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 아이들의 영웅 '29번가 배트맨'.. 안타까운 죽음
美로빈슨, 배트맨옷 입고 선행 교통사고 사망에 시민들 '애도'
불치병을 앓는 어린이 환자들의 친구였던 배트맨이 자신의 자동차인 배트모빌에 치어 세상을 떠났다. 만화보다 더 어이없는 배트맨의 죽음에 미국 사회가 슬픔에 잠겨 있다.
17일 워싱턴포스트(WP)는 '29번 도로의 배트맨'으로 불렸던 레니 로빈슨(51)이 하루 전 메릴랜드주 헤이거스타운의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인해 현장에서 숨졌다고 보도했다. 경찰에 따르면 로빈슨은 16일 오후 10시 30분쯤 운전 중 배트모빌이 멈춰서자 차에서 내려 엔진을 살펴보기 위해 차량 앞쪽으로 향하던 순간, 뒤쪽에서 달려오던 토요타 캠리 자동차 운전자가 들이받은 배트모밀이 움직이면서 치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캠리 운전자는 아무런 부상을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WP는 사고 당시 로빈슨은 배트맨 의상을 입지 않은 상태였다고 전하면서, 영화와 만화 속에서는 배트맨이 위기에 처한 수많은 사람을 구출했지만 현실에서는 로빈슨을 죽음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슈퍼히어로는 없었다며 애도했다. WP에 따르면, 사망하기 수분 전 주유소에서 자신을 알아본 어린이들에게 배트맨 장난감을 선물로 준 것이 그가 배트맨으로서 수행한 마지막 임무였다.
로빈슨의 선행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12년이다. 미국 수도 워싱턴 북부와 메릴랜드 볼티모어 서부를 연결하는 29번 도로에서 배트맨 의상을 입은 한 남성이 교통법규 위반으로 경찰에 적발되는 이색 광경을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온라인상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으면서, 이 남성이 그동안 병마와 싸우는 어린이들을 찾아다니며 희망과 사랑을 전달해온 배트맨이란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후 이 남성은 '29번가의 배트맨'이란 별명으로 불렸으며, WP는 배트맨이 청소업으로 큰돈을 번 로빈슨이란 남성이라고 보도했다. 그는 배트맨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들과 놀아주기 위해 배트맨 옷을 입기 시작했고, 2007년에는 아예 회사를 매각한 후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배트모빌과 똑같은 모양의 람보르기니 스포츠카를 몰고 워싱턴과 메릴랜드 지역의 어린이 병동들을 찾아다니며 함께 놀고 선물을 전달해 주는 봉사활동에 전념해 왔다. 로빈슨은 매년 어린이들에게 줄 장난감 선물을 사는 데만 수만 달러를 쏟아부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신원이 밝혀진 이후 언론의 관심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불편하게 여겼던 로빈슨은 "배트맨을 보고 웃는 아이들을 위해 이 일을 한다"면서 "하루하루 삶을 위해 싸우는 어린이 환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슈퍼히어로"라고 말하곤 했다.
오애리 선임기자 aer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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