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크스바겐 조작 스캔들의 발단은 '북한같은 지배구조'
"독재적 리더십은 시대에 뒤떨어진지 오래"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 세계 1위 자동차제조업체 폴크스바겐에서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이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북한에 비유될 만큼 비합리적인 지배구조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칼럼니스트 제임스 스튜어트는 24일(현지시간) 이 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폴크스바겐의 문제는 감독이사회(감사회) 회의실에서 시작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독일 나치정권이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에 설립한 폴크스바겐은 지배구조가 특이하게도 가족 경영, 정부 지분, 노동조합 영향력이 혼합된 형태다.
올해 초 강제로 물러나기 전까지 폴크스바겐 감사회를 좌지우지한 것은 페르디난트 포르셰의 손자인 페르디난트 피에히(78)다. 그는 12명의 자녀를 뒀다. 그는 지난 4월 최근 스캔들로 사퇴한 마르틴 빈터코른 폴크스바겐 최고경영자(CEO)를 축출하려다 실패해 감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1993년 폴크스바겐 감사회를 물려받아 20년 넘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종종 '가족 합의'에 따라 과반의 의결권을 행사했다.
2012년 네 번째 부인이자 결혼 전 피에히 가문의 가정교사였던 우르술라를 폴크스바겐 감사회 멤버로 선출했다. 많은 주주들이 자격과 전문성을 문제 삼아 반대했지만, 포르셰와 피에히 가문은 과반의 의결권을 행사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노동조합 대표는 감사회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나머지 두 자리는 의결권의 20%를 보유한 니더작센주 정부가, 두 자리는 17%를 보유한 카타르의 국부펀드인 카타르 홀딩스가 각각 차지한다.
포르셰와 피에히 가문은 세 자리를, 경영진 대표는 한 자리를 각각 갖는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SZ)은 이런 폴크스바겐의 지배구조를 북한의 지배구조에 비유했다. SZ는 "독재적 리더십은 시대에 뒤떨어진 지 오래"라며 "제대로 작동하는 기업지배구조가 실종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찰스 엘슨 미국 델러웨어 대학 지배구조센터 소장은 "폴크스바겐의 지배구조는 스캔들의 번식지"라면서 "사고를 불러오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감사회에서는 외부의 시각이 투영되기 어려우며, 메아리치는 거수기에 불과하다"면서 "감사회는 투자자들을 대신해 경영을 감시하고, 회사의 장기적인 건전성과 이익을 보장하는데 최우선의 목표를 둬야 하는데 폴크스바겐은 그렇지 않아 문제"고 덧붙였다.
한 전직 폴크스바겐 임원은 "경영진과 정부, 노동조합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은 완전고용"이라며 "폴크스바겐은 독일인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폴크스바겐은 작년기준 차량 1천만대를 생산하기 위해 60만명을 고용했다. 세계 2위 자동차제조업체 토요타는 900만대를 생산하기 위해 34만명을 고용하는데 그쳤다.
폴크스바겐 감사회는 또 환경문제에 대한 늑장 대응으로 유명하다. 다른 업계 선두주자들과 비교하면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엔진기술에 대한 투자도 부족한 상황이다.
전 임원은 "폴크스바겐은 기술자 중심의 회사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전기를 만드는데 화석연료를 쓰면서 전기차를 만드는 것은 정치적 위선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기술자들은 도덕적 우월감에 빠져 있으며, 그들이 가장 잘 아는 줄 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럼에도 폴크스바겐이 환경규제를 준수해야 한다는 말은 폴크스바겐이 위치한 볼프스부르크에서는 쇠귀에 경읽기"라며 "폴크스바겐은 자동차 판매량 세계 1위 달성을 강력히 추진해왔고, 배출가스 조작의 동기도 미국에서 디젤차량 판매를 늘리기 위한 것이라고 알려져있다"고 강조했다.
유럽기업지배구조 전문가인 마르쿠스 로트 마르부르크대 교수는 "폴크스바겐의 지배구조는 독일의 기준에서도 벗어나 있다"면서도 "독일인들 사이에는 전반적으로 미국이 자동차업계 배출가스를 문제 삼는 게 매우 불공평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전기차를 타더라도 전기생산을 위해 화석연료를 쓴다면 무슨 소용이냐는 식"이라고 말했다.
엘슨 소장은 "폴크스바겐 감사회의 이런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지배구조는 투자자들에게 큰 신뢰감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들은 어쩌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겠지만, 정부가 폴크스바겐을 긴급구제해야 할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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