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 '생체실험' 극비문서 나왔는데도 발뺌하는 日

2014. 1. 2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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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생체실험으로 악명 높은 일본의 731부대를 이끌었던 이시이 시로 군의중장의 묘연했던 전후 행적의 단면이 드러났습니다.

이시이는 패전과 함께 서둘러 일본으로 탈출한 뒤 도쿄에서 신분을 감춘 채 여관업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1960년 교토대에서 731부대 가담자에게 수여한 학위 논문에 지도교수로 이름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은둔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생체실험 경험을 후진들에게 전수한 것이라는 의혹이 일고 있습니다.

도쿄 박철원 특파원 연결해 731부대와 관련한 취재 뒷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박철원 특파원!

전쟁 패전과 함께 일본은 731부대 흔적 지우기에 주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만큼 숨겨야 될 일이 많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거죠?

[기자]

1945년 8월 10일.

그러니까 일왕의 항복 선언 5일전 일본 관동군 사령관은 이시이 시로 731부대장에게 긴급 탈출 명령과 함께 생체실험 관련 증거 인멸을 지시했습니다.

당시 관동군 사령관은 731부대장인 이시이에게 '신속하게 부대를 파괴한 뒤 부대원은 한시바삐 일본으로 귀국시키고, 모든 증거물은 영구히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할 것'을 지시했다는 증언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 건물 내에 있는 '생체실험 대상자' 즉 마루타는 모두 처리한 뒤 부대 보일러로 태우고 재는 인근 송화강에 흘려버릴 것을 지시하는 잔혹함도 잊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지난 2006년 일본 TBS가 입수한 이시이의 일기에 철수 당시 200명의 마루타를 소각했음을 의미하는 글이 나와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앵커]

이시이 시로는 731부대장이면서 생체실험을 주도했다고 봐야 하는 인물인데 종전 후에 행방이 묘연했죠?

[기자]

군의사로서는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계급인 중장까지 진급한 이시이 시로는 생체실험과 동의어로 사용될 만큼 A급 전쟁의학범죄자입니다.

때문에 이시이 자신도 탈출 전 부대원과 그 가족을 모아놓고 '부대의 사실은 묘지까지 가지고 가라'면서 함구령을 내렸습니다.

부대원 서로 간에 연락도 하지 말고 공직에 오르는 일도 없도록 금지한 이시이는 귀국 후 스스로 종적을 감췄습니다.

전후 행방을 감춘 이시이는 자신이 설립했던 방역연구실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한 듯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여관업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교토대 의학부 도서관에서 발견된 1960년 2월 콜레라균 연구를 주제로 한 박사 학위 논문 속에 이시이는 지도교수로 이름이 올라있습니다.

이시이는 전후 15년이 지나고 1959년 10월 죽기 직전까지 자신의 경험을 후진들에게 비밀리에 전수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이는 대목입니다.

[앵커]

이번 취재로 알려진 새로운 사실은 생체실험을 한 것은 731부대 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거죠?

[기자]

지금까지 생체실험은 731부대에서만 한 것으로 알려져왔습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 해군성 소속의 해군군의학교와 일본 내 일부 의과대학에서도 생체실험이 자행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해군군의학교에서는 겨자 가스를 인체에 실험했다는 내용이 담긴 관련자의 논문이 이번에 처음으로 발견됐습니다.

또 규슈제국대 의학부에서도 1945년 5월 B-29 폭격기가 추락하면서 포로가 됐던 미군 8명을 모두 생체실험으로 살해했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당시 생체실험을 주도했던 이시야마 교수와 가담 학생 등 14명은 포로학대로 구속됐지만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슬그머니 풀려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앵커]

731부대 가담자들 상당수가 생체실험 데이터를 이용해 의학박사 학위를 모두 받았다는 것도 충격적인 일인데요 아무리 전쟁시기였지만 의사로서의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했군요?

[기자]

바로 그 점이 이번 취재에서 가장 주안점을 두었던 부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번 연구 결과를 내놓은 니시야마 카쓰오 시가대 의대 명예교수는 전후 일본 의학계에서 731부대는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라고 비판했습니다.

생체실험을 토대로 한 731부대의 연구보고가 전쟁 기간 중에는 물론 전후 1960년까지 일본 내 각 의과대학에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됐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습니다.

교토대 의학부만 하더라도 15년 전쟁 기간 중 23명의 731부대 가담자에게 대거 박사 학위를 수여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심지어 서울대 의대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에서도 731부대의 말라리아 생체실험 결과를 토대로 731부대원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앵커]

당시 일본 정부의 박사 학위 수여 제도가 궁금한데요.

정부의 관여는 없었다고 할 수 있나요?

[기자]

당시 일본의 박사 학위 수여 제도는 문부성이 승인해야 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일본 정부가 731부대 관련 연구를 극비리에 모두 승인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731부대와 관련 생체실험 또는 세균전 관련 문서들의 표지에는 모두 극비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심지어 의학박사 학위 논문에 '군사기밀'이라는 글씨도 기재돼있는 것으로 볼 때 사실상 군부가 중심이었던 당시 일본 정부가 이같은 연구를 묵인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1999년 노로 방위청 장관은 국회에서 '생체실험 부대의 구체적인 활동 상황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뺌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731부대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만행 자체는 종전 69년이 되는 지금도 은폐와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도쿄에서 YTN 박철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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