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살 러시아 마지막 황제 일가 미스터리 모두 밝혀질까(종합)

입력 2015. 9. 2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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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당국, 세째 공주·황태자 추정 유해 유전자 확인작업

수사당국, 세째 공주·황태자 추정 유해 유전자 확인작업

(모스크바·서울=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양태삼 기자 = 러시아 당국이 사회주의 혁명 과정에서 볼셰비키들에 의해 총살된 제정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가족들에 대한 유전자 감식을 다시 실시한다.

지난 2007년 뒤늦게 발견된 황태자 알렉세이와 셋째 공주 마리야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는 23일(현지시간)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페트로파블롭스키 사원에 안장돼 있는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알렉산드라의 관을 열어 유해 표본을 채취하고, 니콜라이 2세의 조부로 1881년 살해된 알렉산드르 2세 황제의 제복에 남아있는 혈액 표본을 채취해 알렉세이 및 마리야의 유해 표본과 대조하는 방식으로 유전자 감식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알렉세이와 마리야의 유해는 현재 모스크바 시내 국립사료보관소에 안치돼 있다.

수사위원회는 유전자 감식을 통해 알렉세이와 마리야로 추정되는 유해의 진상이 확인되면 이들을 다음 달 18일 다른 가족이 묻힌 페트로파블롭스키 사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니콜라이 2세 가족은 사회주의 혁명 이듬해인 1918년 혁명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의 지시로 우랄산맥 인근 도시 예카테린부르크로 유배됐다. 황제와 황후, 4명의 딸과 13살 난 아들 등 황제 일가 7명과 주치의, 시종 등 모두 11명이 현지의 한 건축가 저택에서 머물렀다.

그러다 시베리아를 장악한 반혁명군(백군)이 예카테린부르크를 압박해 들어오자 당황한 혁명군(적군)은 그해 7월 저택 지하실에서 황제 일가와 시종들을 한꺼번에 총살했다. 한 볼셰비키 경찰 장교가 처형 명령을 내렸다. 처형자들은 시신을 예카테린부르크 인근 광산으로 옮겨 석유를 뿌려 불태운 뒤 폐광에 버렸다.

황제 일가의 매장지는 기밀에 부쳐졌으나 소련 붕괴 직전인 1991년 황제와 황후, 공주 3명의 유해가 먼저 발견됐다. 오랜 기간의 유전자 확인 작업 끝에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1998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페트로파블롭스키 성당에 안장됐다.

러시아 정교회는 2000년 이들을 성인으로 추대했고 2008년엔 최고법원이 "황제와 그의 가족이 부당한 정치 탄압에 의해 희생됐다"며 정치적 복권 판결을 내렸다.

이에 앞서 2007년 7월 그때까지 행방이 묘연했던 셋째 공주 마리야와 황태자 알렉세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가 예카테린부르크 외곽에서 추가로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이 유해가 알렉세이와 마리야 공주의 것이라고 확인했고 황제 일가 피살 사건을 담당해오던 수사당국도 같은 결론을 내렸으나 일부에선 진위에 대한 의혹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연방수사위원회가 러시아 정교회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추가 유전자 감식을 벌이기로 한 것이다.

tsy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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