 대기 중으로 방출됐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보다 400배나 더 큰 '핵 오염' 수준이었다.

이 사고로, 10만 명에서 100만 명가량이 숨지고, 33만 명 정도가 피난길에 올랐다. 30년이 지난 지금 체르노빌은 어떤 모습일까?, 현장을 찾아가 봤다.

체르노빌 원전 외곽 30km지점 검문소


체르노빌 원전 반경 30km 지역은 여전히 출입통제 구역이다. 원전을 30km 앞둔 곳에 검문소가 나타난다. 방문 희망자는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곳 검문소에서부터 안내인과 동행해야 한다.

검문소에서 '방문자 수칙'이란 것을 고지받는다. "출입통제 구역에서 온몸을 최대한 가리는 옷과 신발을 착용한다, 통제구역에서 아무 데나 앉거나 만지지 않는다, 정해진 루트를 절대 이탈하지 않는다, 어떤 물건이든 반출하면 안 된다." 지켜야 할 준수사항과 금지사항 등 10여 가지가 넘는 조항들을 읽고 사인해야 한다.

체르노빌 원전 4호기 주변의 방사능 수치


안내인이 방사선 계측기를 가져와서 대기 중의 방사능 정도를 보여준다. 검문소에서 원전까지 가는 길에서는 대략 0.12~0.4 ㎲ v/h 정도이다(1 ㎲ v/h는 시간당 1마이크로시버트 만큼의 방사능이 나온다는 의미다. 0.1~0.4 ㎲ v/h는 일상생활에서도 검출되는 양이다). 그런데 원전으로 가까이 갈수록 계측기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수치가 올라간다.

취재기자의 심장박동수도 덩달아 같이 상승한다. 사고가 난 원전 4호기 근처에서는 5.0~6.0 ㎲ v/h 수준이었다. 지금도 길옆 숲 속으로 들어가거나 물웅덩이 근처에서는 일상수준의 20~30배 이상으로 계측기 수치가 급상승한다고 한다.

■ 체르노빌은 지금 ‘폐로 작업’ 중

체르노빌 원전 4호기


사고가 난 원전 4호기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을씨년스런 모습 그대로이다. 그 현장을 2,600여 명의 작업자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 사고 당시 체르노빌에는 4개의 원전이 가동 중이었고, 5, 6호기가 건설 중이었으나 사고 직후 5, 6호기 건설은 중단됐다.

나머지 원전은 2000년까지 가동하다 이제는 '폐로 작업'이 진행 중이다. '폐로 작업(Decommision)'이란 원전 등 핵 시설물의 영구 정지 후 방사성 오염 물질과 시설을 철거하고 원전이 들어서기 이전의 자연 상태로 되돌리는 전 과정을 말한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새로운 철제 방호벽 건설이다.

4호기 철제 방호벽


사고 직후 원전 4호기에 응급처리로 씌웠던 콘크리트 방호벽에는 금이 가는 등 붕괴 위험이 커져서 그 옆에 새로운 철제 방호벽을 건설 중이다. 4호기 원자로에는 아직도 방사능 물질의 95%가 그대로 남아 있다.

새로운 철제 방호벽은 높이 109m, 너비 260m, 무게 3만t의 스테인리스 강철로 만드는 중이다. 완공 시점은 2017년 11월 30일인데, 앞으로 100년 동안 방사능 물질의 유출을 차단한다고 한다.

체르노빌 원전 2호기 제어실


'폐로 작업'에서 가장 처리가 힘든 것이 '사용 후 핵연료'인데, 사람이 1m 거리에 17초만 있어도 한 달 안에 사망할 수 있는 치명적인 물질이기 때문이다. 체르노빌 원전의 1, 2, 3호기에서 사용 후 핵연료를 모두 수거해 단지 내 사용 후 핵연료 저장소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현재 사용 중인 사용 후 핵연료 저장소는 옛 소련 시절 지은 '습식 저장소'인데, 이것은 지진 등 강한 외부 충격 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어 최근 '건식 저장소'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결국은 돈 문제다.

체르노빌 원전의 폐로 작업에는 총 40억 달러가 소요될 예정이고, 여기에 한국 등 40여 개 나라에서 기부했지만 아직도 전체 소요 금액의 60%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돈이 부족하면 작업이 더딜 수밖에 없고, 치명적인 위험에 또다시 노출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원전 취재를 마치고 나올 때 안내인이 근처 저수지로 취재진을 안내했다. 안내인이 빵 덩어리를 뜯어 던지자 수많은 물고기 떼가 달려들어 빵 조각을 덥석 물었다. 메기라고 하는데,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어떤 놈은 2m가 넘어 보였다. 마치 상어처럼 보이는데 모골이 송연할 정도였다.

안내인이 과학적인 인과관계를 설명해주진 않았지만, 아마도 방사능 영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체르노빌판 헐크..?? 원전 취재 마지막에 참으로 섬뜩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 후유증…고통 받는 사람들

쁘리삐얏트 시가지


원전 북쪽 2km 지점에 쁘리삐얏트라는 마을이 있다. 지금은 폐허로 변해버린 유령 도시지만, 사고 당시 원전 근로자 5만여 명이 살던 지역이다. 숲으로 둘러싸여 삶의 질이 높은 쾌적한 도시였건만, 사고 이튿날 주민 전부가 다른 지역으로 피난을 떠났다. 주민 가운데 4만 4천여 명은 수도 키예프 동쪽 외곽 발자크 거리로 이주했다.

