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강도와 '레슬링' 3시간..경찰은 왜 지켜만 봤을까?

김환주 2015. 7. 1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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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미국민들이 모두 들떠있던 지난 3일 저녁의 일입니다.

로스앤젤레스 서부 팜스(Palms)의 한 휴대 전화 매장에 장년의 남성이 들어섰습니다.

매장에는 주인인 네이선(Nathan) 혼자뿐이었습니다. 네이선은 조금 이상한 낌새를 느꼈지만 휴대전화를 사러 왔다는 남성의 말에 제품을 꺼내 하나하나 설명했습니다.

제품 설명을 듣고 있던 남성이 돌연 허리춤에서 테이저, 즉 전기충격기를 꺼내 쏘려 했습니다. 용케 남성의 공격을 피한 네이선은 곧장 이 남성과 격투를 벌이게 됩니다.

매장 내 집기가 온통 쓰러져 나뒹굴 정도로 심한 싸움이었습니다.

격투 중에 남성은 말합니다."나, 마약 중독자야. 마약 사야 해. 있는 돈 다 내놔"

■ "나, 총 갖고 있어"…강도와의 대치

나중에 경찰 조사 결과 밝혀진 이 남성의 나이는 56살이었습니다.

네이선이 더 젊어서였을까요? 바닥에 쓰러져 격투를 벌인 끝에 네이선은 가까스로 남성 위에 올라타게 됐습니다.

강도 용의자를 제압했으니 이제 바깥으로 나가면 되겠다고 생각한 순간. 용의자가 말합니다. "나, 총 갖고 있어" 탈출하려던 네이선은 그 말에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지금 나가면 이 자가

내 등에 대고 총을 쏘겠지...나가면 안 돼. 어떻게든 총을 쏘지 못하게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해'

■ 매장 주인을 강도로 착각한 경찰

한편 옆집 휴대전화 매장에서 고성과 함께 와당탕탕 요란한 소리가 들리자 이웃한 마리화나 가게의 경비원이 뛰어들어왔다가 격투 상황을 보고 경찰에 신고합니다.

출동한 경찰은 매장 안에 엉켜 있는 두 사람을 포착합니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합니다.

피해자는 강도에게 항상 당하고 있을 것이란 선입견이 작용했을까요?

경찰은 강도 용의자 위에 올라타고 있는 네이선을 강도로 착각했습니다.

네이선 아래 깔렸던 강도 용의자가 매장 주인, 그러니까 인질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피해자가 강도 용의자를 제압하고 있는 상황이 거꾸로 강도가 인질을 붙잡고 있는 상황으로 치닫습니다. 경찰 특수부대(SWAT)가 긴급 출동하고 현장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켰습니다. 한 지역 TV방송은 팜스에서 인질극이 벌어졌다면서 현장을 생중계로 연결해 속보로 전하기까지 했습니다.

강도를 제압한 피해자가 경찰과 대치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2시간 45분이 지났을 무렵 깔렸던 강도 용의자는 결국 탈진해 늘어졌습니다. 이때서야 비로소 네이선은 강도 용의자가 자신을 겁주기 위해 총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용의자가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는 상태라고 판단한 네이선은 재빨리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풀려난 용의자가 기어서 가게 밖으로 나가다가 체포되면서 상황은 종료됐습니다.

■ 3시간동안 경찰은 총만 겨누고 있어야 했을까

밑에 깔려 있는 강도 용의자를 인질로 판단하고 즉각적인 현장진입을 유보한 경찰의 조치는 인질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타당성이 있어 보입니다. 이웃 가게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켰으니 누가 휴대전화 매장 주인인지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어이없는 인질극이 3시간 가까이 계속되는 동안 경찰이 할 일은 매장을 향해 총만 겨누고 있는 것이었을까요?

네이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도를 잡았다고 나보고 영웅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영웅이 되려고 그런 게 아닙니다. 살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기억일 겁니다. 강도를 붙잡아 놓고도 경찰은 언제나 오나 기다리며 3시간 가까이 피 말리는 시간을 보냈을 피해자는 어떤 심경이었을까요? 강도가 아니라 호랑이 등에 타고 있는 심정은 아니었을까요?

아마 당해 본 사람이 아니면 짐작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연관 기사] ☞ [뉴스광장] 황당한 3시간 대치극…"피해자를 강도로 착각"

김환주기자 (towndru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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