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천국' 초미니국가, 한 번 만들어 볼까

김세훈 기자 2015. 5. 1.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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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내고 싶은 만큼만.. 국경? 그게 필요할까.. 대통령? 내가 할 수도
전 세계 괴짜들이 만든 '국가 아닌 국가' 얼마나 되나

지난달 동유럽의 다뉴브강 중류 사행천 지대를 낀 빈 벌판에서 '리베를란트'라는 나라가 '탄생'했다.체코의 극우 정당 자유시민당 당원인 비트 예들례카가 '제3자가 무인 지대에 국가를 세울 수 있다'는 국제법을 근거로 독립국으로 일방 선포한 것이다. 이곳의 면적은 난지도(3.4㎢)의 두 배가량인 6㎢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가 서로 자국 영토로 주장하는 바람에 아무도 살지 않는 지역이다. 예들례카는 홈페이지(liberland.org)를개설하고, 국기와 문장도 마련하면서 후원금과 함께 국민을 모집했다. 헌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국가 체제는 직접민주주의 형태로 하되나치즘과 공산주의는 배격한다. 국가 모토는 '살고 살리고(to live and let live)'다. 세금은 내고 싶은 만큼만 내고, 국가권력도 극히 제한된다. 범죄 전과가 없고 나치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아니어야만국민이 될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진보주의자들의 천국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곳 국민이 되겠다고 신청한 사람은 25만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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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호초에 모래 부어 만든 섬예술가가 공 모양으로 지은 집바다 한가운데 비행기 기지남극 빙하와 우주에도 독립을 선포한'국가'들이 있다

▲ 우표·화폐도 만들고17개국에 영사를 둔 곳도 있다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지만더 많은 '국가'가 나올 것이라고미래학자는 말한다

리베를란트처럼 독립을 선포했지만 국제적으로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곳을 '초소형국가체(Micronation)'라고 부른다. 리스트오브마이크로네이션닷컴은 그 숫자를 123개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71개는 지금도 활동 중이며 9개는 존재는 하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다. 43개국은 지금은 없는 곳이다. AP통신은 "생겼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해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초소형국가체에는 법률 등 공식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적 제도가 있다. 물리적인 영토에 대한 주권도 주장한다. 일반적인 모임, 부족, 마을과는 다른 점이다. 또 자기 나름대로 국기, 여권, 우표, 화폐, 국가도 갖고 있다. 여느 국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초소형국가체는 일반적으로 설립 의도에 따라 몇 가지로 분류된다. 가장 흔한 게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시뮬레이션 모델이다. 설립자들이 자기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곳이 많다. 설립자는 대부분 '괴짜'이며 흥밋거리로 만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립자는 물론 부인하지만 사기를 치기 위해 만들어진 초소형국가체도 있다. 바다에 인공 섬을 짓고 나라라고 우기는 경우는 그나마 낫다. 영토 없이 인터넷에서만 존재하거나 우주에 국가체를 선포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초소형국가체는 '시랜드 공국'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 서쪽 해안에 있던 독일 비행기 공격기지에서 국가를 선포했다. 콘크리트로 만든 해상 구조물로 면적은 550㎡이며 당시 500여명이 머물렀다. 영국 육군 소령 출신인 패디 로이 베이츠가 1967년 이곳을 차지한 뒤 우표, 화폐 등을 발행하며 주권을 주장하고 있다. 국가 모토는 '바다로부터 자유'다. 지금도 이곳 근처에 배가 접근하면 사격이 이뤄져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초소형국가체로 평가된다. 가장 작고 가장 이상한 곳이기도 해 세계 언론들이 초소형국가체를 언급할 때 단골로 등장한다.

