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젊은 세대 절반이 부모와 동거하는 이유는
25-34세 인구 46.6% "부모와 함께 살아"…경제적 이유와 전통 때문
(제네바=연합뉴스) 류현성 특파원 = 유럽연합(EU) 통계청 조사 결과 이탈리아의 25-34세 젊은이의 절반가량이 여전히 부모와 함께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이탈리아 언론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탈리아 젊은 세대가 부모와 함께 사는 경향은 금융위기가 시작된 지난 2008년부터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침체한 이탈리아 경제가 그 원인이라고 온라인 매체인 더 로컬은 전했다.
서구에서 이른바 `Y세대'라고 불리는 이 연령대에서는 전반적으로 부모와 동거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지만 유독 이탈리아는 미국보다 거의 3배나 많은 46.6%가 부모와 함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이탈리아 토리노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는 엘레나 코다(27)는 "대부분 경제적 이유 때문에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나는 운 좋게 부모가 공부하도록 생활비와 집값을 대줄 수 있어서 고향인 사르디니아를 8년 전에 떠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석사학위를 마친 그녀는 또 "부모 덕택에 젊은 사람이 일할 곳이 많지 않은 사르디니아를 떠날 수 있었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는 많은 이탈리아 젊은이들은 그냥 부모 집에 머물 수 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대학을 졸업해도 일할 곳이 마땅하지 않아 대학생들도 졸업을 마냥 늦추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탈리아에서는 설령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갖더라도 곧바로 한 달에 1천 유로(약 131만여원) 안팎을 버는 `1천 유로 세대'에 편입될 뿐이다. 이 때문에 취업을 한 청년들 역시 소득이 낮아 임대료를 내지 않고 돈을 절약할 수 있는 부모의 집에 기거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탈리아 젊은이들이 경제적 이유만으로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을 선택한다고 할수는 없다.
유럽 전체적으로 부유한 북부 국가 젊은이들은 남부 유럽이나 구 소련권과 비교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려는 경향이 강하지만 전통적으로 가족이 사회생활의 중심 역할을 해온 이탈리아의 젊은이는 헝가리, 폴란드, 스페인, 루마니아보다도 더 많이 부모와 함께 사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파도아 스키오파 전 이탈리아 재무장관은 지난 2007년 젊은이들의 이런 경향을 빗대어 `밤비치오니'(큰 아기들)라고도 지칭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호칭은 이탈리아 젊은 세대가 당면한 경제적 문제를 고려할 때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앞서 지난 2006년 이탈리아 경제학자인 마르코 마나코르다와 엔리코 모레티는 당시 논란을 빚었던 논문을 통해 "자식에 집착하는 부모세대가 무료 잠자리와 음식을 댓가로 자녀들의 자유를 샀다"면서 "역설적으로 이런 식의 동거가 젊은이들의 취업 의지를 꺽으면서 높은 청년 실업률을 가져오게 된 이유 중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영국 등 다른 나라와 달리 부모의 집이라는 둥지를 떠나지 않는 것을 별로 부끄럽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있다.
실제 최근의 이탈리아 통계조사를 보면 30세에서 44세 연령대의 약 25%가 부모 집에서 동거하고 있고, 45세에서 64세 연령대의 비율도 11.8%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이탈리아에서는 한 세대 이상이 한 지붕 아래 사는 것이 보편적이며, 가족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서로를 보살펴주는 미덕에 대한 전통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
토리노에서 교사 생활을 하며 부모와 함께 사는 기우세페 모렐리(43)는 "이것은 단지 가족에 대한 가치관 때문만은 아니다"면서 "우리는 빚을 지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이 있고, 특히 월급으로 높은 월세나 주택금융 이자를 감당할 수 없을 때는 더욱 그렇다"라고 말했다.
부모와 함께 사는 모렐리의 남동생(36) 역시 "우리는 함께 살지만 서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며 이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는 결코 어머니의 행주치마 끈에 묶여있지 않으며 대신 부모와 형제를 서로 계속 보살피며 살아간다"고 말했다.
rhe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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