쁘리삐얏트 주민이 이주한 발자크 거리


발자크 거리로 이주한 65살 트리셰 바 씨는 두통, 심장병, 고혈압 등 30여 가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남편은 1998년에 심장병으로 숨졌고, 딸은 갑상선 질환을 앓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쁘리삐얏트에서 이주해온 주민 가운데 40% 정도가 각종 질병으로 숨졌다고 한다.

이들을 돕고 있는 시민단체 '짐리끼'에 따르면, 이주민들이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은, 일인당 4천 루블, 가구당 만 루블이 전부라고 한다.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현재, MRI 등 각종 의료진단비나 병원 치료비는 전부 개인이 알아서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지원은 한계가 있다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했다.

■ 관광객

관광객들


체르노빌 원전을 취재하며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시로 돌아다니는 관광객들이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관광객들에 원전 현장을 개방했다. 재난 현장을 관광상품으로 만든 이른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하나이다.

일인당 비용은 249달러 정도라고 한다. 이들은 원전 4호기 근처와 폐허로 변한 쁘리삐얏트 마을 등을 둘러본다. 취재 도중 만난 관광객만 30명이 넘는 것 같다. 방사능 공포 때문에 올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이 보러 오는 것이다.

발트해 리투아니아에서 온 관광객은, 방사능 공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크라이나 정부가 개방했을 때는 믿을만한 구석이 있지 않겠느냐며 오히려 기자를 안심시켰다.

프라하에서 온 관광객은 체르노빌 방문이 자신의 '버킷 리스트(bucket list: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중의 하나였다고 말했다. 일본 관광객들도 다수 눈에 띄었는데, 자신들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었기 때문에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찾았다고 했다. 다행히 원전을 방문한 뒤 방사능으로 피해를 본 관광객들은 아직 보고된 바 없다고 한다.

이웃 나라 벨라루스를 취재갔을 때 관광 허용 문제를 물었더니, 벨라루스에서도 관광객들을 받는 문제를 장시간 토론했으나 결국 안전 문제 때문에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냈다고 말했다. 이는 민족성과도 관련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들었다.

다음은 취재 중에 들은 우스갯소리다. "못이 박힌 의자에 앉으라고 하면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반응이 제각각이라고 한다. 러시아 사람은 과감히 못을 빼고 앉는다. 벨라루스 사람은 그냥 앉아서 고통을 참는다. 우크라이나 사람은 그 못을 빼서 시장에 내다 판다."

■ 벨라루스의 사후 처리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 벨라루스의 ‘뽈례스키 공원’


30년 전 사고는 우크라이나 땅에서 발생했지만, 방사능 구름이 강한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바람에 이웃 나라 벨라루스가 더 큰 피해를 입었다. 벨라루스는 지금도 국토의 25%가 방사능에 오염돼 있다.

가장 오염이 심한 곳이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 '뽈례스키 공원' 지역이다. 무려 216만 2천ha의 땅이 출입금지 구역으로 묶여 있는데, 암을 유발하는 세슘의 농도가 다른 지역보다 20배 이상 높아 사고 당시 2만여 명의 주민들이 피난을 떠났다.

이곳에서는 현재 100여 마리의 말을 키우면서 방사능이 동물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 중이다. 또 사과나무 등을 심어 오염된 땅에서 깨끗한 농작물을 수확하는 방안 등을 집중 연구 중이다.

벨라루스 고멜시 원자력 병원


벨라루스에서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피해를 입은 환자는 154만 명에 달한다. 벨라루스 남부 고멜시에는 이들을 치료하고 임상시험과 연구도 진행하는 국립 원자력 병원이 있다. 환자들은 일 년에 한번 병원에 들러 각종 검진과 치료를 받는다. 치료비는 전액 국가가 지급한다. 벨라루스는 원전 사고 직후 방사능 연구소와 병원을 설립해 국가 차원에서 사후처리에 총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고멜시에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수습을 총괄하는 부서가 있다. 그 부서의 부대표인 리시우크씨를 인터뷰할 때, 그녀의 책상 위에는 일본 기자들의 명함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일본 기자들은 대체로 어떤 질문들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3가지 정도라고 대답했다.

"첫째는 오염된 땅에서 어떻게 깨끗한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가? 둘째 오염 물질은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 셋째 (방사능 공포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 치료는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가? 등이다. 실제로 벨라루스에서도 30년이 지난 지금은 피해 지역 주민들의 심리 치료에 주력하고 있다."

■ 여전한 방사능 공포

체르노빌 사고 추모비


30년 전 인류 최악의 원전 사고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 3개국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봤지만, 사실 유럽 전체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수백만 명이 아직도 본인은 물론 후손들까지 각종 방사능 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방사능은 정상 복구까지 몇백 년, 몇천 년이 걸릴지 모른다. 그 보이지 않는 공포 때문에, 체르노빌 사고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연관 기사]☞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원전 사고 30년…지금 체르노빌은? (2016.4.30)

하준수기자 (ha6666j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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