'장미섬 공화국'은 1967년 이탈리아 엔지니어 조르조 로사가 이탈리아 아드리아해에 만들었다. 9개 기둥이 떠받치는 해상 인조 구조물로 이뤄진 이곳의 면적은 400㎡밖에 안된다. 예전에는 레스토랑, 바, 나이트클럽, 우체국 등도 있었다. 로사가 이듬해 독립을 선포하면서 대통령이 됐으나 이듬해 이탈리아 해군은 이곳이 세금 도피처로 이용된다는 이유로 파괴시켜버렸다. '미네르바 공화국'도 인공 섬이다. 1971년 부동산 업자 마이클 올리버가 세금 없는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는 바람으로 통가와 뉴질랜드 사이에 있는 얕은 산호초 위에 모래를 부어 만들었다. 인도양에 있는 '산 세리페'는 허구의 섬이다. 1977년 4월1일 영국 정론지 가디언이 만우절 특집기사로 소개하면서 알려졌다. 지금도 대표적인 만우절 거짓말로 회자된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쿠겔무겔 공화국'은 구(球) 모양의 건물이다. 1984년 예술가 에드빈 리프부르거가 구형으로 집을 짓겠다는 요구를 거부한 오스트리아 당국과 싸우다가 공화국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물론 주소가 있는 건물이며 지금은 유명 관광명소가 됐다. 쿠겔무겔은 독일어로 '구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라도니아'는 스웨덴 당국에 의해 쫓겨날 위기에 몰린 예술가가 만든 곳이다. 현재 1만4000명 정도가 거주하며 세금제도도 있고 국가도 연주된다.

몰로시아 공화국(위 사진)과 허트강 공국.

'몰로시아 공화국'은 미국 서부 네바다주에 있다. 케빈 보라는 사람이 처음에는 학교 프로젝트로 구상하다가 1977년 독립국가를 선포한 뒤 대통령이 됐다. 몰로시아는 '작은 바위가 많은 언덕'을 뜻하는 스페인어 '모로'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졌다. 총면적은 5.8㎢이며 인구는 보 대통령 내외, 두 아들 등 4명이다. 관광객은 매년 10명까지 받고 대통령이 직접 45분 동안 가이드도 한다. 총기와 담배, 백열전구, 양파, 메기는 반입이 금지돼 있다. 보 대통령은 "이곳에 오면 한 나라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니아'는 1971년 공상가와 히피들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체다. 면적이 1㎢도 안되며 법도, 경찰도 없어 무정부 사회와 흡사하다. 마리화나가 공개적으로 거래되고 가끔씩 살인, 강간 사건도 발생한다. 자동차가 없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마약이 거래되는 푸셔 거리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다.

스웨덴에 있는 '옘틀란트 공화국'은 1963년 세워졌다. 당시 이곳은 인근 지역과의 합병이 추진됐고, 합병될 경우 주민들은 이곳을 떠나야 했다. 이에 반대한 주민이 1년 동안 시위를 한 끝에 만든 곳이다. 지금 13만명 정도가 살고 있다. 다른 초소형국가체와 눈에 띄게 다른 점은 중국, 독일, 미국, 영국, 노르웨이, 러시아 등 세계 17개국에 영사업무를 볼 수 있는 곳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서남극 대공국'은 칠레와 뉴질랜드 사이 태평양에 있다. 160만㎢ 크기의 삼각형 모양의 빙하다. 이곳에 2001년 공국을 세운 트래비스 맥헨리는 "어느 나라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남극 중 일부분"이라며 "이곳이 합법적인 곳이 될 수 있을지 실험해보고 싶다는 상상력이 발동했다"고 말했다. 실제 거주하는 사람은 없지만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300여명에 이른다. 왕임을 자처하는 맥헨리는 이곳을 비영리 지역으로 만드는 걸 꿈꾸며 펭귄 등 동물 보호의 필요성과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주장하고 있다. 맥헨리는 "초소형국가체가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싶다"며 "자금을 댈 파트너도 물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콘치 공화국'도 유명한 초소형국가체이다. 1982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국경통제가 너무 강력하게 이뤄지자 이에 반발한 주민과 사업가들이 항의 반, 재미 반으로 만들었다. 초기 미국 정부가 국립공원을 폐쇄한 것에 반대한 데서 "다른 사람이 못한 곳에서 우리는 독립했다"는 국가 모토가 생겼다. 지금 이곳은 유명한 관광명소가 됐다.

