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꼬마 도둑 1천만 원 뿌리며 "잡을테면 잡아봐"

우상욱 기자 2014. 3. 2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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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중국 안후이성 벙부시 한 채소시장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모르고 보면 드라마나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 것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만삭의 20대 여성이 10살짜리 어린 딸을 데리고 채소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여성은 가게 주인에게 호박을 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게 색깔이 더 좋다느니, 저게 더 잘 익은 것 같다느니 수선을 피웠습니다. 가게 주인이 이를 상대하느라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린 사이 10살 딸은 슬그머니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반쯤 열린 금전출납기 안에 손을 집어넣고 눈 깜짝할 새에 안에 있던 돈을 모두 꺼내 품속에 감췄습니다. 6만 위안, 우리 돈 1천만 원이 조금 넘는 큰 돈이었습니다.

딸은 들어갈 때처럼 나올 때도 마치 그림자 같았습니다. 자연스럽게 가게 밖으로 빠져나갔고 임신한 어머니는 함께 가자며 뒤를 따랐습니다. 가게 주인은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맞은 편 가게 주인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한 달 사이에 이 시장의 여러 점포가 도둑을 맞았습니다. 공통적으로 임신한 젊은 여성이 어린 딸을 데리고 다녀 간 뒤에 돈이 없어졌습니다. 황급히 반대편 가게에 달려가 그 집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혹시 돈이 없어지지 않았냐고.

놀란 주인이 금전출납기를 들여다보니 정말 한 푼도 없었습니다. 주인은 재빨리 가게 밖으로 나가 모녀의 행방을 찾았습니다. 마침 임산부여서 그리 멀리 가지 못했습니다. 주인은 큰 소리로 외치며 모녀의 뒤를 쫓기 시작했습니다. "저 임산부 좀 잡아주세요. 도둑이에요."

10살 딸은 주인이 쫓아오는 기색을 보더니 얼굴이 파랗게 질렸습니다.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엄마가 임신한 상태라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러자 딸은 갑자기 품속에 감쳐뒀던 6만 위안을 꺼내 들더니 길 가에 확 뿌렸습니다. 일대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삽시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돈을 줍기 시작했습니다. 가게 주인도 추적을 포기하고 허겁지겁 땅에 떨어진 돈을 챙겨야 했습니다.

모녀는 그 덕에 시장을 무사히 빠져 나가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운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신고받고 충돌한 경찰과 시장 입구에서 딱 맞닥뜨렸습니다. 임산부와 어린 딸, 인상착의가 맞아떨어지자 경찰은 이들을 바로 붙잡았습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이들의 황당한 사연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 둘은 모녀가 아닙니다. 그저 한 동네 이웃이었습니다. 도둑질을 위해 맺어진 가짜 모녀입니다.

10살난 딸은 도둑질을 6살 때부터 시작했습니다. 벌써 도둑질 5년차로 중국 경찰 표현으로는 '숙련 도둑'이었습니다.

임신부인 장모씨는 이전에도 주로 임신 상태에서 도둑질에 나섰습니다. 사람들이 덜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배가 부른 여성과 10살도 채 안된 어리고 약한 딸이 2인조 도둑이라고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그래서 고향인 후난성에서 안후이성의 벙부시까지, 우리로 치면 부산에서 신의주까지의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숱한 도둑질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꼬리가 길어지면서 결국 두 사람은 경찰에 잡혔습니다. 10살 여자 아이는 아직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향에 있는 아버지에게 돌려보내졌습니다. 장씨 역시 구속되지는 않았습니다. 만삭이라 일단 아기를 낳고 수유를 모두 끝마친 뒤 다시 구속될 예정입니다.

저는 이 사건을 접하면서 중국 사회의 비정함에 두번 놀랐습니다. 우선 6살 어린 아이까지 도둑질에 이용했다는 사실입니다. 한창 인생에 대한 희망과 꿈, 동심을 키워야 할 나이에 도둑질로 점철된 삶을 살았으니 이 아이는 앞으로 어떤 운명을 겪게 될까요?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하나는 아이가 6만 위안을 뿌렸을 때 나타난 현상입니다. 가게 주인이 이들을 쫓는 것까지 포기하고 허겁지겁 돈을 주웠지만 겨우 만5천 위안만 되찾았을 뿐입니다. 나머지 4만5천 위안은 당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주워가버렸습니다. 도둑을 쫓아가거나, 흩어진 돈을 주워모아준 사람은 없거나 극소수였다는 소리입니다. 남의 불행은 그저 나의 행복일 뿐이었습니다.

최근 중국에서는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도왔다는 보도가 부쩍 늘었습니다. 중국 언론이 '부관셴스'나 '부리타'로 대표되는 무관심 문화를 고쳐보려고 애쓰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건을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됩니다.우상욱 기자 woosu@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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