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일본 방송 뉴스는 '장난질'을 어떻게 할까?

김승필 기자 2015. 7. 20.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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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15일 일본에는 2개의 큰 방송 뉴스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집단자위권 안보법안 강행처리'였고, 하나는 '11호 태풍 낭카 북상' 뉴스였습니다. 일본의 각 방송사는 이 뉴스를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방송사별로 짚어보겠습니다.

● '안보법안 37분 ' TV아사히 對 '태풍이 톱' NTV

일본의 주요민방인 TV아사히와 NTV의 밤 메인뉴스의 의제 설정은 매우 판이했습니다. 먼저, 진보지인 아사히신문 계열의 TV아사히. 밤 10시 '보도스테이션'에서 뉴스 시간의 절반 가까이를 '집단 자위권 안보법안 강행처리'로 채웠습니다. 전체 뉴스 시간 76분 가운데 37분이었습니다.

반면, 보수지인 요미우리신문 계열의 NTV는 밤 11시 'NEWS ZERO'에서 '태풍' 소식을 톱뉴스로 올렸습니다. 태풍과 더위 뉴스를 5분간 먼저 전한 뒤, 안보법안 뉴스는 단 6분간 보도했습니다.

공영방송인 NHK와 다른 민방은 모두 '안보법안'이 머리기사였습니다. 하지만 보도량은 차이가 적지 않았습니다. 중도진영의 TBS는 'NEWS 23'에서 29분 (전체 뉴스 59분)의 보도량을 보였지만, NHK는 '9시 뉴스'에서 17분 (전체 뉴스 60분), , 보수 계열의 후지테레비는 7분 (전체 뉴스 23분) 만 보도했습니다.* 수치는 일본 마이니치 신문의 20일 기사 'TV보도 취급차 크다'를 인용했습니다.

● 앵커의 질적 차이, '정면 비판'과 '물타기'

TV아사히 앵커는 매우 비판적이었습니다. "1mm라도 전쟁에 가까워지지 않도록, 이 문제를 취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결연히 말했습니다. 반면 NTV 앵커는 물타기식 태도를 보였습니다. "국민은 야당의 안전보장정책도 알고 싶어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 시위 현장 '커버'도 확연한 차이

지난 토요일(18일), 일본 31개 현에서 '아베 정치 용서할 수 없다'는 구호를 외치는 동시다발적인 시민 집회가 있었습니다. 도쿄 국회의사당 정문 시위 현장에는 한국 방송사, 중국 방송사도 취재에 나설 정도였지만, 일본 공영방송인 NHK의 카메라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민방인 TV아사히, TBS, 도쿄 TV의 카메라만 눈에 띄었습니다. 방대한 인력과 장비를 자랑하는 NHK는 모든 현장을 일단 커버해 두는 곳인데, 이날만큼은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관련 뉴스는 NHK TV는 물론 NHK 홈페이지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 주요 의제 있는 날, 날씨가 톱뉴스면!

일본의 '안보 법안'은 전후 70년 일본 안보정책의 대전환을 의미합니다. 일본 국내는 물론 미국, 중국, 한국에서도 대단한 관심을 보이는 법안입니다. 그런 법안이 강행처리되는 날, 방송 뉴스에서 '태풍'이 톱뉴스로 올라온다는 것은 '의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의도적'이긴 한데, 또한 충분한 '변명거리'를 갖기도 합니다. '태풍 등 날씨가 일반 시민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톱뉴스로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 아예 말이 되지 않는 소리는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번 태풍은 슈퍼태풍급도 아니었고, 일본에 큰 피해를 주지도 않았습니다. 여름이면 으레 일본을 지나가는 여러 태풍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날씨 뉴스'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됩니다. 한국은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땡전 뉴스'라는 비판에 직면하자, 방송사들은 날씨나 스케치 기사를 먼저 내보낸 뒤, 대통령 관련 뉴스를 전하는 '술수'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일본의 일부 방송은 '날씨 뉴스 카드'를 활용하며 국민이 제대로 알아야 할 소식을 축소하는 '장난질'을 했습니다. '날씨' 자체가 톱뉴스 자격이 있는 날도 있지만, 이처럼 '억지 톱' 역할을 하는 날도 있습니다.

일부 일본 방송이 '안보 법안' 보도에서 부적절한 태도를 보였지만, 전체적으로 일본의 현재 언론 환경은 아베 정권의 이런저런 압력이 있음에도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보도스테이션'과 '뉴스23'을 지키자는 시민 운동도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념에 따라 진보부터 보수까지 골고루 포지셔닝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최소한 언론만은 한쪽 날개로만 날지는 않고 있습니다.김승필 기자 kimsp@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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