'포이에스'는 스코틀랜드 출신 여행가 그레고르 맥그레고르가 19세기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맥그레고르는 당시 영국 상류층으로부터 돈을 얻어내기 위해 이곳에 환경이 아주 좋은 전원 국가를 세우겠다는 거짓말로 사기를 치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천지(New Utopia)'라는 곳은 장수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파워드 터니가 만들었다. 터니는 온두라스와 쿠바 사이에 살기 좋은 인공 섬을 만들겠다는 꿈에 부풀었다. 이를 위해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어떤 프로젝트도 완성하지 못했다.

뉴질랜드 북섬에는 '허트강 공국'이 있다. 허트는 이곳을 지나는 강이다. 크기는 75㎢로 무척 큰 편이다. 1950년 이곳에 농장을 꾸려 살아온 레너드 캐슬리는 1969년 밀 쿼터제가 적용되면서 밀 46t을 할당받았다. 하지만 캐슬리 농장의 밀 1년 생산량 중 정부가 수매할 수 있는 게 500분의 1밖에 안되자 이에 항의하다가 독립을 요구했다. 이곳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2만여명에 이르고 나름대로 해군도 갖춘 것으로 전해졌다.

'와이 공국'은 호주 시드니 근교 모스먼에 있다. 1993년 폴 델프래트가 자기 집 앞에 사유 차도를 건설하는 것을 원했지만 해결되지 않자 시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인구는 델프래트와 아내, 아들 1명, 딸 2명으로 구성됐다. 궁전과 예술학교도 있다.

'월드피스 글로벌 국가'는 2000년 인도 종교지도자 마하리시 마헤쉬 요기에 의해 선포됐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면 아무나 살 수 있는, 국경이 없는 곳으로 네덜란드에 있다.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만든 곳도 있다. 2014년 칠레와 아르헨티나 사이 영토분쟁이 이어지고 있는 지역을 근거로 세운 '빙하 공화국'이다. 환경 보호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칠레에 경각심을 불어넣기 위해 선포됐다.

'왈라키아 왕국'은 1997년 체코 영화배우 볼렉 폴리브카가 지역을 홍보하고 관광명소로 활용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이곳은 2000년 여행 에이전시로 등록됐고 이후 쿠데타가 발생해 폴리브카가 쫓겨났다. '아에리칸 제국'은 1987년 만들어졌다. 웃는 표정의 이모티콘이 국기이며 "별로 거룩한 게 없는 날"을 의미하는 국가 공휴일도 있다.

인터넷이 발달함에 따라 영토도 없는데 초소형국가체를 선포하는 사람도 있다. 대니 월리스라는 영국인은 웹에만 '사랑 왕국'을 세운 뒤 본인이 초대 왕이 됐다. 이 이야기는 2005년 '자기만의 국가를 만드는 법'이라는 이름으로 영국 TV에 소개되기도 했다. 심지어 우주에 국가를 세우려는 사람도 있다. 제임스 토머스는 1949년 지구를 제외한 모든 행성을 대상으로 '천계 국가'를 만들었다. 토머스는 미국, 러시아가 우주로 비행체를 쏘아올릴 때 자신의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항의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곳 말고도 태양계 행성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다른 세계 국가', 태양 표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천체 태양 왕국'도 있다.

이들 초소형국가체는 런던, 시드니 등에서 거의 매년 총회를 열고 결속력을 다지는 동시에 국가로 인정해달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10년 넘게 초소형국가체 활동을 연구해온 스티븐 샤리프는 "총회는 괴짜들을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시험 철도와 같다"고 말했다.

초소형국가체는 유럽, 북미, 오세아니아 등에 집중돼 있다. 유럽은 많은 나라들이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으로 다양한 관계 속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 오세아니아는 섬이 많은 게 초소형국가체들이 많이 선포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유엔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 국가들은 초소형국가체를 나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세금, 이민 관리 등으로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기존 국가들과 이해관계가 상충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심심풀이'로 만들어진 곳을 국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구글이 선정한 대표적인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 다빈치연구소장은 "과거 국가는 단일 지역에서 자체 법과 정부로 구성된 틀을 지키면서 존재해왔다"며 "그러나 앞으로는 기업이 운영하는 나라, 종교국가, 면세국가, 단일기능국가, 심지어 임대국가까지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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