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갑부 왕서방, 할리우드 야금야금

라제기 2014. 12. 12.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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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지안린 중국 달리안 완다 그룹 회장

2년 전 극장 체인 AMC 인수

美 최다 매출 22곳 그의 손에

서비스업 겨냥한 경제 행보

소프트파워 강화 정책과 맞아

완다 그룹이 중국에서 운영하는 멀티플렉스 극장 모습. 출처 완다 그룹 페이스북

한동안 1인자였다. 대륙에서 돈이라면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 한 때 순자산만 160억 달러(약 17조6,112억원)에 이르렀다. 중국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에 호기롭게 남긴 글만 봐도 남다른 재력을 가늠할 수 있다. "나는 친구를 사귈 때 그들이 돈을 가졌는지 여부에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어느 누구도 나보다 더 많은 돈을 갖고 있진 않을 테니까."

지난 9월까지 그의 이름 앞에는 중국 제일의 부자라는 수식이 붙었다.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 그룹의 마윈 회장이 뉴욕 증시 상장으로 돈벼락을 맞으며 그를 앞섰다. 중국에서 두 번째로 돈이 많다는 호칭이 마땅치 않은 것일까. 왕지안린(王健林ㆍ60) 달리안 완다 그룹 회장의 행보가 더욱 과감하다. 뭉칫돈을 손에 든 그의 눈이 향하는 곳은 할리우드 한복판이다.

할리우드를 중국 손안에

왕지안린은 미국 영화사 라이온스 게이트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려 하고 있다. 라이온스 게이트의 회장이자 최대 주주인 마크 라체스키의 주식(37%)를 모두 사드려 경영권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 일부 주식만 팔고 경영권을 지키고 싶은 라체스키의 의중과 맞지 않아 협상이 아직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라이온스 게이트는 제니퍼 로렌스 주연의 영화 '헝거게임' 시리즈 등을 만들었다. 숱한 할리우드 명작의 산실이었던 MGM도 왕지안린이 노리고 있는 사냥감 중 하나다.

왕지안린은 이미 2년 전 미국 영화계의 큰 손이 됐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극장 체인인 미국 AMC를 손에 넣었다. 미국에서 매출이 가장 높은 50개 극장 중 22곳이 왕지안린 통제에 들어갔다. 왕지안린은 AMC 주인이 되기 위해 26억달러(약 2조8,618억원)를 지불했다. 중국의 역대 해외 투자액 중 최다 액수였다. 할리우드 신흥 거물이 된 뒤에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2013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을 주관하는 영화아카데미협회에 2,000만달러(약 220억원)를 내놓았다. 로스앤젤레스에 지어질 협회 박물관을 위한 기부금이었다.

극장업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영화 제작과 배급을 위해 라이온스 게이트 등도 쇼핑 리스트에 올렸다. 그는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다. "세계 영화 배급 시장의 20%를 내가 가져갈 것이다."

군인 출신 부동산업자

왕지안린은 재벌 2세가 아니다. 유력한 정치인 선친을 두지도 않았다. 출신은 범상하다. 1954년 쓰촨성의 공업지대에서 오형제의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군인이었다. 당연한 수순처럼 왕지안린도 10대에 인민해방군에 입대했다. 14년을 복무했다. 제대 뒤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하고선 하급관리가 됐다. 1988년 모두가 꺼리던 판잣집 재개발 사업에 뛰어들었고 재능은 곧 빛을 냈다. 공산당 당원 신분을 적극 활용했고 지방정부와 유착했다.

부동산에서 탁월한 사업 능력을 발휘한 뒤 호텔과 백화점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전용기를 보유한 최초의 중국 사업가 중 한 명이 됐다. 왕지안린 스스로 "전력 질주하는 코끼리"라 묘사할 정도로 광속 성장했다.

달리안 완다 그룹 홈페이지에는 왕지안린의 재력과 사업영역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2013년 기준 회사 총자산은 628억달러(약 69조1,239억원)다. 연간 수입은 308억달러(약 33조9,015억원)에 이르고 순익은 20억달러(약 2조2,014억원) 가량이다. 5성급 호텔만 60개를 보유하고 있고 중국 곳곳에 84개의 백화점을 거느리고 있다. 영국 요트 회사 선시커를 인수했고 뉴욕과 런던에도 고급호텔을 지을 계획이다.

중국 소프트파워 첨병으로

왕지안린은 경쟁자로 글로벌 강자들을 꼽고 있다. 디즈니와 드림웍스 등을 능가하는 엔터테인먼트 제국을 세우는 게 그의 목표다. 지난해 중국판 할리우드를 내세우며 칭다오에 대형 스튜디오를 착공했다. 81억달러(약 8조9,156억원)를 들여 500만㎡ 부지에 20개의 촬영전용 시설과 놀이공원 시설을 채운다. 2017년 완공될 칭다오 스튜디오는 2015년 개장하는 상하이 디즈니랜드와 경쟁할 계획이다. 왕지안린은 세 과시를 위해 지난해 착공식 때 할리우드 스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니콜 키드먼, 존 트라볼타, 케이트 베킨세일 등을 초대했다.

왕지안린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묘하게도 중국 공산당의 정책과 발을 맞추고 있다. 중국 정부가 소프트 파워로서의 문화산업 강화를 강조한 2012년 AMC를 인수했다. 왕지안린의 할리우드 행보는 제조업을 넘어 서비스업으로 향하는 중국 경제를 상징한다.

왕지안린이 할리우드에 발을 들인 뒤 어느 날이었다. 드림웍스애니메이션의 최고경영자 제프리 카첸버그가 로스앤젤레스에서 파티를 열었다. 왕지안린은 파티에 늦게 도착하고도 거만하게 행동하다가 식사 중에 먼저 일어났다. 좀 멀리 떨어진 롱비치에 세워둔 전용기를 타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댔다고 한다. 카첸버그가 한마디 했다. "좀 더 가까운 버뱅크에 세워뒀으면 좋았을 텐데… 내 비행기들은 그곳에 있어." 카첸버그는 '들'을 유난히 강조했다고 한다. G2 국가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이 할리우드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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